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운리 소아과는 오늘도 문을 엽니다 #3

- 곰아저씨

by 이하

이른 아침, 두운리세탁소 앞 빨랫줄에 옷가지가 펄럭였다. 봄바람이 불 때마다 세제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옥분은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탈수기에서 물을 뺀 옷들을 꺼내 바구니에 담았다. 그때, 문짝의 방울이 울렸다.


“언니, 안녕?”


문이 열리고 수진이 엄마, 영숙이 들어왔다. 빨래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옥분이 손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서 와. 빨래 맡기러 왔어?”

“이거 좀 부탁하려구.”


영숙이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옥분이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이거, 피 아니야?”

작고 하얀 티셔츠의 목 부근에 붉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아, 그게…”


영숙이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어제 수진이가 놀이터에서 넘어져서, 이마를 다쳤어.”

“어머, 많이 다쳤어?”

“좀 찢어져서… 그래서 보건지소에 갔었어.”

“보건지소?”


옥분의 손이 멈췄다.


“그 사람한테?”


목소리에 미묘한 긴장이 실렸다. 영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새로 오신 분.”

“어땠어?”


옥분이 물었다. 영숙은 잠시 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대로, 괜찮던데?”

“괜찮다?”

“응, 손을 좀 떨긴 했는데…”


옥분의 눈살이 찌푸러졌다.


“손을 떤다고?”

“근데 치료는 잘해주셨어. 아이 이마를 꿰매지도 않고, 그 뭐더라, 테이프로 깔끔하게 붙여주시더라고.”

“그래?”

“어, 그리고…”


영숙이 빙그레 웃었다.


“수진이가 좋아했어.”

“뭣 때문에?”

“곰 인형이랑 같이 치료해주셨거든.”

“얘 말이지?”


영숙이 들고온 빨래 바구니에는 곰인형 봉이도 있었다. 한쪽 팔이 삐져나와 마치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영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꼼꼼하게 곰돌이 밴드를 붙여주더라.”


옥분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그녀는 가만히 인형의 팔을 들어서 솜이 삐져나온 곳을 살폈다.


“아이고, 또 터졌네?”

“새로 사주겠다고 해도 싫다고 하니…”

“그 나이 땐 소중한 친구니까.”

“이번엔 제대로 꿰매줄게. 실도 좀 더 굵은 걸로.”


옥분은 실과 바늘을 꺼내어 인형의 팔을 기우기 시작했다. 빠진 솜을 따로 채워넣고, 한 땀 한 땀 수술하듯 꿰맸다.


“언니가 더 의사 같네. 누가 간호사 출신 아니랄까봐.”


영숙의 말에 옥분이 피식 웃었다.


“간호사 아니고 간호조무사. 벌써 이십 년도 넘었는 걸.”

“그래도 다르잖아. 내가 꿰매면 영 엉망인데.”


옥분은 마지막 매듭을 묶고 실을 끊었다. 그리고 곰 인형을 돌려주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히힛. 언니 고마워.”


영숙이 곰인형을 받아 들었다. 색실로 정교하게 꿰매어 티가 나지 않았다. 영숙은 잠시 팔목에 붙여준 곰돌이 밴드를, 그 위에 다시 붙였다.


“우리도 어릴 때, 이렇게 놀았는데.”

“그러게… 사십 년이 어디 갔나.”


두 사람은 가만히 미소를 짓다가, 다시금 창밖의 보건지소를 돌아보았다. 옥분이 작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은 분이시네.”

“착하신 것 같아. 말씀은 조금씩 더듬는데…”

“말을 더듬는다고?”

“나한테는 안 그랬는데, 외려 아이 앞에서는 더듬더라고.”

“흐음, 그래?”


영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수진이가 난리야. 찬이 아저씨 보러 가자고.”

“찬이?”

“선생님 이름이 우렁찬이래.”

“우렁찬?”

“재밌지?”


