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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린정 Jan 19. 2024

첫사랑, 첫 셀렘의 너

나무늘보 엄마이야기 1

결혼한 지 1년이 지나도 아이 소식이 없었다.

서른 중반. 1살 차이의 우리 부부는 당시 조금은 늦은 나이에 결혼했지만 아이를 가지는 데 그리 조바심 내지는 않았다. 연애기간이 1년 정도로 짧았던 탓도 있었고, 조금 더 돈을 모았을 때 아이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때가 되면 만날 인연은 반드시 만난다.

2013년 초 봄. 추위가 한 풀 꺾인 어느 날부터 몸이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느낌이었다. 며칠째 으슬으슬 감기기운이 있고, 속도 더부룩한 것이 좋지 않았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약국에서 임테기 2개를 구입해 테스트를 해보았다. 앗! 두 줄이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며칠 후 남편과 간 산부인과에서 임신 5주째 접어든다고 했다. 세상에 내가 엄마가 되다니... 너무나 신기했다.


결혼하면 대부분 아이가 생긴다. 부모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나에겐 먼 일 같았다. 친구들의 육아 이야기, 시댁이야기는 늘 재미가 없고 흥미가 없었다. 사실 결혼은 했어도 엄마가 될 마음의 준비는 하지 못한 것 같은데 엄마가 된다니, 철없던 내가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임신 소식에 기뻐하는 남편과 부모님의 모습에서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나는 뱃속의 아이를 귀하고 소중하게 대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


원래 잠이 많고 체력이 약하다. 결혼하고도 직장인 병원을 계속 다녔기에 에너지 소모가 많은 간호사 일은 은근히 힘들었다. 특히 투석실 업무는 더 그랬다.

임신초기 어느 날 일을 하고 있던 중 느낌이 이상했다. 하혈기가 있었다. 너무 놀라 병원을 찾아가서 검사를 하니 다행히 태아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이 때문에 아이가 더 걱정이 되었고, 고민을 하다가 남편과 상의 후 얼마 뒤 직장을 그만두고 뱃속의 아이만 잘 돌보기로 결정했다.


항상 정신없이 살다가 나만의 시간이 생기니 뱃속의 아이에게 더 관심이 갔다. 첫사랑 같이 설렘으로 다가온 아이는 내게 늘 궁금증을 자아냈다. 남자아이일까? 여자 아이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성격은 어떨까?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를 품게 되다니, 비로소 세상에 태어나서 나도 큰 일을 한다는 사명감에 뿌듯했다.

아이 태명은 은총이었다. 은총이 가득한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편과 지었다. 어릴 때 나의 부모님은 맞벌이로 항상 바쁘셨고, 자식들 사랑하셔도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시거나, 애정 표현을 많이 해주시지는 않았다. 부모님을 사랑했지만 늘 그런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나의 아이에게는 많은 애정표현과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러고 싶었다.


다른 엄마들도 아이를 가지면 다 그럴 것이다. 아이에게 집중하고 태교도 잘하고 싶어 하고...

그건 모성이니 당연한 거고, 나 역시도 그랬다. 매일 집 근처 공원 산책을 하고,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면 아이 소근육에 좋다고 해서 학창 시절 배우지 못한 피아노 학원도 끊어서 다녔다. 문화센터에서 재봉틀 수업도 배우고,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태교에 좋다는 음악도 자주 들려주었다. 좋은 것을 위주로 먹고, 몸도 엄청 아꼈다. 내 아이는 특별하다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유난스럽기도 하다.


엄마가 되기 위해 부지런해지는 것은 태교 때부터인 것도 같다. 원래 기본적인 일만 하고, 침대에 뒹굴뒹굴 누워있기를 좋아했던 내가 쉴 때는 쉬더라도 피곤함을 무기로 무작정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아이는 누구에게나 선물이고 보물이다. 더구나 첫 아이는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나무늘보 엄마도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좋은 엄마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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