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Zjp0XND6Vy0
백도어는 뒷문이라는 뜻도 있지만, 부정한 방법이라는 뜻도 가진다. 뒷구석에서 뭘 계획하고 있는거야?라는 말이 있듯이, 뒤에 몰래 숨어서 부정한 짓을 꾀하고 있다는 뜻도 가진다. 여기에 “나이트”, 밤이라는 단어가 결합되면 부정한 밤이라는 뜻도 가진다. 부정한 밤이라면, 결국 밝은 대낮으로부터 이탈하여 세상의 고정관념과 일치하지 않는 다른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뜻도 가진다.
음악은 리듬과 가사를 통하여 의미를 전달한다. 리듬과 가사라는 기호체계가 하나의 목적을 이루어 구성된 것이 하나의 노래이며, 그 노래가 담고 있는 의미체계를 해석하여 전달할 수 있다면 음악평론이 완성된다.
그런데 불가사의(1986년)라는 앨범의 노래들은 모두 의미의 전달이 불가능하다.
첫째로, 나카모리 아키나의 의도대로 목소리가 뭉개져있어 정확한 가사의 전달이 불가능하다.
둘째로 곡의 멜로디가 일정하게 반복되기 때문에, 멜로디의 급변으로 인한 감정의 변화와 같은 부분을 유추하기가 불가능하다.
셋째로 가사가 대부분 단언이기 때문에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세 가지 점에서 유추해보았을 때, 불가사의라는 앨범의 곡은 의미의 전달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
의미의 전달을 넘어서 무의미의 영역으로 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라캉의 초기 정신분석의 목표는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을 체계화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무의식에 의해서 증상이 발생하고, 그것에 의해 고통 받아 생활이 불가능하지만, 동시에 향락을 얻고 있는 신경증자의 존재를 탐구하여 시스템으로 만들어보려는 것이 초기 라캉의 목표였다.(마츠모토 타쿠야, 향락사회론 참조)
신경증과 정신병을 나누는 기준으로 “아버지의 이름”이 제시된 것도 그 때문이다. 신경증자는 일단 상징계(언어)의 차원에 진입했기 때문에 발화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언어를 통한 치유가 가능하며, 증상의 원인을 잡아내면 완화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정신병은 상징계(언어)의 차원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화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무의미해보이는 자기만의 단어를 가지고 즐기고 있는 상태이다. 라캉은 이러한 상태를 S1을 통한 향락이라고 지칭한다. 모든 인간은 최초의 기표인 S1을 통해 자기만의 향락을 구축한다.
그런데 인간과 관계하는 최초의 타자, 즉 엄마를 통해서 자기만의 향락이 욕망으로 변한다. 엄마에게 울고, 보채고, 어리광부리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서 최초의 타자인 엄마에게 자기의 욕망을 채워달라고 요구하게 된다.
이렇게 욕망이 출현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개입으로 욕망이 좌절당하고, 상징계(언어)의 사용을 통해 대리하는 방식으로 욕망이 채워줘야 함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개입으로 좌절당한 욕망을, 언어라는 방식을 통해 욕망하는 방식으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욕망을 좌절시켰던 실제 아버지를 회피하여 언어의 체계인 “아버지의 이름”을 통하여 다른 방식으로 욕망을 채워나가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신경증자이다.
그런데 정신병은 언어의 체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거부하며 최초의 기표인 S1을 통해서만 향락하고 있는 상태이다. S1은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에도 이르지 못하고, S2로 나아가지 못한 채, 그 자체에서 맴돌고 있는 자기향락이다. 이러한 순수한 기표를 가지고 향락하는 것이 정신병의 상태이다.
이러한 S1을 통한 자기향락의 상태인 정신병은 초기 라캉에게는 드러난 적이 없던 부분이지만, 이후의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중요한 테마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아버지의 이름”과 가부장제의 쇠퇴가 두드러지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자기향락이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드러나거니와, 정신분석의 임상은 이제 증상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상의 의미를 제거하고 그로부터 무의미해보이는 최초의 기표인 S1을 발견하여 증상과 화해시키는 것에 주안점을 두게 된다.(마츠모토 타쿠야, 향락사회론)
따라서 후기의 라캉과 그의 수제자인 자크 알랭 밀레가 현재 추구하는 정신분석의 목표는 모든 개인에게 각자마다 존재하는 특이한 기표이며, 최초의 기표인 S1을 발견하여 그로부터 개인이 증상과 화해하고 승화시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되었다. 후기 라캉이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에 주목하고, 예술의 승화를 주목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를 지향하고 그러한 공백지점으로부터 창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주목한 것은 다음 시대의 새로운 정신적 조건을 발견하려는 임상적 실천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불가사의라는 앨범의 첫 곡인 백도어 나이트를 생각해보자, 이 앨범의 노래들은 기존과 음악과는 다른 방식의 새로움을 추구한다. 정형화된 리듬이나 명확한 의미의 가사를 통해 적확한 의미의 지시를 목표로 하는 음악의 구조와 다른 길로 나아간다. 그래서 앨범의 첫 곡부터 백도어 나이트인 것이다. 예로부터 진리의 상징이었던 태양과 반대되는 밤의 영역으로, 정문이 아니라, 백도어의 형식으로, 기존의 구조와는 다른 새로움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감상자는 이 앨범에서 아무런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 뭉개져서 들리는 목소리와 반복되는 리듬, 힘겹게 들었을 때 드러나는 단언에 가까운 가사들로 인해 짜증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앨범을 계속 듣다보면, 무의미를 추구한다는 것, 최종적으로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공백지점에 다다르는 것이 모든 현대예술이 욕망하는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모든 존재는 빈 항아리와 같이 형식은 있지만 내용은 없는, 공백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앨범을 듣는 사람은 새로운 음악의 방식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감상자를 지키는 것이 나카모리 아키나의 명예일 것이다.(이 노래는 가사의 마지막에 긍지, 명예라는 단어로 끝맺음하고 있다.) 이 노래는 그런 명예의 적극적인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