옥분이 그 이름을 되뇌었다.


“뭔가 귀엽네.”


두 사람이 피식, 웃었다. 바로 그때였다.


“엄마아!”


뒤편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옥분이 화들짝 놀라 돌아섰다.


“은수야?”


세탁소 안쪽, 옷가지 사이에 꼭 숨어있던 은수가 울고 있었다. 빨래를 널고 나서 막 찾으려던 참이었다. 은수는 토끼 인형을 끌어안았고, 옥분은 은수를 안아 들었다.


“우리 은수, 왜?”


은수가 손가락으로 앞니를 가리켰다.


“이빨이…”

“더 심해졌어?”


옥분이 가만히 은수의 입을 들여다보았다.


“어디 보자.”


은수가 입을 벌렸다. 앞니 하나가 어제보다 더 흔들렸다.


“자연스레 빠질 때도 됐는데.”


옥분이 말을 이었다.


“안 아파. 곧 새 이빨 나올 거야.”


하지만 은수는 고개를 저으며 더 크게 울었다.


“무서워.”

“왜 무서워?”

“아파.”

“아무래도 치과 가봐야겠네.”


옥분의 말에 자지러지듯 드러누워 발버둥쳤다. 은수는 지난번 치과 갔을 때를 떠올렸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 무서운 기계 소리, 검고 큰 큰 의자, 입 속으로 불쑥 들어온 금속들.


“싫어! 치과 무셔워!”

“에이, 안 무서워.”

“무서워!”


은수가 토끼인형을 꼭 안으며 더 크게 울었다. 옥분이 난감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그럼, 엄마가 빼줄까?”


옥분이 실뭉치를 꺼내 실 한 가닥을 알맞게 잘랐다. 은수가 고개를 홱 돌리며 소리쳤다.


“싫어어!”

“금방이야.”

“싫어, 싫어!”


그때 수진이 엄마, 영숙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보건지소는 어때?”


옥분이 고개를 들었다.


“저기가 치과는 또 아니잖아?”

“그래도 의사 선생님이니까. 이빨도 봐주지 않을까?”

“글세…”


옥분이 망설였다.


“수진이도 처음엔 쭈뼛대더니, 금세 마음을 열더라고.”

“신기하네.”

“그렇지?”


영숙이 말을 이었다.


“선생님 보고, 곰돌이 아저씨래…”


그 말을 들은 은수가 잠시 울음을 멈췄다.


“수진 언니? 곰돌이… 아저씨?”


은수가 토끼 인형을 끌어안은 채 영숙에게 물었다.


“저기, 곰돌이 있어요?”


영숙이 한눈을 찡긋하며 속삭였다.


“응, 곰 아저씨가 살고 있대.”

“정말?”

“수진 언니랑 봉이도 고쳐주셨지.”


은수의 눈이 조금 커졌다. 여전히 눈물이 고여있었지만, 눈빛에 호기심이 이는 게 보였다.


“토리도… 봐줘?”

“아마도?”


이때다 싶은 옥분이 은수에게 말했다.


“한번 가볼까?”


놀랍게도 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볼에 흐른 눈물도 쓰윽 닦았다. 곧바로 옥분이 은수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아이들의 마음은 어디로 튈지 모르니,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사정을 잘 아는 영숙이 재빨리 문을 열어주었다.


“언니, 다녀와.”

“응, 땡큐!”


옥분과 은수는 밖으로 나왔다. 알록달록한 옷가지 사이로 보건지소가 보였다. 언뜻 보면 벙커 같은 낡은 시멘트 건물. 그 앞에 마치 아이가 삐뚤빼뚤 써놓은 것 같은 스케치북의 글귀들.


- 소아과, 어린이만 받습니다


은수가 토끼 인형을 꼭 안았다. 옥분이 은수의 손을 꽉 잡았다.


“가볼까?”


은수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응…”


두 사람은 천천히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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