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은?

최은영 작가 <내게 무해한 사람> 문학모임 후기

by 에투왈

만남 ~ 관계 ~ 이별


누구에게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첫사랑 일 수도 있고 아쉽게 헤어진 연인 일 수도 있고 좋아하던 선생님, 부모님이나 어릴 적 같이 놀던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보고 싶다. 지금의 구순을 넘기신 아버지보다는 내 나이보다 적으셨던 그때의 아버지를 다시 보고 싶다. 언제나 말이 없고 과묵했던 아버지였지만 이런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중학교 때 단짝이던 친구 2명도 보고 싶다. 그러나 애써 찾을 용기는 없다. 우리는 모두 이상하게도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無害와 誣害 사이

"상처는 갈등에서 비롯되며, 갈등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관계를 맺는 한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생'은 야속하게도 좋은 감정에게조차 '상처'라는 가시를 숨겨 놓았다. 그래서 상처 주지 않는 사람(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청춘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눈시울이 뜨끈해질 수밖에 없다."
(김태영 선생님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에 대하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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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하면 떠오르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 한 편이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흰 종이에 손을 베었다.
종이가 나의 손을 살짝 스쳐간 것뿐인데도
피가 나다니. 쓰라리다니.
나는 이제 가벼운 종이도
조심조심 무겁게 다루어야지 다짐해 본다.
……
내가 생각 없이 내뱉은 가벼운 말들이
남을 피 흘리게 한 일은 없었는지
반성하고 또 반성하면서...
(종이에 손을 베고 -이해인)

<내게 무해한 사람>은 청춘소설이고 성장소설이다.
無害는 해가 되는 않음이고 誣害는 상대방에게 해를 입힘이다.
(제노바 님)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無害 한 사람이거나 誣害 한 사람일 것이다. 또 사이 어딘가에 있는 존재일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중의적 의미로 사용했을 것이다. 최은영 작가는, 관계가 단절되는 부분을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도래 낸다. 잔인하리만큼 집요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이별의 상처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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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은 '모래'이다.

서로 뭉쳐지지 않고 연약하며 손으로 잡으면 으스러지고 바닷가 모래를 밟으면 발가락 사이로 전해지는 기분 좋은 소름이 느껴지는.
하지만 다른 무엇인가와 결합하면 단단한 소재로 변형되어 유용한 쓰임으로 활용된다.

첫사랑의 여름과
폭력적인 가부장제와
형제자매의 애증
청춘의 시절 인연
우정과 의도하지 않은 배신
모호하고 건조한 삶
담담한 이별

이 모든 짧은 이야기들이 때론 불편하지만 우리들의 실존적이고 근원적인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들은 나에게 무해한 사람이지만 무례한 사람들이었고 그 상처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단련받고 성장하고 있다.
(콩자님)

<모래>를 최소 단위 원자나 “점”으로 보면 다시 탄생과 진화를 위한 시작 단계로 연결되는데 그렇다면 <모래로 지은 집>에서 사람을 상징하는 메타포인 모래는 나비와 더불어 이러한 의미가 생성된다.
사람-->
시작, 끝, 상처, 치유, 회복, 성장
해가 지기 직전의 오후와 저녁 사이 찰나의 “틈” 같은 책. 틈새는 발견하면 아름다움이, 보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산통을 겪듯 낳은 키워드가 <희미한 사람>이었는데 쌍둥이처럼 3초 뒤에 <틈>을 얻었다.
(somehow 님)

책을 본 후 시작과 끝을 연결해 보면 신기하게 연결이 된다.
책의 첫 문장 : 열여덟에 만났다.
마지막 문장 : 넌 네 삶을 살 거야
시작을 알리는 <만나다>와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20명의 마지막 <네 삶>으로 귀결.
만나다 --> 관계 --> 나로 귀결
즉 --> 네 삶을 살아라
(somehow 님)

이 책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마음속 깊이 꼭꼭 감추고 싶었거나 어쩌면 자신도 알지 못했던 감정과 기억의 파편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매 순간 내가 거기에 있음을 느낀다.

나는 이 책에서 천경우의 작품을 소환해 본다.
예술과 문학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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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1>

파리의 청소부는 새벽일을 마치고 귀가한다.
천경우는 그때 파리의 청소부의 장갑을 촬영하고 그들에게 '지금 가장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그려달라고 한다.
그 장갑 사진과 그들이 그린 초상화를 나란히 병치하여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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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2>

헬싱키에서 6종의 새소리를 녹음하여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관객들은 그 새소리 중 하나를 듣고 그 새의 실루엣을 상상으로 그린다.
다 그린 새의 그림 아래에 자신의 말을 가장 잘 경청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의 이름을 적는다.
천경우의 같은 프로젝트가 지금 서울에서도 열리고 있다.


며칠 전 친구의 권유로 집에 있던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디지털로 변환했다.
마침 어제 USB에 담긴 결혼식 동영상을 택배로 받아 보았다.
내 나이보다 어린 어머니가 나오셨고 친척, 친구, 직장동료들이 보였다.
지금, 그때의 그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만남 ~ 관계 ~ 이별 ~ 네 삶을 삶

뜨거웠던 청춘을 따라 거슬러 올라 회상해 본다.
인연은 무의식의 산물이라 하기에 더 조심조심,
가벼운 종이를 조심조심 무겁게 다루듯
남은 생의 인연들이 아름답게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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