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의 핵심은 “사회의 무의식”을 노래한다는 것이다.(우노 츠네히로, 서브컬처 강의록 참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주관적 정서가 표현된 것이 음악이라면(헤겔, 헤겔 예술철학 참조), 대중가요는 사회의 무의식을 객관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담아낸다. 이러한 사회의 무의식에 더해 자기의 무의식까지 담아낸다면, 아티스트의 범주로 올라선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획득한 경우가 보기 드문 것은 그 때문이다.
여기서 이야기되는 무의식이란 신비하다거나,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 아니다. 무의식이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본심이다. 내면에 품고 있는 본심이지만, 고정관념에 의해 억압되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감정 또한 그렇다. 내가 슬프다고 직장이나 집안에서 소리 내어 울 수 없다. 그 슬픔의 내용을 다른 이들에게 터놓고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다. 사회의 고정관념은 이처럼 우리의 감정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억압된 상태를 철들었다거나, 이제 사회생활 좀 할 줄 아네라고 표현하는 것 또한 사회의 고정관념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정신분석에서는 대타자라고 말한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힘들면 쉬어야하는 인간은 자연적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상징체계, 언어로 건설된 문명세계이다.
문명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언어에 의해 문화적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한국인과 미국인을 분류하는 가장 큰 차이는 언어이다. 언어사용에 있어서 어순과 문법이 다르기 때문에 사고방식도 다르다. 따라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언어의 습득인 것이다.
언어를 통해 구성된 문명은 개인의 무의식, 더 나아가 개인들의 공동체인 사회의 무의식을 억압한다. 개인의 본심이 저마다 터져 나온다면, 사회의 질서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질서와 구조의 유지를 위해서 문명은 본심을 억압한다. 따라서 문명 속의 인간은 자신의 본심과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문명에 의해 정교하게 억압된 본심을 리듬과 박자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 대중가요이다. 음악을 통해 위안을 얻고, 혹은 같이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그 때문이다. 노래를 들을 때만은 본심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리듬에 내 몸을 맡길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본심 또한 언어를 통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무의식 또한 대타자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주체는 사회의 시선을 통해서 구조화된다. 정신분석은 모든 것이 대타자, 즉 상징적 질서의 산물이지만 거기서 억압되는 것과 드러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의 억압과 드러남의 구조를 분석하면, 개인의 특이성을 파악할 수 있고 그로부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 정신분석의 기본 입장이다. 이러한 새로운 삶의 창조는 예술의 창조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비추어보았을 때, 최근 K-POP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지구화 시대에 개인의 무의식을 잘 캐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의 경우 신종 코로나로 인해 답답한 사람들의 마음을 폭탄 터뜨리듯이 시원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노래를 듣는 순간, 상징적 질서로부터 잠시 벗어나 공감을 통한 카타르시스가 일어난다. 이러한 순간의 자유를 불러오는 것이 음악의 힘이다.
이처럼 대중가요는 당대의 사회분위기를 잘 표현한다면 히트하기 마련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1970년대 대중가요는 실패한 전공투 세대의 감정과 회한을 담아내고 그들을 위로하는 음악이 대세였다.
전공투는 일본이 변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 일본인들이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나로 뭉쳐 국가폭력에 대항했던 것은 사실상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전공투는 일본 제국주의와 권위주의 체제의 오만함을 심판하려고 했던 최후의 시도였다.
일본인들 또한 전공투의 목적을 은연중에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보수적인 사회의 고정관념에 억압되어 그들에 동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공투가 소멸한 이후, 70년대 사회의 무의식은 그들의 좌절감에 공감하고 실패의 역사를 위로하는 음악들이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절망의 시대를 벗어나 1980년대가 되자 일본의 경제성장과 번영에 발맞추어 마츠다 세이코가 등장했다. 푸른 산호초와 같은 노래를 들어보면 귀여운 소녀가 내면의 감정을 밝게 노래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혁명이 실패해서 그것을 위로한다는 감정은 사라지고, 팍팍한 도심 속에서 파라다이스를 동경하는 경제인들의 정서가 사회의 무의식이 된다. 본격적인 의미의 아이돌이 등장한 것도 이때이다.
