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 엄마이야기 2
아이 태몽꿈을 따로 꾼 적은 없었다. 꾸었는데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여태껏 태몽이라고 생각해 본 꿈이 없기에 내가 꾼 태몽은 없었던 게 맞다. 대신 친정 아버지께서 태몽을 꿔 주셨다.
물가에서 제법 큰 물고기가 아버지에게 다가오는 꿈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꿈 덕분에 아이에게 들려줄 태몽이 있다. 물고기 꿈은 다산, 부유함, 풍요 등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되는데, 나중에 나의 아이는 어떤 아이가 될까?
가끔 아이를 재울 때 너무나 사랑스러워 이렇게 말해주곤 한다.
"착하고 예쁜 아이를 삼신할매가 저에게 보내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그러면 아이는 묻는다.
"삼신할매가 어떻게 나를 엄마아빠에게 보내?"
"응, 삼신할매가 하늘에서 요래조래 살펴보시고, 아이가 필요한 어떤 집이 있으면 그 부모에게 어울릴 만한 아기를 골라 엉덩이를 한 대 찰싹 때리며, 아가야, 저기 저 집으로 가거라!~"하시면서 보내지"
"아, 정말? 그럼 삼신할매가 정말로 아이를 골라서 보내는 거야? 그런데 엉덩이는 왜 찰싹 때리면서 보내는 거야?
"그럼, 그 집이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필요한 아이를 보내주시지. 엉덩이를 찰싹 때려야 다른 집에 가지 않고 빨리 한 번에 그 집으로 잘 보내게 되지ㅎㅎ"
"아~ 그런 거구나..."
"그럼, 그래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내 새꾸가 왔잖아. 그러니 엄마 아빠도 많이 행복한 거고... 우리 집에 네가 와줘서 너무 고마워. 착하고 바르게 그리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렴"
현재 11살인 아이는 아직도 삼신할매가 아이를 적당한 부모에게 보낸다는 이야기를 진짜로 믿고 있다. 아이가 이 글을 본다면 엄마가 지어낸 이야기구나 생각할지 모르지만, 알게 되더라도 그렇게 믿고 싶어 할 것 같다. 삼신할매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아이와 부모의 결속력이 왠지 더 강해지는 느낌이랄까…
삼신할매는 태어날 아이를 점지해 주면서 아이의 건강과 수명을 관장하고, 출산 후 산모의 건강도 지켜주신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난 날에는 삼신상에 미역, 미역국, 밥, 정화수를 올리며 기도를 드리는 집도 있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양가 어머니들도 그런 것을 알려주시지 않으셨다. 실제로 조리원 동기 중에는 나보다 훨씬 젊은 새댁이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삼신상을 차리는 사람이 있구나! 새삼 놀랐을 뿐이다.
삼신상을 차리고 정성스러운 기도를 드리지는 않았지만 왠지 삼신할매가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그리고 늘 마음속에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삼신할머니께 구하고 의지하는 마음도 분명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정말 아이를 지켜주시는 분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삼신할매께 여태껏 아이를 잘 자라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 한번 드려야 하나? 그래야겠다.
임신 당시 삼신할매가 어떤 아이를 점지해 주실지 많이궁금했다. 성별은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함 투성이었다.
병원에서는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건 불법이다. 8개월을 아이 성별을 모르고 있어야 하다니 성질 급한 나로서는 너무나 답답한 노릇이었다. 여러 차례 검진을 간 후 산부인과 과장님이 핑크네요~라고 슬쩍 흘리셨다. 그때가 5, 6개월은 지났을 듯한데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핑크? 임신 진단을 받을 때만큼 얼떨떨했다. 이 집 대가 끊기지 않기 위해서는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나는 왠지 아들을 낳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정말 반전이었다. 딸?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딸을 낳는다고? 신기하고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지금 글을 쓰다 보니 이런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 아이에게 참 미안하다. 왜냐 하면 나는 지금은 딸이라서 너무 좋거든.
만약 내가 아들을 낳았다면? 지금은 그게 더 생소한 느낌이다. 아이가 주는 기쁨 자체도 크지만 딸이 나에게 주는 행복과 기쁨은 어마무시하다. 어릴 때는 몰랐어도 어느 정도 커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가니 요즘같이 바쁜 시절에는 딸은 정말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쇼핑 가서 옷도 골라주고, 목욕탕 가서 등도 밀어주고. 카페 가서 아이와 나누는 수다는 오랜 친구와 나누는 대화처럼 즐겁다. 요즘 아이들은 언어 수준도 높아서 대화도 잘 통한다. 그러니 아들엄마인 나의 모습은 이제는 더 이상 상상 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아들 엄마가, 딸 엄마보다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아이를 여럿 낳고 싶었지만 현실이 그리 되지 않았다. 그래서 외동으로 커가는 아이에게, 외로움을 잘 느끼는 아이에게 늘 미안했다. 그런 아이에게 내가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어 다행이고, 나도 친구같은 편안함을 얻을 수 있는 딸이 있어 좋은 거다. 그것은 솔직히 나의 만족이다.
삼신할매는 나에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을 점지해 주셨다. 정말 삼신할매는 우리 부부에게 적절히 어울리고 필요한 아이를 보내 주신 게 맞다. 그래서 나는 삼신할매의 선택에 매우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