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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진 Jul 14. 2021

지옥문으로 향하는 아름다운 산책로

첫 번째 여행지 트위드 헤드(Tweed Heads)에서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전기선을 구매했다. 보조 전기선을 가지고 왔으나 캐러밴에서 사용하는 전기 소켓이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매트리스가 너무 푹신해서 허리가 불편하다. 편안한 것으로 매트리스도 바꾸었다. 생각하지 못했던 자질구레한 물건들도 장만하면서 여행 준비를 나름대로 끝냈다.  

다음 목적지는 이곳에서 250km 정도 떨어진 누사 헤드(Noosa Heads)로 정했다. 퀸즐랜드(Queensland)의 유명한 관광지 선샤인 코스트(Sunshine Coast) 끝자락에 있는 동네다. 가까운 곳이라 운전이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짐을 정리한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자동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골드 코스트(Gold Coast)에서 브리즈번(Brisbane)으로 향하는 왕복 8차선 고속도로가 막힐 정도로 교통체증이 심하다. 평소 같으면 투덜거리며 운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여유를 갖고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앞차를 따라간다. 목적지가 가까워 서두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브리즈번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작은 산과 들판은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다. 항상 따뜻한 곳이라 그런지 나무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조림사업을 하는 들판도 자주 보인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줄지어 있다. 보기에 좋다.

 

고속도로 주변에 있는 휴게소에 들렸다. 캐러밴을 끌고 가는 자동차를 위한 주차장이 따로 있다. 주차하고 휴게소에 들어가니 사람이 많다. 호주에서 이렇게 사람으로 북적이는 휴게소를 본 적이 많지 않다. 간단한 점심을 사는데도 긴 줄에 서야 할 정도다. 여유 시간만 있으면 집에 있지 못하고 여행하는 호주 사람들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조금 지체하긴 했지만, 야영장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조심스럽게 후진으로 캐러밴을 주차한다. 아직도 캐러밴을 정확한 자리에 주차하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번보다는 수월하게 주차했다.

 

캐러밴에 전기선을 연결한다. 배수구 호수도 연결한다. 수도도 연결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수도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저것 만지면서 고쳐보려고 노력해본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건너편에서 지내는 사람이 와서 거들어 준다. 그래도 고치지 못했다. 수압을 조절하는 부품이 고장 났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어제 왔던 사람이 다시 찾아왔다. 캐러밴 수리점이 있는 장소를 약도까지 그려가지고 왔다. 가까운 곳에 수리점이 있으니 가보라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고 무척 노력하는 이웃이 고맙다.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름은 켄(Ken)이다. 호주 구석구석을 다녀본 사람이다. 여행을 많이 해서일까, 타인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자신도 누구에겐가 도움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화번호까지 주면서 자기 동네를 지나게 되면 연락하라고 한다.       

캐러밴을 가지고 호주 전역을 여행하는 켄(Ken)


누사 헤드 해변을 찾아 나섰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들리는 해변이다. 큰 주차장이 있으나 빈자리 찾기가 힘들다. 간신히 한 자리 찾아 주차했다. 바닷가 도로에는 카페와 선물 가게가 줄지어 있다. 거리는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누사 헤드가 유명한 관광지임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바다에는 물놀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관광객과 하나 되어 바다에 몸을 담근다. 생각보다 바다가 차지 않다. 호주의 겨울, 시드니에 사는 친구들은 춥다고 하는데 이곳은 한여름이다. 오랜만에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마음조차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좋은 시간을 바다에서 보낸다.


물에서 나와 해변에 있는 카페에 들렸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좋은 위치에 있는 카페다. 과일 주스를 주문했다. 꽤 비싼 금액이다. 그러나 주스는 거의 얼음으로 채워져 있다. 이름만 과일 주스라는 생각이 든다. 자릿세를 톡톡히 받는 식당이다.

 

다음 날에도 같은 해변을 찾았다. 오늘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책로를 걷기 위해서다. 해안을 따라 조성한 산책로다. 휠체어도 다닐 수 있도록 잘 만들어져 있다. 걷는데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다. 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산책로 바닥에 뚫어 놓은 공간이다. 산책로를 조성하면서 베어져야 할 나무를 배려한 마음씨가 보인다.

산책로를 만들면서 나무를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을 만큼 잘 정돈된 산책로가 끝나고 산길이 시작된다. 서핑하는 사람들은 큼지막한 서프보드를 들고 산책로 중간에 있는 해변으로 향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젊은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지긋이 든 남녀도 큼지막한 서프보드를 들고 간다. 서핑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의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는다.

 

중간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깎아 지른 낭떠러지 아래에서는 대여섯 대의 카누가 해안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왼쪽으로 보이는 바다에는 서핑하는 사람으로 붐빈다. 멀리 요트 한 척이 한가하게 바다에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산책로에서 바라본 카누와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



조금은 험한 산책로를 계속 걸으니 지옥의 문(Hell’s Gate)이라는 팻말이 있는 계곡이 나온다. 계곡으로 들어서자 지금까지 잠잠하던 바람이 심하게 분다. 방심하면 중심을 못 잡을 정도로 심한 바람이다. 높은 파도는 수직으로 깎아지른 계곡을 심한 물거품을 일으키며 흔들어대고 있다. 이곳에서 떨어지면 정말 지옥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책로 끝자락에 있는 '지옥의 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계곡


산책로는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많이 걸었다. 걷기를 포기하고 되돌아간다. 같은 산책로를 걷지만 보이는 풍경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산책로가 끝나는 해변에 가까이 왔다. 조금 떨어진 전망대를 보니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결혼식이 열리고 있다. 


많은 하객이 있는 성대한 결혼식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 몇 명이 모여 조촐하게 치루는 결혼식이다. 큼지막한 카메라를 둘러멘 사진사는 해변과 바다를 배경으로 신랑 신부를 카메라에 담기에 바쁘다. 남녀가 만나 새로운 삶을 자연 속에서 약속하고 있다. 예식장에서 수많은 하객과 떠들썩하게 치루는 결혼식과 대비된다.

 

산책을 끝내고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에서는 임시로 쳐놓은 천막에서 즉흥 연주를 하고 있다. 음악은 스피커를 타고 해변까지 퍼져나간다. 천막에는 맥주를 마시며 춤추는 젊은이들로 떠들썩하다. 흥이 넘쳐나는 분위기다. 휴양지에 와서일까, 삶을 만끽하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텐트를 치고 음악과 함께 삶을 즐기는 젊은이들


 

박정희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였다. 심지어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가사를 가진 노래는 퇴폐적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던 시대였다. 야망이 있어야 한다.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정진하라.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젊은 시절 많이 듣던 말이다. 

나의 젊은 시절과 비교되는 호주 젊은이들의 삶을 본다.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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