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어둠이 빛보다 아름다운 이유

— 밤의 개선문을 지나며

by 에투왈

대신 그 도시는 말없이 무언가를 전하려던 것 같았다.


기억은 왜 종종 새벽빛을 닮았을까?

그 새벽, 나는 낯선 도시에 처음 말을 건넸다. 14년 전의 빠리, 12월의 바람은 마른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기억처럼 매서웠고, 샹젤리제 거리에는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았다. 아직 혀끝에 따뜻한 크루아상이 남아있던 그 순간, 나는 개선문 앞에서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빠리와 첫인사를 나누었다.
그 어슴푸레한 하늘빛 아래에서, 나는 왜 그렇게 숨을 멈췄던 걸까? 도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말없이 무언가를 전하려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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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앉는 시간, 개선문을 걷다

그리고 오늘. 시간은 오랜 벨벳 장막을 걷어내듯, 나를 다시 그 자리에 데려왔다. 어둠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하는 매직아워였다. 빠리의 하늘은 그 시간만 되면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진다. 햇살은 아직 조금 남아 있었고, 저 멀리 붉은빛으로 물든 해가 지는 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개선문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빠리의 중심처럼 서 있는 그 거대한 문은, 시간의 마디마디를 기억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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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은 빠리의 중심처럼 서 있다.
그 둘레로는 마치 별처럼 12개의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각 도로에서 흘러든 자동차들은 개선문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고, 다시 제 길을 찾아 빠져나간다.

이 원형교차로의 도로는 빠리 시내의 다른 길들처럼 돌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빠리는 그 불편함을 고집한다. 그것이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시간의 질감이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때로 불편함 속에서 더 오래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개선문 아래로는 횡단보도가 없다.
그래서 도로를 가로질러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은 지하통로를 이용한다.
나도 길을 따라 내려가 지하도를 지나 개선문 아래로 걸어갔다.
도시가 보호하듯 숨겨놓은 길을 따라, 천천히 그 거대한 아치 아래로 다가갔다.


g_j23Ud018svcz4ng1ctqqdgg_bxeu2s.jpg?type=e1920_std * 석양의 개선문, 2025년 4월, 전성일(에투왈)


빛보다 더 조용한 어둠의 온도 속에서, 문은 낮보다 또렷하게 제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꼭대기에 올라 빠리 시내의 야경을 바라보았지만, 나는 오르지 않았다. 다리가 무거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이 문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마주 서는 것, 서서 바라보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개선문은 왜 ‘별’이라는 이름을 품게 되었을까?


c_j48Ud018svc19ichahpogc3v_bxeu2s.jpg?type=e1920_std * 개선문에서 바라본 라데팡스 그랜드 아르슈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의아했다.
개선문의 정식 명칭은 ‘Arc de Triomphe de l’Étoile’, 곧 ‘별의 승전문’이다.
‘에투왈(étoile)’이란 프랑스어로 ‘별’을 뜻한다.
그러나 하늘이 아니라, 땅 위에 떠 있는 별이었다.
나폴레옹 3세가 빠리 도시개혁을 할 때, 오스만 남작은 이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길을 방사형으로 뻗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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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가장 유명한 길이 바로 샹젤리제 거리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콩코르드 광장을 지나 카루젤 개선문과 루브르 궁전이 보인다. 정반대 방향에는 빠리의 미래라 불리는 라 데팡스(La Défense)의 야경이 펼쳐진다. 카루젤 개선문, 에투왈 개선문, 그랑드 아르슈(La Grande Arche), 이 세 개의 문이 정확히 일직선상에 있다. 프랑스인들은 이 선을 “La Grande Axe, 위대한 축”이라 부른다.

루브르 궁은 왕권의 상징이었고, 개선문은 제국의 위엄을 상징하며, 그랑드 아르슈는 현대 민주 공화국의 비전을 품고 있다. 빠리 시민들은 아침마다 이 축의 일부를 지나치며 출근하고, 주말이면 루브르나 샹젤리제에서 산책을 즐긴다. 이 일상이 곧 역사와 나란히 걷는 삶이 된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 축 위에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내며, 미래를 향해 걷는다. 그 길은 곧 그들 자신인 것이다.

오늘, 나 역시 그 길 위를 걸었다.
낯선 이방인의 발걸음으로 조심스레 더듬으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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