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욕망하기

공백에 대한 짧은 글

by ou pire

저는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1965년생이죠. 저에게는 어머니뻘이네요. 사실 이상한 일이죠.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 1980년대에 활동했던 아티스트에 대해서 광적으로 몰입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요.


군대에서 사람들이 미스에이에 열광했을 때도, 아이유에 열광했을 때도 오 노래 좋구나, 정도에 그쳤을 뿐 아이유의 팬이 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유가 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는지는 분석할 수 있습니다. 아이유는 일본의 마츠다 세이코와 같은 존재거든요.


마츠다 아이유.jpg 마츠다 세이코와 아이유 / 출처 : 나무위키

끈질기게 말씀드립니다만 1980년대 일본은 거품경제의 절정이었고, 그와 더불어 일본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낙관적인 시대였습니다. 마츠다 세이코는 아이돌 중에서도 태양을 상징했죠. 라이벌인 나카모리 아키나는 달을 상징하죠. 마츠다 세이코는 청순발랄한 느낌이었고, 나카모리 아키나는 우울하면서도 분위기있는 스타일이었죠.


한국에는 나카모리 아키나같은 아이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마츠다 세이코급의 가수가 있다면 바로 아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유의 좋은 날은 나중에 음악교과서에 나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찾아보니 벌써 교과서에 나오고 있네요. 이 곡은 그 시대의 분위기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교과서에 실려야만 하죠.


2011년은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해입니다. 아날로그 문화가 끝나고 본격적인 디지털 문화에 접어든 시기죠. 바로 이 2011년의 1년 전, 2010년에 아이유의 “좋은 날”이 등장합니다. 좋은 날은 오빠에게 고백하고 그 끝이 별로 좋지 않았던 화자가 과거를 회상하며 꿈과 같았던 일들에 대해 추억하는 노래죠.


마치 디지털 시대의 한 중간에서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하며 꿈과 같았던 좋은 날을 회상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습니까? 이렇게 미래를 예언하고 과거를 회고하는 듯 한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아이유의 목소리가 일치하여 아련함을 불러오는 것이죠. 2010년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이행기에 있던 때로서, 사람들은 뭔지 모를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죠. 추억을 불러와 그것을 아름답게 베일 씌움으로써 미래에 대해 긍정하게끔 만드는 아련함의 카타르시스. 이런 정서를 동일하게 노래했던 사람이 일본의 마츠다 세이코입니다.


저는 아이유의 좋은 날을 군대에서 삽질을 하며 들었습니다. 삽질과 빗자루질을 하며 들었기 때문에 정말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강제로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분석하게 되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모두가 아이유를 들었기 때문에 안들을 수가 없었죠. 들으면 들을수록 일본에서 마츠다 세이코가 했던 시대적 역할을 우리나라에서는 아이유가 하고 있구나, 그런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1980년대를 상징하는 가수가 마츠다 세이코라면, 추후에 2010년대를 상징하는 한국가수를 뽑으면 무조건 아이유가 선정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나카모리 아키나 역할을 하는 가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낙관하고 있을 때 혼자 우울해하면서 아이돌이 된 나카모리 아키나 스타일의 가수는 흔치 않거든요. 사실 나카모리 아키나의 노래 스타일이 “불량소녀”때는 이렇게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만의 색채를 드러내면서 허스키한 보이스가 강조되고 우울해지기 시작했죠. 저는 원래 저만의 성향이기도 하거니와, 자기만의 색채를 강조하면서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별난 취미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처럼 사람에게는 각자의 취향이 있는 법입니다. 요새 취향존중이라는 이야기도 많습니다만, 아무래도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으면 소외당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죠.


그런데 역사상으로 자기만의 특이한 욕망을 불태운 인물들은 매우 많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당대에 엄청난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소크라테스는 지금으로 따지면 똘아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인물입니다. 길거리를 걸어다니며 사람들에게 딴지를 걸고 다녔기 때문이죠.


자네는 그 말을 확신할 수 있나? 왜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나? 진리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해댔기 때문에 아테네 사람 중에 소크라테스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거기다 젊은이들을 끌고다니며 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니까 위험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원래 독배를 들고 죽어야 할 운명도 아니었습니다. 법정에서 그냥 잘못했습니다 한 마디만 했어도 넘어갈 사소한 문제였거든요.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아테네인들의 멍청함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열받은 아테네인들이 법정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결정했죠.


