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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진 Jul 21. 2021

해가 지고 달이 뜨는 풍경을 동시에 만나다

허비 베이(Hervey Bay):인심 좋은시골장이 열리는 동네


많은 관광객으로 활기 넘치는 누사 헤드(Noosa Heads)를 떠난다. 야영장에서 함께 지내며 이런저런 도움을 주었던 부부가 손을 흔들며 배웅한다. 정이 많은 사람이다. 다음 목적지로는 해안 도시, 허비 베이(Hervey Bay)를 택했다.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가기 때문에 계속 해안 도시에 머물게 된다. 허비 베이는 인구 60,000명 정도 되는 도시다. 누사 헤드에서는 200km가 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 여유를 갖고 운전할 수 있어 좋다.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많은 야영장 앞에 있는 해안



일찌감치 허비 베이에 도착했다. 야영장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한적하다. 어느 정도 익숙한 솜씨로 캐러밴 설치를 끝냈다. 점심시간이다. 식사도 할 겸 시내 중심가를 찾아 나선다. 시내로 가려면 해안 도로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가 마음마저 시원하게 한다. 도로에는 자전거 경기가 열린다는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날짜를 보니 내일이 경기하는 날이다.


중심가에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식당을 찾았다. 바다를 마주한 경치가 좋은 곳에 있는 식당이다. 음식을 시키려고 카운터로 가는데 청년이 말을 건네 온다.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는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인사한다. 일본에 오래 살았다고 한다. 중국말도 조금 할 수 있다며 아시안에 대해 친숙함을 나타낸다. 외진 곳에서 한국말을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을 만나니 기분이 좋다. 요즈음은 한국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는 김치를 먹어 보았다는 사람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다음날 게으름을 피우며 늦은 아침을 시작한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열린다는 시골 장을 찾아 나섰다. 어제 운전했던 해안 도로는 자전거 경기로 들떠있다. 그룹으로 유니폼을 입고 페달을 밟으며 달리는 사이클리스트가 보기에 좋다. 호주를 여행하다 보면 자전거로 여행하는 젊은이를 자주 보게 된다. 심지어는 작은 텐트를 자전거에 싣고 오지를 몇 개월씩 여행하는 젊은이도 만날 수 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동네 중심가에서 열리는 시골장에 도착했다. 시골장에는 제법 큰 무대도 마련해 놓아다. 무대에서는 기타로만 구성된 밴드가 흥을 돋운다. 연주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니 나이 든 사람이 많다. 노후에 기타를 치며 연주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악보를 보며 기타를 연주하면 치매 예방에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시골 장에서 제일 많이 눈에 뜨이는 것은 열대 과일이다. 마켓 끝자락에서 배추를 비롯해 두부도 만들어 팔고 있는 아시안이 눈에 뜨인다. 아마도 중국 사람일 것이다. 마음에 드는 신선한 채소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동남아 여행에서 많이 보았던 열대 과일도 몇 개 골랐다. 계산하려고 하는데 장이 끝날 때가 되었다며 파를 비롯해 몇 가지 채소를 얻어 준다. 인심 좋은 시골장이다.

시골장에는 열대 과일이 풍성하다
시골장에서 연주하는 기타로 이루어진 밴드



허비 베이를 찾는 관광객 중에 많은 사람은 프레이저 아일랜드(Fraser Island) 관광을 한다. 유명한 관광지로 알려진 섬이기 때문이다. 프레이저 아일랜드로 떠나는 항구가 있는 리버 헤드(River Head)라는 동네에 가 보았다. 여객선이 이미 떠나서인지 관광객은 많지 않다. 단체 관광에 대해 알아보니 내일 아침에 오면 갈 수 있다고 한다. 요즈음은 관광객이 많지 않다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일 것이다.

 

프레이저 아일랜드는 오래전에 가보았다. 호주에 서식한다는 딩고(Dingo)들이 한가하게 백사장을 거닐고, 너른 백사장을 자동차로 달리던 기억이 있다.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제부터 약간 몸살기가 있다. 요즈음 코로나바이러스로 비상인데 몸조심해야 한다.

