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요정 티나와 은수
사월의 햇살이 목덜미를 간질였다.
옥분은 은수의 손을 잡고 찬찬히 언덕을 올랐다. 산골에 들어선 바람이 길을 잃고 휘돌자, 길옆으로 드리워진 청보리밭이 차례로 누웠다.
“저기가, 곰돌이집?”
옥분은 피식, 웃었다.
“보건지소라고…”
뭐라고 설명을 하려다가 말았다.
“가보면 알아.”
은수의 발걸음이 멈추자, 옥분이 다시 둘러댔다.
“그래, 곰돌이집.”
은수가 토리를 꼭 안았다. 기다란 귀가 은수의 팔을 감쌌다.
보건지소가 가까워졌다.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회색 외벽. 처마 밑에 드리워진 거미줄이 바람에 흩날렸다. 오래전 많은 이들이 드나들었던 곳. 옆 마을 사람들까지도 산 밑으로 내려가기 힘들다며 찾던 피난처.
그러나 보건의가 군 복무 대신 찾던 이곳도, 젊은 의사의 머릿수가 줄면서 가장 먼저 소외되고 말았다. 보통의 의사들은 아예 꿈도 꾸지 않는 외지. 바로 그런 곳에 서울의 내로라하는 병원 출신 소아과 전문의가 온 것이다.
옥분은 보건지소 문 앞에 멈춰 섰다. 비록 읍내의 작은 의원이었지만, 간호조무사 일을 했던 옥분은 그래서 더 우렁찬이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무슨 사정이 있으리라. 그렇다면 그 사정은 둘 중 하나. 서울에서 무슨 사고를 냈거나, 가정사에 큰 문제가 생겼다거나.
어느 쪽이든 이 산골에서 받아주기에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한편으로는 또 감지덕지했다. 서울의 전문의가 이런 의료 소외지에 자원했다니. 혹시 ‘국경 없는 의사회’ 같은 사명감을 가진 의사일까. 이래저래 궁금하면서도 조심스러웠다.
녹슨 문고리가 햇빛에 반짝였다. 아이의 발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음악 소리가 잔잔히 흘러나왔다. 낮고, 느린 첼로 소리 같았다. 옥분은 문 옆에 붙은 스케치북 글귀를 보았다.
- 소아과, 어린이만 받습니다
은수가 그 글씨를 물끄러미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삐뚤빼뚤한 글씨를 외려 반가워하는 듯했다. 옥분은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 똑똑
“저기, 계세요?”
음악이 멈추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내 쿵쿵 들려오는 발소리. 옥분은 살짝 긴장한 얼굴로 은수를 보았다. 그러나 은수는 외려 눈을 깜빡이며 잔뜩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죠?”
내심 옥분은 ‘어서 오세요’하면서 그가 환영해 주길 바랐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다른 법. 큰 남자가 쭈뼛쭈뼛 서서 입구를 꽉 채우고 있었다.
은수의 눈이 커졌다. 문틈 사이로 정말 곰 같은 아저씨가 서 있었다. 털이 수북한 얼굴과 손등, 그리고 더없이 순한 눈동자. 턱수염에 가려져 있지만, 살짝 패인 보조개에서 느껴지는 장난기.
“진짜… 곰 같아.”
은수는 토끼 인형을 더 꼭 안았다.
남자가 고개를 숙여 은수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은수는 숨을 멈췄다.
“안녕하세요.”
옥분이 먼저 인사했다.
“저, 이 근처 사는데요. 애가 이빨이 좀 흔들려서…”
그러나 옥분의 기대와 달리, 남자는 뒷머리를 긁으며 대꾸했다.
“저기, 여기는 소아치과는 아니어서요.”
그럼 그렇지. 저도 모르게 옥분이 톡 쏘아주었다.
“소아과가 어린이를 치료하는 곳 아녜요? 거기서도 소아치과를 나누면 대체 여긴 뭐 하러 오신 거예요?”
순간 아차, 싶었다.
아직 우렁찬에 대한 정보가 한참 부족했기에, 이 예측 불가한 남자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 그런데 그는 소 같은 눈을 끔벅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들어오세요.”
남자는 어슬렁어슬렁 걸어가서 진료실에 앉았다. 옥분은 속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는 은수의 손을 잡고 따라 들어갔다.
보건지소 내부는 생각보다 깨끗했다. 창문과 함께 구석구석 쓸고 닦은 티가 났다. 공간은 사람과 함께 숨을 쉰다고 할까. 한때 폐가나 마찬가지였던 진료소가, 이 곰 같은 남자로 인해 소생하고 있었다.
“이리, 오세요.”
은수는 엄마 뒤에 숨어 따라 들어갔다.
“여기 앉아요.”
남자가 침대를 가리켰다. 옥분이 은수를 안아 올렸다. 은수는 침대 끝에 앉아 다리를 살짝 흔들었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은수에요, 이은수. 며칠 전부터 유치가 흔들려요.”
“잠시만요.”
남자가 손을 씻으러 갔다. 찬물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는 비누 거품을 내고, 손가락 사이사이를 꼼꼼히 문질렀다. 수건으로 손을 닦을 때,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남자는 잠시 거울 속 자신을 보다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돌아와서 자세를 낮추었다.
