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에서 가장 유명한 개념으로 거세가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아동을 관찰하면서 남자아이가 꼬추가 잘릴지도 모른다는 거세위협을 느낀다고 말했지요.
그런데 이걸 잘 파악해야 합니다. 프로이트는 아동을 관찰하여 ‘꼬추가 잘릴지도 몰라’라는 아이의 불안을 감지했습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 용어로 거세를 만듭니다. 현실의 관찰을 통해 추상화 과정을 거쳐 개념을 발명한 것입니다.
남자아이들이 꼬추가 잘릴지도 모른다며 불안해하는, 그 불안에 대한 관찰로부터 인간 심리에 공통적으로 작동하는 요소를 찾아낸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적 개념에서 거세는 바로 “상징적 거세”입니다. 바로 언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이는 꼬추가 잘리지 않기 위해서 엄마나 아빠 말을 잘 들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법”과 “질서”의 개념이 아이에게 습득됩니다. 충동을 포기하고 대리 대상을 통해 만족하는 방식, 즉 욕망의 방식이 습득되는 것도 여기에서입니다. 거세를 통해 인간은 현실감도 갖게 됩니다. 모든 인간이 충동의 본래 대상을 추구한다면 인간세계에 법도 질서도 없을 것입니다. 충동의 본래 대상은 대상을 너무나도 사랑하여 그것을 먹어치우고 파괴해버리려는 모성적 젖가슴에 대한 충동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아버지의 금지가 거세를 불러오고 이것이 현실감을 일깨우며, 이를 통해 상징계에 진입하는 인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거세를 통해 “결여”도 등장합니다. 모든 인간은 거세를 통해 충동의 본래 대상을 포기하고 대리 대상을 통해 만족하게 되었으므로, 항상 무언가가 결여된 상태로 남습니다. 영원히 갈구하여도 만족할 수 없는 원본 대상, 바로 그것이 결여되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모든 존재가 결여되어있다는 것도 거세로부터 나옵니다. 정신분석은 결여의 수용을 목표로 합니다. 즉, 거세된 자기 존재를 수용하고, 대리 대상을 통한 새로운 삶에 이르기를 촉구하는 것이지요.
거세는 이처럼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프로이트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