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제네제레이션
이 노래의 화자는 누구인가? 또한 청자는 누구인가? 부르는 이와 듣는 이가 명확하지 않고, 거기다 가수의 목소리는 뭉개져있으며, “뉴제네레이션”이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게 리듬은 무겁다. 한마디로 이 노래에는 조화가 없다. 안정적인 질서에 걸맞게 질서정연한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멜로디는 명확하지만, 나카모리 아키나의 목소리는 작게 들리는데다가, 발음 또한 명확하지 않다.
이렇게 오해를 연발하게끔 만드는 구성이 이 노래와 더 나아가 불가사의라는 앨범의 완성도를 높인다. 이 앨범은 오해로 점철되어 있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어떤 것도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의미를 뚜렷하게 알면 알수록 의미는 불명확해진다. 들리지 않는 나카모리 아키나의 목소리를 듣고 해석하려 해봐도, 그 가사는 일종의 단언묶음이라서 명확한 해석이 도출되지 않는다.
또한 이 노래에는 흔히 "삑싸리났다"고 표현하는 음 이탈도 등장한다. 1980년대 당시, 전성기를 맞이한 아이돌 가수가 정규앨범에 자신의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뭉갠 것도 이상할 뿐더러, "삑싸리"까지 넣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식에서 어긋나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이 음이탈은 일본어로 "이마와"라는 부분, "지금은"이라는 가사를 부를 때, 곡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다.
이 곡은 미래세대의 불안함, 혼돈, 좌절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삑싸리가 "지금은" 부분에서 났다는 사실은 미래의 불안과 혼돈은 지금도 다르지 않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의도하지 않은 진실일 수 있다. 과거나 현재, 미래 모든 인간의 시간적 궤적에서 의미는 전달되지 않으며, 무의미한 공백만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간 본연으로부터 출현하는 불안이나 혼돈은 어쩔 수 없는 존재의 상태이다. 그러한 상태의 인식이 정서적 충격을 통해서 나카모리 아키나의 목소리를 통해 "삑싸리"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시대는 명확한 의미의 전달이 불가능한 세계가 될 것이다. 앞선 글에서 라캉의 이론을 동원하여 설명했듯이, 새로운 시대는 무의미의 시대가 될 것이다. 나를 발견해달라는 외침처럼, 세계 속에서, 어둠 속에 파묻혀있는 인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이다.
작년에 발매된 게임인 "사이버펑크2077"을 플레이하고 느낀 점은, 지금의 현실은 사이버펑크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태동한 사이버펑크 장르는 미래를 예견했지만, 현대 시점에서 보면, 과거에 미래를 예견했던 장르가 현실에서 사실이 되었다는 점에서 시간의 냉혹함을 느끼게 한다.
사이버펑크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미국의 발전사를 간략하게 이해해야 한다. 청교도들이 아메리카에 진출했을 때, 그들은 동부의 13개 식민지만을 자기의 영역으로 확보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민의 자치를 통한 타운이나 빌리지로 구성된 소규모의 카운티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었으며, 타운이나 빌리지의 모든 정치적, 행정적 결단은 주민의 의사가 중심이 되었다. 미국 민주정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러한 공동체가 어떤 의사결정을 가지고 작동하는지, 또는 어떻게 파괴되는지 확인하려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커버넌트"를 감상하면 좋다.
영국제국으로부터 자신의 주권을 확보한 미합중국은 서부로 영토를 개척해 나아간다. 이 과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부개척사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배척하고, 유럽의 굴러온 돌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캘리포니아까지 영토를 확장한 미합중국은 영국제국의 뒤를 이어 바다를 지배한다. 미합중국의 힘은 그들의 정치력과 경제력, 문화력에서도 나오지만 항모전단을 전 세계에 투입할 수 있는 군사력에서도 나온다.
끊임없는 서부진출을 통하여 세계를 지배한 미합중국은 더이상 진출할 곳이 사라지자, 마침내 가상공간의 개발로 나아간다. 미국 영토의 서쪽 끝자락인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서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고, 미합중국은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애플로 대표되는 가상공간의 지배자들은 모두 미국에서 탄생했으며, 서부개척사의 최후의 아이콘이다.(오바라 가즈히로, "플랫폼이다", 황혜숙 옮김, 한스미디어 참조)
가상공간에서까지 세계를 지배한 미국은 1980년대가 되자 막대한 지위에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들이 계속해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이 우리를 넘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처분을 받을 것인가? 이러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장르가 "사이버펑크"이다. 사이버펑크 장르에서 한, 중, 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국가들은 엄청나게 발전해있으며, 미국의 라이벌로 등장한다. 이들이 모두 1980년대에 발전했거나 성장하여 장래에 미국을 위협할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온 몸을 전신 사이보그화하고, 가상공간에서 각종 사건이 일어나며, 해킹을 통한 범죄가 계속되는, 다국적기업이 지배하는 미래세계를 그려낸 것이 사이버펑크 장르의 특징이다. 이 중심에는 미국이 제국의 지위를 상실하고 몇 개의 패권국 중심으로 분열하여 제국이 사라진 미래세계에 대한 아메리카인들의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다.
이처럼 1980년대에는 번영이 지속되었지만 무언가 두려움이 존재했다. 어쩌면 이 번영은 잠시의 꿈에 불과하며 그러한 꿈에서 깬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인간의 본질로부터 기원한 불안일 수 있다. 미래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면, 인간은 불안하다. 따라서 미래가 확실한 직업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원한다. 미래가 확실하다는 것은 인간에게 불안의 여지를 하나 없애준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1980년대는 충분히 번영하는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도 일본도 모두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인간 자체가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세계에서 어떤 고정된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파괴자에 불과하다. 정확한 좌표점을 가지고 확실한 지위를 가진 존재라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공백에 불과한 것은 그 때문이다. 공백이란 아무 것도 없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래세대를 예견한 나카모리 아키나의 뉴제네레이션은 자조섞인 웃음으로 끝난다. 듣는 이에 따라 이 목소리는 향락의 목소리가 될 수도, 모든 것을 체념한 자포자기의 웃음일 수도, 그도 아니면 자기를 발견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타자 혹은 세계를 저주하는 불가사의한 목소리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