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오늘은 정신분석의 치료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처럼 무수히 많은 치료법들이 있습니다만, 분석가가 먼저 내담자(분석주체, 분석수행자)와 이야기하며 그에게 맞는 고유한 치료법을 찾아내 사용합니다. 이것을 라깡은 노하우라고 이야기했지요.
자크 알랭 밀레가 말했듯이, 개인의 삶은 오직 개인만이 창조하고 선택하여 살아내는 삶입니다. 자기의 삶, 오직 거기에 길이 있으며,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 또한 분석수행자 스스로의 몫입니다. 그렇다면 분석가는 분석수행자가 자기만의 길을 나아갈 수 있도록, 그에게 고유한 치료법을 항상 창조해야만 하지요. 따라서 라깡이 말한 것입니다. “나는 분석수행자에게서 정신분석의 모든 것을 배웠다.”
정신분석의 각 분파의 테크닉들은 전부 내담자, 분석수행자로부터 배워 창조된 것입니다. 따라서 고정된 치료법은 없습니다. 치료법은 정신분석이 작동하는 한 끊임없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정신분석의 유일한 마스터, 유일한 절대지인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증자”와의 분석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히스테리는 모든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즉 아빠나 엄마, 연인이나 친구가 자기를 욕망하도록 만듭니다. 또한 정신적 고통이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나, 이유없이 몸이 아프곤 하지요.
가까운 지인이 몸이 아프다면,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겁니다. 히스테리증자의 전략은 바로 그런 것이지요. 자기를 욕망하게끔 합니다. 이는 꾀병이 아니며, 정말로 아픈 것입니다. 정신작용에서 생성된 증상이 신체를 타고 올라오는 것이지요. 바로 무의식이 아픈 겁니다.
프로이트는 이들과 임상하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무관심한 관심을 통해 히스테리증자를 치료하는 기법을 설명합니다. 너무 과도한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되며, 너무 관심이 없어서도 안 됩니다. 듣는척하면서도 듣지 않는 척, 관심이 없는 척 하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스스로 치료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치료는 덤이지요. “무관심한 관심”을 가진 대상으로서의 분석가가 존재함으로써, 히스테리증자의 주체구조가 바뀌는 것이지요. 세상에 저렇게 내 증상을 경청하는 존재가 있구나!라는 놀라움으로부터 주체의 구조가 바뀝니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나를 욕망하게끔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깨달음. 여기서부터 주체의 구조가 바뀝니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분석수행자의 주체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어야 합니다. 주체의 생각패턴,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고하는 루틴을 바꾸게 되면, 무의식도 바뀌게 됩니다. 무의식은 관념의 연쇄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모든 치료의 핵심은 무의식입니다. 무의식은 주체를 구성합니다. 개인의 설계도와 같은 것이지요. 또한 모든 행위의 원인은 바로 보이지 않는 그것, 무의식입니다. 무의식이 아프면 심리적 증상이 되어 신체로 이동하게 됩니다. 원인에 원인을 따라 추적해가면 모든 것은 무의식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지요. 정신분석이 인정하는 유일한 실체는 바로 "주이상스", 향유, 향락입니다. 그것은 무의식이 즐기는 방식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즐기는 방식이 될 수도 있는데요. 바로 그 구멍으로부터 모든 증상이 출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