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루브르는 왜 더 아름다울까?
에투왈 개선문을 등지고 샹젤리제의 불빛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전시는 이미 끝났고, 밤의 시간이 도시에 내려앉아 있었다. 유리 피라미드 앞에 멈춰 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낮과는 전혀 다른 루브르의 얼굴이었다. 거대한 궁전의 외벽은 황금빛 조명에 물들고, 피라미드는 별빛을 머금은 수정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사실 루브르는 오랜 시간 왕의 궁전이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이후, ‘민중의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였을까. 낮에는 권위와 위엄으로 다가오던 이 공간이 밤에는 마치 오래된 비밀을 품은 친구처럼 느껴졌다.
고대와 현대, 왕권과 민주주의를 품은 구조물
1980년대 초, 루브르 박물관은 새로운 시대적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어둡고 복잡한 입구 대신, 박물관의 심장부에 새로운 통로를 마련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프랑스 특유의 ‘기념일 문화’도 한몫했다. 프랑스는 유난히 10주년, 100주년 같은 기념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다. 1889년,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에펠탑을 세웠고,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며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했다. 그리고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루브르의 새로운 상징물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유리 피라미드는 단순한 입구가 아니다
이 선언은 곧 하나의 건축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그 임무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I.M. 페이에게 맡겨졌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뜻밖의 제안을 내놓는다.
“루브르의 중심에,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닮은 거대한 유리 구조물을 세우겠습니다.”
이 발표에 프랑스 예술계는 발칵 뒤집혔다.
“수백 년 된 고성 앞에 무슨 SF 영화 같은 건축물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페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피라미드는 인류 문명의 상징입니다. 건축의 가장 원형적인 형태이자, 미술사의 기원을 향한 경의입니다.”
결국 그의 말처럼, 루브르 피라미드는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미술사적 장치이며, 과거와 현재, 고대와 현대, 권력과 민중을 잇는 투명한 시간의 문이 되었다.
이 문을 지나면, 고대 이집트 조각에서 시작해 헬레니즘 조각, 르네상스 회화, 프랑스 혁명기의 작품들까지 수천 년에 걸친 예술의 흐름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여정의 입구를 인류 최초의 기념비, 피라미드가 지키고 있다는 것. 이보다 더 아름답고 상징적인 장치는 아마 없을 것이다.
거꾸로 된 피라미드는 무엇을 말하는가?
밤의 루브르 한켠에는 또 하나의 피라미드가 숨어 있다. 지하에 위치한 ‘거꾸로 된 피라미드(Inverted Pyramid)’.
루브르 쇼핑몰을 통해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이 구조물은, 특유의 형태와 위치 때문에 여러 소문을 불러왔다. '다빈치 코드'에서 성배의 비밀이 숨겨진 장소로 등장하면서 그 신비로움은 한층 더해졌다. 물론 이 설정은 허구이지만, 루브르가 품은 상징성과 고대 문명의 기하학적 언어가
도시 깊숙이 배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흥미로운 사례이기도 하다.
빠리의 밤이 더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그날 밤, 빠리의 공기는 맑고 투명했다. 광장은 조용히 잠들어 있었고, 루브르의 조명은 시간마저 잊은 듯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걸었고, 아무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곳의 야경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수세기를 견딘 돌과 유리, 예술과 혁명의 잔향, 그리고 낯선 이방인의 마음을 감싸는 빛의 기억이었다. 그날, 파리에서의 첫 밤은 그렇게 끝이 났다.
숙소까지는 단 3분 거리였지만, 그 짧은 길은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느릿하고 깊게 다가왔다.
오늘 하루, 빠리의 풍경을 따라 3만 보 넘게 걸었다. 하루 종일, 거의 멈추지 않고 길 위에 있었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설레었다.
다시 돌아온 숙소, 고풍스런 19세기 아파트가 조용히 문을 열고 따뜻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도시는 저물었고, 나 또한 그 빛 속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렇게 또 한 번,
내일을 맞이할 희망을 품고
별빛처럼 조용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