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카톡 차단이란 걸 처음 해봤다.

차단 이후 7일간의 기록

by 모닝커피

카카오톡 차단이라는 걸 처음 해봤다.

처음에는 나를 함부로 대하는 그 사람을 차단하기 위한,

나의 방어기제였다.


그런데 차단을 해놓고도

매일 아침 카톡을 열었다.

매일 밤에도 열었다.

매 순간, 습관처럼 확인했다.


마지막 날짜,

0월 0일에서 멈춰 있는 우리의 대화를 들여다봤다.


이상했다.

어떤 낌새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아.

이제 나도 연락 안 할게.”


이 문장이 오기 전날까지

우리는 영화를 볼까,

운동할까 연습장을 갈까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데이트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렇게 황당한 이별 통보가 또 있을까.

더 황당한 건,

그가 쉰넷이라는 사실이다.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걸까.

돌이켜보면 그는 처음부터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걸 알아챘을 때,

나는 진작 그만뒀어야 했다.


“마음이 약해서”,

“정이 많아서”라는 말은

이제 변명이 되지 않는다.

나 역시 책임이 있다.


나는 그에게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너는 나의 comfort zone”이라고 말했다.


서로 순수해서,

서로 솔직할 수 있어서

우리는 드디어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다고 믿었다.


그는 빠르게 돌진했다.

사귄 지 한 달 만에 결혼 이야기를 꺼냈고,

아이 이야기도 했다.


그의 상황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그걸

‘순수함’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건 순수함이 아니라

경계 없는 욕망이었다.


그는

“네 옆에 있으면 안전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네가 평생 내 곁에 있어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3개월 만에 반지를 받았지만

그 반지의 명분은 끝까지 그의 방식이었다.

내 새로운 사회적 성과를 축하해달라고 했더니 첫 선물로 반지를 준비해왔다.

내가 원하는 악세서리나 내가 선호하는 디자인은 묻지도 않았다.

(이른바) 승진축하 선물은 어느새 그의 프로포즈가 되어 있었다.


나를 위한 선물을 구했는데

그의 결심, 그의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부담스러웠다.

떨어져 있는 그가

내 손가락에 채워준 반지는

선물이라기보다 족쇄처럼 느껴졌다.


그 불편함을 애써 외면했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증표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

이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구나.


남에게 지나치게 잘하는 사람은

돌변했을 때 더 무섭다.

과한 친절과 과한 애정은

쉽게 비틀어진다.


나는 그런 경우를 이미 여러 번 봐왔다.

그래서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을 감았다.


외로웠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언제나 가장 나쁜 선택과 손을 잡는다.

이 나이에 이 외로움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건 어쩌면

아버지로부터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의 언어에서 시작된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사랑은

이 결핍마저 이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아주는 쪽에 가깝다.


어쨌든 그렇게 만난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최고점을 맛봤고,

지금은 최저점을 지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기록을 통해

그를 이해하려는 일을 멈추고

나를 이해하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려 한다.


그러한 사람은

나를 서서히 극단으로 몰았다.

그래서 이제는 받아줄 생각이 없다.


차단하길 잘했다.

차단했다.

차단을 유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희망고문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카톡을 차단해도

연락하려면 얼마든지 방법은 있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의 노력과 반성 없이 다시 만나는 일은

나 스스로를 배신하는 일이다.

그래서 만나지 않겠다.


나는 소중하다.

이건 복수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이다.


이제는 아파도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하겠다.


잊지 말자,

앞으로 살아갈 날이

이미 살아온 날들보다 더 짧을 수 있기에.


그 사람은 개복치다.

조금만 불편해도 도망친다.

자존심만 센 사람은

끝내 반성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 생각의 주체를

그에게 두지 말자.


“그가 어떻게 할까”가 아니라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자.


노력하자.

하면 된다.


2026년은

너무 고민하지 말고

바로 행동하는 해로 만들자.


시간은 많지 않다.

그래서 더 신중하게,

그리고 더 과감하게 살자.


나 자신,

진짜로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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