“아, 안녕, 은수야?”
“안녕하세요?”
“어디 보자. 이가, 흐, 흔들리니?”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응, 이빨이 아파요.”
은수가 작게 말했다.
“어디, 입 벌려볼까?”
은수가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남자가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큰 손이 은수의 턱 근처로 왔다. 은수는 움찔했다.
“아프게 안 해. 약속, 보기만 할게.”
은수는 눈을 꼭 감았다.
“아아, 해줄래?”
은수가 입을 크게 벌렸다. 앞니 하나가 살짝 누운 게 보였다. 남자는 그걸 살짝 건드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곧 빠질 거야.”
“언제요?”
“지금 빼줄까? 아, 안 아프게?”
은수가 고개를 세게 저었다.
“싫어요!”
“그럼 안 빼도 돼.”
그 말에 옥분의 눈이 반짝였다.
“며칠 있으면 저절로 빠질 거야.”
남자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단속하듯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기…”
은수가 토끼 인형을 들어 올렸다.
“토리도, 봐줄 수 있어요?”
남자가 토끼 인형을 보았다. 낡은 인형이었다. 한쪽 귀가 해져서 솜이 비어져 나왔고, 목에 있던 리본은 풀어져서 엉겨있었다. 인형의 배 부분은 때가 타서 회색빛이었다.
“토리구나?”
정적이 흘렀다.
“안녕?”
마치 신생아를 다루듯 토끼 인형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토리의 해진 귀가 그의 손가락 사이로 늘어졌다. 남자는 하얀 가운에서 청진기를 꺼내더니, 진지한 얼굴로 인형의 배에 대보았다.
“저런, 귀가 좀 다쳤네.”
“정말요?”
“혹시, 은수 말을 잘 안 듣니?”
은수의 표정이 환하게 펴졌다.
“어떻게 아셨어요?”
남자가 토끼 인형의 리본을 가리켰다.
“리본도 묶어줘야 해.”
“응?”
“조, 조금 속상했나 봐.”
은수가 작은 손으로 토끼 인형의 리본을 잡아당기더니, 꼭 안아주었다.
“미안해! 그랬구나.”
남자가 청진기를 빼서 접었다. 연고를 꺼내 끝부분을 새끼손가락으로 톡 치고 약을 묻히는 시늉을 했다. 그러더니 토끼 인형의 귀에 발라주었다.
“이제 조금 나을 거야.”
“정말이죠?”
“토리도 이제 잘 들린대.”
은수가 일어서서 토끼처럼 폴짝 뛰었다.
“잠깐만.”
남자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작은 바느질 도구가 있었다. 그는 바늘에 실을 꿰어, 토끼 인형의 귀를 조심스럽게 꿰맸다. 큰 손이지만 손놀림은 섬세했다. 은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리본도 세심하게 묶어주었다.
“자, 이제 다 나았어.”
은수가 토끼 인형을 받아 안았다. 귀가 말끔했다. 리본도 예쁘게 묶여 있었다.
“고마워요!”
해맑게 웃었다.
옥분은 그 모습을 보며 뜨끔했다. 정작 다른 집 아이의 곰 인형의 해진 부분은 눈에 들어왔어도, 딸아이의 토끼 인형을 봐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남한테 잘할 줄만 알았지 정작 자신과 아이에게는 소홀했구나.
그러나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가 느리게 말했다.
“이빨은… 지금 안 빼.”
“정말이죠?”
그러면서도 은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는 이빨을 빼야 한다. 그러나 싫다. 그러면 어쩌나, 싶은 난감한 얼굴.
남자는 알겠다는 듯이 가만히 일어나 책상으로 갔다. 그리고는 열쇠로 서랍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무언가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그가 들고 온 것은 작은 그림책이었다. 남자는 커다란 손으로 표지를 찬찬히 쓸더니, 은수가 보기 좋게 펼쳤다.
“그 대신 이거, 읽어줄까?”
은수가 눈을 반짝였다.
“뭔데요?”
“이빨 요정, 티, 티나 이야기야.”
“티나?”
남자가 은수 옆에 앉았다. 침대가 삐걱거렸다. 그는 손가락을 오므려 종잇장을 넘겼다. 표지에는 커다랗게 ‘이빨요정 티나의 선물’이라고 쓰여있었다.
- 우렁찬 쓰고 만듦
그 아래 삐뚤빼뚤 쓰인 글씨. 아마도 서울의 큰 병원에서 무슨 활동 시간에 아이들과 직접 만든 책 같았다. 그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첫 페이지를 넘겼다.
“옛날 옛날에…”
놀랍게도 책을 펼치자, 작은 집 위로 귀여운 요정이 솟았다. 책을 펴면 입체적으로 변하는 팝업북이었다.
“와아! 티나?”
은수가 박수를 치며 좋아라 했다.
“이빨요정 티나가 살았어요.”
그 속에서 작은 요정 티나가 날개를 펼치고 밤하늘을 날고 있었다.
남자는 애써 빚어낸 작고 고운 목소리로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