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ça은 faunétique (faun...)인 것이며, 적당한 것은 : l’eaubscène[외설적인 것]. 그것ça을 eaub…라고 써보자 - beau(아름다움)이 정확히 그것임을 나타나기 위해서 말이다.
안녕하세요.
증상 조이스의 두 번째 단락을 읽고 있습니다.
라깡에게 중요한 개념으로 “시니피앙”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개념이지요. 라깡은 시니피앙을 중심으로 정신분석을 실천했습니다.
시니피앙이란 언어학에서 청각이미지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것은 음소와도 비슷한데요.
‘살’과 ‘쌀’에서 초성을 분리하면 ㅅ과 ㅆ이 됩니다. 이 최소단위가 살과 쌀을 나누는 기준이 됩니다. 발음상으로 ㅅ과 ㅆ을 정확히 구분해야 명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정신분석 임상에서는 ㅅ과 ㅆ을 구분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왜 내담자가 살을 쌀과 같이 발음했을까? 혹은 쌀을 살과 같이 발음했을까? 즉, 그가 왜 그렇게 발음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예를 들면, 내담자가 ‘엄마는 쌀로 밥을 지어서 저에게 주었죠’라고 말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여기서 내담자가 쌀의 발음을 ‘살’과 비슷하게 했다면, 그건 다음처럼 해석될 수 있겠지요. 엄마가 살을 파고드는 고통을 견디며 노동을 해서 그 노동의 대가로 쌀을 사서 나에게 밥을 지어 주었다는 의미로, 그만큼 엄마의 노고에 감사하고 있다는 내담자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물론 후기 라깡은 해석을 거부합니다만, 어쨌든 정신분석에서 시니피앙, 말소리의 중요성은 이런 식입니다. 여기서도 라깡은 동음이의어로 글을 이어나가고 있지요.
faunétique는 앞선 구절에 나왔던 phonétique의 동음이의어입니다. 그리고 faune는 반인반수의 신, 목축의 신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것도 phone, 즉 목소리의 동음이의어이지요.
라깡은 동음이의어를 통한 분석을 제시합니다. 즉 음성학에서 이야기되는 목소리라는 시니피앙이 반인반수의 신, 목축의 신인 사튀로스의 외설적 목소리와 연결된다는 겁니다.
목소리는 인간에게 중요한 성감대입니다. 목소리는 타자를 자극하며, 그 자극을 통해 우리는 어떤 환상을 구성하게 되지요. 목소리를 통해 의미만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소리는 감정을 전달하고, 거기에 담긴 상대의 진면목을 전달한다고들 합니다. 물론 타인의 속마음을 100프로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목소리, 언어의 발화는 아주 고유한 무언가를 전달하지요. 상대방의 본의라고 생각될만한 것이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고, 그것은 나에게 성충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목소리만 듣고도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지요. 따라서 목소리, 사튀로스, 그것은 외설l’eaubscène입니다만, 동시에 거기서 eaub…를 가져오면 그것은 beau, 즉 아름다움과 동음이의어인 시니피앙이 됩니다.
언어의 청각 이미지, 음성, 말소리, 시니피앙은 인간의 목소리로부터 출현하며, 그 목소리는 외설적으로 성감대를 자극하여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다시금 그 외설성은 욕망을 불러일으켜 아름다움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 구절은 라깡적 사고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시니피앙, 청각 이미지 단위로, 음소 단위로 언어를 세세하게 분절하여 그것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 충동이자 순수욕망 그 자체를 타자에게 느끼도록 하는 것, 이것이 라깡적 글쓰기 스타일이며 라깡적 사고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구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