1980년은 마츠다 세이코의 시대였다. 맨발의 계절부터 시작해서 푸른 산호초로 몇 개월 사이에 전국구 아이돌이 되었다. 야마구치 모모에가 은퇴한 자리를 마츠다 세이코가 메운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카모리 아키나는 오디션에서 야먀구치 모모에의 노래를 부르며 데뷔한다. 1982년에 발매한 최초의 곡인 슬로 모션은 첫 만남의 순간을 노래하는 전형적인 대중가요의 가사를 가지고 있다. 사랑의 순간을 파라다이스와 같이 취급한다는 점은 당대의 아이돌 가수의 테마와 비슷하기도 하다.
그 내용 또한 애인 후보를 만난 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기억 속에서 재생되고 있다는 것으로, 크게 주목할 것은 없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점은, 이 노래를 부르는 나카모리 아키나도 그렇지만 노래의 이미지 전체가 마치 과거를 회상하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돌은 우상이라는 뜻을 가진다. 1980년대쯤 되면, 일본은 경제적 번영도 그렇지만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심각한 문제도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로운 분위기로 변화했다. 실제로 여유가 생겼기도 하지만, 미국에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경제적으로는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마츠다 세이코가 등장했고, 뒤이어 나카모리 아키나와 코이즈미 쿄코와 같은 주관적 정서에 호소하는 아이돌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팍팍한 사회생활에서 숨을 돌릴 만한 가요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는 뜻은 1980년대 일본이 여가의 가치를 중시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파라다이스와 같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를 이상향으로서 그리워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나카모리 아키나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슬로 모션의 두 달 뒤 발매된 소녀A이다. 마츠다 세이코와 정반대되는 “불량소녀”이미지를 통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나중의 인터뷰에서 나카모리 아키나는 소녀A라는 곡을 불렀을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소녀A는 시건방진 태도를 가진 소녀가 성인 남성을 유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서 새로운 정서를 담아내는 작품을 추구한다. 그건 인터뷰를 보아도, 노래를 들어봐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소녀A는 불량소녀라는 일본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답습한 노래이다. 따라서 이 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한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고정관념, 즉 대타자는 쉽사리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대타자에 맞추어 살아가는 개인은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사회적인 캐릭터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이러한 가면을 벗고 자기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가족이나 친구, 연인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최근에는 가까운 사람에게도 본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사회를 지탱해가는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개인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을 방어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수다인 기표를 동원한다. 대인관계에 있어 끊임없이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수다의 즐거움은 대타자의 대표적인 기능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사라져가고, 무의식은 흔적만을 남기며 타락한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후에 본인 취향의 노래만을 부른다. 즉 자기의 본모습을 드러내면서 사회로부터 승인받는 것을 예술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1986년을 기점으로 나카모리 아키나는 더 이상 사회의 무의식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의 무의식을 이야기하면서 사회로부터 그 특이성을 승인받는 예술적 승화의 과정으로 넘어간다.
고정관념, 대타자와 타협해서 나온 결과물이 소녀A라는 곡이었다. 타협을 좋아하지 않는 그녀의 성향상 이 노래가 좋아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노래는 그녀에게 고정관념과 타협했다는 부정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이 부정의 영향을 통해서 자신의 본모습을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녀A를 거친 이후 다시 솔직한 정서를 담아낸 세컨드 러브로 돌아온다.
이처럼 나카모리 아키나의 초기 3부작은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낸 슬로 모션이라는 발라드 → 일본의 고정관념을 재현해 불량소녀 컨셉을 담아낸 소녀A →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하여 다시금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낸 세컨드 러브라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중간의 소녀A라는 노래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감정을 담아낸다는 것, 본심을 드러낸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초기의 3부작의 성과를 발판삼아 “꿈”이라는 소재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