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를 나왔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by ou pire


철학과에 입학하게 된 것은 벚꽃이 필락말락, 몽우리를 머금고 있던 그때였다.


많은 사람들은 철학과가 뭐하는 곳인지 정확히 모른다. 아마 그건 철학과의 문제 때문은 아니고, 남들에 대한 관심이 옅어진 요즘의 상황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어쨌든 그때의 교정은 나의 야욕과 학생들의 활기가 넘쳐서, 반짝이고 있었다. 이런 걸 반짝이고 있다고 표현해도 되려나 싶지만.


한번 태어난 인생, 해보고 싶은 걸 하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입학하던 그때는 꽤나 니체적이었다. 차라투스트라같은 초인이 되고 싶은 야욕이 넘쳤다. 그건 정말 야욕이었다.


세상이 끝없이 변하고 흘러가고 때로는 미친 듯이 쾌속질주해도 그건 그들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삶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곳에 내 깃발을 꽂아보고 싶은 야욕도 있었다. 그 야욕이란 다시 말하자면, 온 세상의 모든 지식을 내 머릿속에서 재정비하고 싶은 야욕이었다.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야욕에 넘쳐 입학한 철학과에서 첫 학기부터 배우는 것은 너무나도 시시했다. 전공 한문에서는 논어를 띄엄띄엄 읽었고, 전공영어에서는 논리학의 대표 저서들을 부분 부분 독해했을 뿐이다. 이런 것은 짜잘한 지식이라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실망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새로운 시대가 – 적어도 내 경험 상으로는 –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시대는 광폭의 시대. 자본의 폭주시대였다. 때마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자본주의는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미친 듯이 질주하던 자본시장은 그 열기가 지구온난화의 북극처럼 식어버려서, 더할 나위 없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철학과에 입학하던 때는 원더걸스가 텔미를 발매하던 때였다. 길거리를 지나가든, 술집을 들어가든, 어디를 가든지 텔미가 흘러넘쳤다. 그때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나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 자아를 실현하라는 실존적 요구. 그런 것이 텔미에 들어있지만. 이런 것을 분석하는 것은 역시 직업병이라고 본다.


어쨌든 그 시절을 추억하며 쓰는 이 글은 낭만적인 어투로 가득 차 있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었고, 요즘 시절의 사람들은 와우! 하고 놀랄만한 전자사전이라든지, PMP(동영상플레이어)가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인터넷 강의라고 하는 것도 초창기였기 때문에 현장에서 강의를 듣는 것이 최고라고 여겨지던 시대였다.


당시의 나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고, 도대체 왜 이따위 아이돌 음악을 들으면서 이따위 세상에 행복을 느끼며 살아들 가는거지? 라는 분노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참 좋은 시절이었다.


당시의 최고 스타는 원더걸스의 소희였다. 친구들은 각자 파가 갈렸다. 무슨 무협소설의 문파가 갈리듯이. 누구는 선미가 최고라고. 누구는 소희가 최고라고. 어떤 친구는 원더걸스는 별로다. 소녀시대가 짱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어떤 파였냐면. 나는 원더걸스에서 선미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대스타가 되었지만. 그때 선미는 중학생이었다. 중학생이 각고의 노력을 거쳐서 최고의 스타가 되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각고의 노력을 거쳐서 끝내는 성공에 이르는. 그런 스타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연예인들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대중과 1:1로 소통하는 문화가 없었다. 그들은 보려면 TV나 라디오에서나 가능했고, 접촉수단이 드문드문 있던 시절이니까. 그 시절의 아이돌은 정말로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소통수단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처럼. 누구 하나가 뜨면, 그 사람은 정말로 스타라고 말할만 했다.


이렇게 아이돌 문화가 막 시작하고 있었던 때였고, 그 문화와 더불어 인터넷 문화 또한 발전하고 있었다. 당대의 최고 인기 사이트는 DC인사이드였는데, 지금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서로를 존중하며 아햏햏이나 스승을 가리키는 본좌같은 단어들, 거기에 안습과 같은 유행어들을 쓰면서 존댓말을 쓰는 사이트였다. 당시의 인터넷 문화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예의를 갖추는 것이 필수였다. 상대의 감정이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덕목이었다.


이러한 세상에서 나는 철학과에 들어갔다. 철학과에 입학하고 졸업하긴 했지만, 적어도 철학이라는 세계에 몸 담은지 어언 15년이 됐는데,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들었던 많은 이야기는 “사주 볼 줄 아세요?”였다. 사주. 그건 철학과에서 전혀 배우질 않지만. 철학관이라는 이름의 대중적 여파는 강렬했다. 그래서 사주를 볼 줄 아냐는 질문에, 졸업하면 뭐해요?라는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속으로는 욕이 절로 나왔지만, 철학과의 대중적 이미지가 그런 마당에 욕을 해서 뭘하겠는가. 그러려니 한다.


나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다. 철학은 형이상학이다. 형이상학이나 존재론을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 외의 것은 전부 부속고기랑 비슷하다. 삼겹살이나 등심, 앞다리나 뒷다리가 진정한 돼지고기라고 말할 수 있듯이, 형이상학이나 존재론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부속고기다. 별미이고, 최고의 술안주이기는 하지만 메인은 될 수 없다. 오직 메인은 뒷덜미살이 아니라, 삼겹살 수육이나 구이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철학의 근본은 형이상학이다.


형이상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탐구하냐고? 인간은 모든 것에 대해서 알려는 욕구가 있고, 모든 것에 대해서 설명해보려는 야망이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간에게는 “추리”의 능력이 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 저 너머에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설명해서 세계 전체를 빠짐없이 설명해보려는 욕구가 있다, 그 욕구가 철학의 시작이다. 철학이란 모든 것을 빠짐없이 설명하려는 태도, 그래서 세계를 사랑하는 것, 그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 전부 설명해보려고 하는 태도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쉽지 않은 2007년이었다. 그 시절은 그리우면서 슬픈 시절이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긴 하지만, 돌아간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때는 좋았지만, 돌이켜보면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될 시절이다.






꽤 오랜기간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아마 어떤 일 때문에 절망해서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다시 글을 써봅니다. 이제는 나카모리 아키나의 음악을 분석하는 글과 더불어, 철학과 출신으로서 일종의 에세이를 써보려고 합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사실에 기반하기는 했지만,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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