이빨요정의 방문
“티나는 밤이 되면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아다녔어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은수는 토끼 인형을 안고 그림책을 보았다.
“아이들이 잠든 사이, 티나는 베개 밑에 놓인 이빨을 찾아다녔어요.”
요정이 잠든 아이의 베개를 살피는 입체 그림이 솟아올랐다.
“우와, 진짜네!”
“티나는 이빨을 가져가고, 그 자리에 반짝이는 동전을 놓아두었어요.”
“동전이요?”
은수가 눈을 반짝이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빨로 바, 밤하늘의 별을 만들었대.”
“별이요?”
“응. 용감한 아이들의 이빨은 더 밝게 빛났어요. 착한 아이들의 이빨은 더 오래 빛났고.”
은수는 입을 벌린 채 그림을 보았다.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그림. 별마다 작은 이빨 모양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남자가 은수를 보았다.
“이빨이 빠지면, 깨끗이 씻어서 예쁜 병에 넣어두는 거야.”
“병이요?”
“작은 유리병. 투명한 거.”
“그럼…”
은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티나가 와요?”
남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책을 내려다보았다. 표지에 묻은 오래된 커피 자국과 모서리가 해진 페이지들.
“그래.”
그가 작게 대답했다.
“올 거야.”
“정말요?”
“그럼.”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은수는 몰랐지만, 옥분은 보았다. ‘티나가 유리병에 둔 이빨을 찾아온다’는 대목에서, 남자가 소 같은 눈망울로 살짝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그러나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것을.
“동전도 줘요?”
“물론이지.”
“우와…”
은수가 토끼 인형을 꼭 안았다.
“토리야, 너도 티나 알아?”
남자가 책을 덮으며 말했다.
“티나가 토리 이빨도 가져간 적 있다는데?”
은수의 눈이 커졌다.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토리를 꼭 끌어안았다.
“이 책 여기 둘게. 또 보고 싶으면 어, 언제든 오렴.”
“네!”
은수가 폴짝 뛰며 환하게 웃었다.
옥분이 일어섰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치료비는…”
“괜찮습니다.”
남자가 커다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뭐,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그래도.”
“대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은수를 보았다.
“이빨 빠지면, 꼭 씻어서 병에 넣어두기.”
“네!”
“그리고 무서워하지 마.”
그는 머뭇거리며 할 말을 골랐다.
“새 이빨이 나올 거야. 더 튼튼하게.”
“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남자가 문 앞까지 따라 나왔다. 그리곤 살짝 고개를 숙였다.
“조심히…”
옥분도 두 손을 모은 채 인사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은수도 배꼽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곰 아저씨!”
그가 잠시 멈칫했다.
“고, 곰?”
“수진 언니가 곰 아저씨랬어요!”
은수가 웃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털이 수북했다. 남자는 애써 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래. 조심히 가.”
두 사람은 언덕을 내려갔다.
언덕 위에서나 아래서 보면 훤히 보이는 길. 그러나 정작 청보리밭 사이에서는 미로 같은 길.
은수가 깡충깡충 뛰며 내려갔고, 옥분은 그런 은수의 뒤를 천천히 따랐다. 언덕 아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 선생님이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은수가 입학할 때까지 저 분교가 남아있을 수 있을까. 잠시 그 모습을 보다가, 다시 은수를 쫓아갔다.
우렁찬은 문 앞에 서서 한동안 모녀를 지켜보았다. 은수가 쪼르르, 달려가다가 한 번씩 청보리밭에 숨어 자신을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우렁찬은 진료실로 돌아와, 책상에 놓인 <이빨요정 티나의 선물>를 가만히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책을 꼭 끌어안았다.
- 선생님! 이빨요정이 정말 세상에 있어요?
그때 그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렁찬은 여러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고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이 책을 만들었다.
- 그럼, 선생님이 직접 증거를 보여줄게.
앞니가 빠진 얼굴로 더없이 환하게 웃던 아이. 그러나 우렁찬은 이빨요정이 되지 못했고, 아이의 이는 영영 자라지 못했다.
우렁찬은 그림책을 꼭 끌어안았다. 창밖으로 사월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암막 커튼을 내렸다.
그날 밤, 세탁소에 딸린 단칸방.
밭일에서 돌아온 남편 철순과 딸 은수가 대자로 뻗은 채 자고 있었다.
- 드르렁, 푸르르르
- 코오, 코오옹
철순이 크게 코를 골았고, 은수의 빠진 앞니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북과 피리 소리가 어우러져 봄날의 음악회를 열고 있었다.
옥분은 가만히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은수의 머리맡, 한쪽에 놓인 다림판 위에는 유리병이 놓여 있었고, 그 속에는 백금과도 같은 귀한 보석이 들어있었다.
바로 은수의 앞니.
보건지소에서 돌아온 은수는, 한참을 혼자 끙끙 속앓이하더니, 저녁 무렵 대뜸 옥분 앞에서 이를 벌렸다.
“엄마, 빼줘.”
옥순도 놀랐다.
“정말?”
“응.”
“아파도?”
“안 아파.”
“어떻게 알아?”
“빨리!”
“그래.”
옥순은 빙그레 웃으며, 은수가 좋아하는 분홍색 실을 잘라서 왼쪽 앞니에 대보았다.
“자, 간다!”
은수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옥수수밭에서 돌아온 철순이, 그 모습을 보더니 깨금발을 든 채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옥분이 조심스레 색실로 은수의 앞니를 묶었다.
그런데, 툭.
살살 묶는 사이에, 앞니가 저절로 빠져나왔다.
“어어?”
은수가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어?”
옥분도 웃으며 일어섰고.
“와아!”
철순도 아이처럼 두 팔을 치켜들고 만세를 불렀다.
옥분은 그 순간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이빨 요정은, 엄마란 말이지?”
우렁찬이 그림책을 잃다가 이 대목에서 자신에게 쭈뼛쭈뼛 눈치를 주었던 게 떠올랐다. 옥분은 아이의 소중한 이를 손수건에 싸서 보석처럼 감싸고, 그 대신 유리병에 오백원짜리 동전을 넣어두었다. 어릴 때는 이렇게 빠진 이빨을 지붕으로 던졌던가.
‘까치야, 까치야. 헌니 줄게, 새니 다오.’
그러고 아버지랑 어머니가 꿀떡을 머리맡에 두었던가. 문득 그때를 떠올리니 눈물이 가만히 흘러내렸다. 모든 시간,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영숙이랑은 어릴 때 봉제 인형을 가지고 놀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더니, 오랫동안 잊고 지낸 장면들을 이렇게 다시 넘겨보게 될 줄이야.
옥분은 창문 너머로 보건지소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꺼지지 않는 2층 방의 불빛. 전에는 그게 몹시 신경 쓰였는데, 오늘은 문득 그 자체로 가로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골의 밤길을 밝히는 작은 가로등.
- 딸랑
오백원짜리가 기분 좋게 유리병에서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