소크라테스의 죽음.jpg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 라캉 역시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분석시간에 대한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다가 국제정신분석협회에서 제명당합니다. 그래서 생탄병원 한켠에서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할 수밖에 없었죠. 그럼에도 분석시간에 대한 견해를 고치지 않습니다. 나중에 푸코나 알튀세르가 그의 분석이론을 알아보고 자리를 마련해주기는 합니다만, 라캉 또한 평생을 아웃사이더로 살다가 말년에나 인정받게 되죠. 라캉은 명성을 되찾은 이후에도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를 지속합니다. 이 세미나들은 그가 죽을 때까지 진행되었죠. 그는 소크라테스를 따라 죽는 날까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만의 욕망을 불태우던 존재는 대부분이 아웃사이더였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욕망의 대상이 특이할뿐더러, 욕망하는 방식조차 이해되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더 나아가서 생각해볼까요. 특이한 욕망이란 무엇일까요? 아웃사이더들이 자기만의 욕망을 추구하면서 얻으려던 바는 무엇이었을까요? 조금 긴 인용이긴 하지만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무의식의 환상에 사로잡혀 평생을 동일한 욕망의 구도를 반복하며 같은 장소를 맴돌기만 하는 우리의 자아를 폐허로 이끌지 않는 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라캉은 주장한다. 이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1973년의 세미나21에서 라캉은 다시금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인생이란 여행과 같다고 간주되지만 사실은 파괴 불가능했던 욕망에 사로잡혀 그저 동일한 사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행’이란 뜻의 라틴어 ‘Itinerarium’의 어원은 ‘iterum’, 즉 ‘반복’임을 기억하라고 말이다. 이와 같은 소외의 사태에서 빠져나가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라캉은 세미나7에서 이미 다음과 같은 해답을 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을 욕망하라고. 그리고 다시 태어남을 반복하라고. 그것이 어떤 담화가 되었든, 하나의 지식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존재의 상실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캉의 존재론에서 인간의 본질은 공백 그 자체이다. 신경증자로서의 인간만이 공백을, 없음을, 즉 상실을 사유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라캉의 윤리학은 출발하고 있다.

백상현, 라깡의 인간학에서 인용


라캉의 가르침이, 제가 배운 바대로 위의 인용구에 핵심적으로 집약되어 있습니다. 바로 기존의 방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욕망의 방식을 창조하라는 것이죠. 그것은 타나토스를, 죽음을 욕망해야만 가능합니다. 기존의 존재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창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타나토스를 욕망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창조를 끊임없이 수행하는 것, 그럼으로써 주체는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 것으로 스스로의 위치를 설정합니다. 즉 창조의 주체는 공백을 욕망하는 주체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갑자기 뿅 하고 알 하나가 생겨났다면 어떨까요? 세계는 폐허가 되었고, 여러분은 뿅 하고 솟아오른 그 알 하나와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 알에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을까요? 그 알이 만약 천사의 알이라면? 그래서 언젠가는 희망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요? 그렇다면 그 알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욕망의 특이성입니다. 각자가 욕망하는 방식은 제각각입니다. 세계에 혼자 남았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해보세요. 그렇다면 자기만의 욕망의 방식이 등장합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사의 알에서 소녀는 알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욕망이자 특이성, 즉 자기만의 고유한 존재방식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https://youtu.be/SOhCHFXECIE

천사의 알과 나카모리 아키나의 "불가사의"를 편집한 영상 / 출처 : 유튜브의 몽코이님의 영상 / 자막을 눌러서 보시면 가사가 나옵니다.


나카모리 아키나의 음반 “Wonder”의 “불가사의”라는 곡이 표현하려던 것도 이와 일치합니다. “불가사의”는 나카모리 아키나가 최초로 셀프프로듀싱한 앨범입니다. 미니앨범 Wonder는 앨범 불가사의의 곡을 가져와서 새롭게 편성하고, “불가사의”라는 신곡을 추가한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나카모리 아키나의 욕망의 대상은 “불가사의”였다고 말할 수 있죠.


불가사의한 것은 공백 그 자체입니다. 불가사의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자 언어로 표현이 불가능한 것이며 비논리적인 것이지요. 따라서 이런 것은 설명될 수 없으므로 없음, 즉 공백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설명이 안 되고, 마음에 있기는 한데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애니메이션 천사의 알에서 소녀는 소년에 의해 알이 파괴되자 자살합니다. 욕망의 대상이 파괴되면 주체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지요. 정신분석의 입장은 욕망의 대상에 대해서 어떤 위치에 서느냐에 따라 주체가 형성된다고 말합니다.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욕망이 형성되고 난 이후에야 뒤늦게 도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체에게 욕망은 생명 그 자체와도 같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욕망을 깨버리면 우울증이 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지요. 존재의 방식 자체가 파괴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파괴된 이후에 도달하는 것은 생성입니다. 이것은 창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없음과 있음은 생성을 통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헤겔 논리학의 귀결이기도 합니다. 소녀는 자살하고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생성되어 물 위로 떠오릅니다. 천사의 알은 기존 욕망의 파괴(죽음, 타나토스)와 생성(에로스)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모든 것의 본질인 공백은 이름 그대로 아무 것도 아님입니다. 따라서 이름없는 것에 각자가 욕망하는 방식으로 저마다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소녀에게 그것은 천사의 알입니다. 나카모리 아키나에게 그것은 불가사의입니다. 헤겔에게 그것은 정신이었죠. 공백은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주체에게 현상합니다.


여러분은 공백에게 어떤 이름을 붙이고 욕망하시겠습니까. 그건 여러분의 몫이기 때문에 저는 이만 글을 마치고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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