 

프레이저 아일랜드 관광을 포기하고 항구 근처를 둘러본다. 선착장에서는 한 가족이 강아지까지 데리고 낚싯배를 바다에 띄우고 있다. 선착장 건너편에서는 강태공 서너 명이 물고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가한 풍경이다.

프레이저 아일랜드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여객선



집으로 가는 길에 동네를 자동차로 천천히 둘러본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널찍한 집들이 해안에 줄지어 있다. 천천히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고 베란다에서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한다. 여유 있는 삶이 보인다. 집값은 시드니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할 것이다. 그러나 주위 환경은 시드니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쾌적하다.

     

여행을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즐겨 찾는 장소가 있다. 식물원(Botanical Garden)이다. 정원 사이를 산책할 수 있고, 쾌적한 환경에서 간단한 식사 혹은 음료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호주에는 거의 모든 동네에 식물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호주 사람들이 유난히 꽃이나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모르겠다.

 

허비 베이 식물원에 들어서니 예상하지 않았던 중국 정원이 앞을 가로막는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허비 베이는 중국의 레샨(Leshan)이라는 도시와 자매 결혼을 맺었다. 호주에서는 중국 자매 도시에 호주 정원을 조성하고, 중국에서는 이곳에 중국 정원을 조성한 것이다.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담한 정원을 호주 시골에서 만나니 색다르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중국 공원


중국 정원을 나와 식물원 중심에 위치한 호수 주위를 걷는다. 호수는 웅장하지 않다. 그러나 주위 풍경과 어울리게 정성을 들여 만든 분수에서 내뿜는 물줄기가 보기에 좋다. 산책로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 본다. 나무로 뒤덮여 하늘이 보이지 않는 산책로다. 하지만 조금 지나지 않아 모기가 팔에 앉는다. 모기가 좋아하는 체질이라 모기라면 질색이다. 모기약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아쉽지만 걷기를 포기한다. 천천히 호수 주위를 걷다가 식물원을 벗어난다.

 

하루를 끝내고 야영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시드니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밤은 슈퍼문(Super Moon)이 뜨고 개기월식도 한다고 한다.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가 생긴 것이다. 야영장 앞에 있는 바닷가 공원으로 나간다.

 

달이 뜨기에 이른 시각이지만 공원에는 이미 달구경 온 사람들이 제법 있다. 젊은 남녀 두 명은 삼각대에 망원렌즈를 거치하고 달이 솟아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품 사진을 노리는 사진사일 것이다. 그중에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노부부의 모습이다. 의자에 앉아 달 뜨기를 기다리며 백포도주를 마시고 있다. 한 폭의 그림이다. 정이 넘쳐흐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있으니 더 아름다워 보인다.

  

공원에서는 달이 뜨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서쪽으로 지는 해도 볼 수 있다. 육지가 반도처럼 나와 있어 서해안도 보이기 때문이다. 서쪽을 보니 해가 서서히 지고 있다. 동쪽에서는 서서히 달이 떠오르고 있다. 달이 뜨고 해가 지는 것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한다. 아주 오래전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 광야에서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을 동시에 본 경험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이곳에서 그 당시의 가슴 설레는 풍경을 다시 만난 것이다. 행운이다.

 

야영장에 돌아와 하늘을 보니 달에 지구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달이 빛을 조금씩 잃어가면서 별은 많아지기 시작한다. 공해 없는 맑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이다. 도시의 별보다 청명하게 하늘을 수놓고 있다.

 

‘별 헤는 밤’을 노래한 윤동주 시인이 생각난다. 별을 헤는 마음으로 삶을 마친 시인이다. 밤하늘의 별을 자주 바라보는 삶을 꿈꾸며 하루를 끝낸다. 

달이 떠오르는 시각에 해서 서쪽으로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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