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기관차

철학과를 나왔지만 후회는 없습니다(2)

by ou pire

폭주기관차


인간의 기본 값은 불안이다.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하다못해 최악의 미친 짓을 한다고해도... 인간의 모든 행위 자체는 불안을 억제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는 그 의도를 제쳐두고, 추상화해서 생각해보면 모두 불안을 잠재우려는 애타는 노력이라고 본다.

내가 가는 철학과는 전철을 타고 꽤나 먼 거리로 가야만 했다. 급행을 못 타면 힘겹게 흔들거리는 몸을 지탱하며 지옥철을 겪어야만 하는 코스였다. 그래도 별로 힘들다고 느끼진 않았다.


어차피 지옥철이라는 코스는, 사람들 사이에 짓눌려 나 자신을 잊으러가는 회사나 학교라는 억압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또 다른 고난의 코스일 뿐이니까. 이렇듯 등굣길이 즐거웠던 기억은 별로 없지만, 이상하게 철학과로 나아가는 등굣길은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았다.

철학과에서 뭐라도 배웠던 탓일까. 지옥철의 사람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정보의 습득처는 대부분 아침에 공짜로 나누어주는 “무가지”였다. 무가지에는 만화나 시사, 스포츠, 연예 등 모든 정보가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이 무가지는 지옥철에 탑승하는 사람들에게 정보제공이 끝나면 버려지곤 했다. 이 버려지는 무가지는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에게는 생계를 위한 수단이 되었다.

사람이 가득 차 있는 지옥철을 뚫고 새벽부터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신문지를 모으며 좁은 틈을 헤쳐나갔다. 어떤 이는 짜증을 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신문지를 손수 그들에게 건네기도 했다. 그들의 눈에는 안쓰러움이나, 짜증, 경멸, 혹은 짠함과 같은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있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불안을 잠재우고 먹고살아낸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이런 수많은 이들을 태운 지옥철은 정해진 코스를 완벽하게 운행한다. 한치라도 틈이 보이면, 그것은 곧바로 지옥철의 실패를 뜻한다. 절대로 운행에 실패해서는 안 된다. 하차지점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서는 날에는, 승객들의 온갖 욕설과 푸념을 들어야만 한다. 이곳은 또 다른 삶의 전쟁터였다.




철학과에 들어간 첫 해는 별다르게 추억할만한 것이 없다. 거의 취해있었기 때문에.


요새 들은 바로는, - 사실 나 때도 그런 분위기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일종의 “상식”이 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술만 마셨던 것 같다.


꽤나 술을 마셨고 별이 하나인지 두 개인지, 혹은 무수히 많아서 눈앞에 쏟아질 것 같은 그런 상황도 겪어보니 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했지만 계속 취해있으니 그때는 그냥 계속 마셨고 취해있었다.


수업에 막걸리를 먹고 들어가서 적어도 술은 먹고 들어오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기도 할 것이다.


친구들과 야구경기장에서 술을 마시고 한껏 욕을 하기도 하고, 그도 안 되면 공원에서 술을 마시거나 그도 아니면 되는 곳에서 계속 술을 마셨다. 알콜과 니코틴으로 연명하는 하루하루였기 때문에 공부를 할 리가 없었다. 공부를 왜 해야 되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수업에서 뭔가를 들었던 기억은 있는지 세상이 조금씩 달리 보이기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마트폰도 없고 정보의 공유도 빠르지 않았던, 오로지 브라운관에 나오는 가수들의 노랫소리만 흥얼거렸던 그때가 좋았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고, 철학과 학우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본다. 우리는 뭔가를 듣고 계속 술을 퍼마시고 있었고, 세상이 정지된 것처럼 느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세상은 폭주기관차였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부동산 광풍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지옥철은 코스를 이탈하지 않으며, 종점에 정착하면 모두가 하차해야 하건만. 세상이라는 폭주기관차는 계속 달리기를 반복해 멈추지 않고 마침내 세상을 지옥도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때가 2007년이었다. 그때부터 폭주기관차는 발진하여 멈추질 않았다. 철학은 그렇게 폭주하는 세상으로부터 불안을 잠재우기위한 하나의 구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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