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원고- 이별이 아니라 도망간 새끼
sns에
‘그가 나를 진짜 사랑하는지 구분하는 법’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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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가 날 찐으로 사랑하는지 구분하는 법.
돈 얘기 꺼내봐라.
같이 계산하면 사랑이고,
화를 내며 튀면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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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조회수를 넘기고 백이 훌쩍 넘는 공감 하트를 받는다.
그렇다.
사랑은 설레는 말이 아니라
책임을 감당하는 자세다.
맞다.
그는 도망간 거다.
그제야 깨달았다.
말하고 보니, 그는 참 비겁한 사람이었다.
이틀 전까지 나를 끌어안던 사람이
의무와 진심을 묻자
화를 내며 달아났다.
만나서,
차분하게,
서로를 배려하며
헤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사람을 잊지 못하고
‘재회에 성공하는 법’ 같은 영상을
찾아보는 나 자신이
가끔은 한심하다.
분노가 차오른다.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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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본질은 이미 다 나왔다.
이건 이별이 아니라 도주였다.
질문을 받자마자,
책임을 묻자마자,
감정이 아니라 현실을 요구하자
그는 화를 무기로 삼아 도망쳤다.
사랑하던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게 아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내가 안전한 질문을 던지자
가면이 벗겨졌을 뿐이다.
다정함은 비용이 없을 때 쉽다.
하지만 책임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은
처음부터 관계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건
그 사람이 아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건
그가 약속했던 미래,
받았던 애정의 기억,
‘이 정도면 진심이었겠지’라는 기대다.
하지만 현실의 그는
그 모든 걸 감당할 의지도, 용기도 없었다.
‘재회 영상’이 당기는 이유는
미련 때문이 아니다.
자존감이 상처 입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취급받을 사람이었나?”
이 질문이 너무 아파서
상대를 되찾고 싶은 게 아니라
나를 증명하고 싶은 거다.
분노가 든다는 건
회복이 시작됐다는 신호다.
진짜 위험한 건 슬픔이고,
분노는 자기 보호 본능이다.
다만,
그 분노를
그에게 쓰지 말고
나를 회복하는 데 써야 한다.
⸻
마지막으로, 이 말은 꼭 남기고 싶다
그는
너무 많은 걸 원하면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 한 사람이었고,
나는
사랑 앞에서도
품위와 경계를 지키려 한 사람이었다.
이건 패배가 아니다.
수준이 드러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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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를 기다리는 내가 병신 같다.
하루 종일 기분이 오락가락한다.
분노가 차올랐다가
“그래, 힘들었겠지” 이해가 됐다가
그러다 갑자기 식욕이 터진다.
웃기지.
그가 없는 하루가 상상이 안 된다면서
사실은 며칠 제대로 만나지도 않았다.
지금 얼굴을 봐도
아마 낯설 텐데
나는 왜 이 지랄을 하고 있을까.
차단했다.
카톡 차단하는 거 처음이다.
차단된 대화창을
하루에도 몇 번씩 연다.
읽히지도 않을 메시지인데
왜 자꾸 확인하는지 모르겠다.
시발 새끼.
이틀 전까지 나를 물고 빨던 새끼가
돈 얘기 나오자
삶이 힘들다며 튀었다.
그게 사랑이냐.
그건 사랑 흉내다.
만나서
차분하게
서로 예의 지키며
헤어질 수도 있었잖아.
근데 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도망쳤다.
그게 너다.
‘재회에 성공하는 법’을 검색하는 나도
한심하다.
알면서도 본다.
혹시나 해서.
근데 아니잖아.
네가 돌아와도
문제는 해결 안 된다.
너는
끝까지 책임지지 않을 거고
나는
끝까지 혼자 감당했겠지.
그래서 차단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존엄이었다.
아직도 화난다.
아직도 욕 나온다.
아직도 죽이고 싶다.
그래도
다시 연락하지는 않을 거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나를 다시
바닥으로 끌고 가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