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한국어판에 사이버펑크 : 엣지러너가 공개되므로 감상글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하겠습니다.
사이버펑크 2077(게임)
CDPR 제작
사이버펑크 : 엣지러너(애니메이션)
트리거 제작, 이마이시 히로유키 감독
(1)
ME_MACHINE
사이버펑크의 세계는 냉혹하다. 신체는 충분히 기계(사이버웨어)로 대체될 수 있다. 이 대체 가능한 신체인 사이버웨어는 “임플란트” 혹은 “크롬”이라고 불리는데, 사이버펑크 2077(게임)의 세계관에서 노동자들은 자기의 원래 팔을 자르고, 기계 팔을 이식함으로써 작업효율을 높인다. 문제는 회사에서 해고되면, 그 기계팔 또한 내놓아야 한다는 것. 게임에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팔다리를 회사로부터 압수당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크롬을 과다하게 이식했을 경우, 사용자는 "사이버사이코"가 될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사이버사이코"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 사이버펑크2077
사이버펑크 2077의 세계는 자본가에 의해 정복된 세계다. 여기서 굳이 마르크스를 거론할 필요까지도 없겠다. 사실 작중의 세계관이 지금의 세상과 뭐가 다른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자본은 자기에게 이득이 된다면, 인간성의 결여를 아주 손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륜보다는 이윤이 우선이 된 사회가 바로 사이버펑크 2077의 세계관이다.
사이버펑크 2077의 세계관을 공유하며 그것을 애니메이션의 영역으로 옮겨낸 사이버펑크 : 엣지러너는 그런 점에서 이 냉혹한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데이비드 마르티네즈의 어머니인 글로리아 마르티네즈는 아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시체에서 “임플란트”, “크롬”을 떼다가 파는 부업을 하고 있다. 일이 너무 바빠 세탁기 충전하는 것도 잊은 채. 이 세계에서는 집에 있는 세탁기라고 하더라도, 충전이 되어있지 않으면, 세탁은 중간에 멈추고 세탁물은 젖어버린 상태 그대로 남는다.
데이비드가 다니는 “아라사카” 학교의 선생님은 AI이며, 학생들은 가상공간에서 수업을 받는다. 자본은 학교까지 장악했다. 교육을 장악했다는 뜻은, 미래의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교육은 “진리”를 목표로 그 어떠한 가치관에도 구애받지 않고 선생이 학생에게 가르침을 주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기업, 자본이라는 중간항이 들어오면 순수한 가르침의 공간은 그 역시 이윤창출의 공간으로 변질되고 만다. 이것도 지금의 세상과 뭐가 크게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데이비드는 자기를 위해 고생하는 엄마의 짐을 덜고자 교육 프로그램에 불법 업그레이드를 받는다. 그런데 학교 수업의 프로그램과 호환이 되지 않아 학교 시스템이 고장나고 만다. 열받은 학교는 어머니 글로리아를 호출한다. 여기서 교장은 이리저리 돌려 말하지만, 결국 돈이 없다면, 즉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어떠냐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글로리아는 아들을 학교에 남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반드시 돈을 마련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데이비드와 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자신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아들인 데이비드는 머리가 좋기 때문에, “아라사카”타워 최정상에 서는 것을 보고 싶다는 것. 자기는 이렇게 살아도 아들만큼은 최정점에 올랐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 세계관을 지배하는 기업인 아라사카에 입사하여 정점에 선 아들을 보는 것이 글로리아의 꿈이었던 것이다. 이 모녀는, 나중에도 이야기하겠지만, 서로가 서로의 꿈을 위해서 살아간다. 그 말이 끝나자, 갱들이 총격전을 시작하고, 데이비드의 차량은 사고에 휘말린다.
이 세계관에서 사고가 나면 어느 현장이든 달려와 사람을 구하는 “트라우마 팀”이라는 기업이 있다. 데이비드가 탄차량과 갱들의 차량에 사고가 나자, 역시 트라우마 팀이 사고 현장에 와 구조를 시작한다. 그런데 데이비드 가족은 트라우마 팀에 가입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구조하지 않는다. 트라우마 팀에 가입이 되어있지 않으면, 피가 철철 난다고 하더라도 구조받을 수 없다. 결국 이 찰나의 순간에 시간이 지연되고, 일반 구급대의 구조를 받은 데이비드의 엄마는 병원에서 사망하게 된다.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며 유골함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데이비드에게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급우 카츠오의 전화가 온다. 카츠오는 너희 어머니가 죽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조의를 표할 수 없다. 아들 학비를 대려고 했다지만 불법을 저지르던 사람에게 조의를 표할 순 없다. 사람은 자기의 길이 있는데, 그걸 벗어나려 했으니 불행해진거다. 라며 조롱한다. 이에 데이비드는 분노하고, 엄마의 자켓을 입고서 리퍼닥에게 찾아가 크롬을 이식해달라고 말한다.
엄마가 훔쳤던 “산데비스탄”을 자기에게 이식해달라는 것이다. 산데비스탄은 시간을 제어할 수 있는 크롬이다. 이 크롬을 달면, 시간을 증폭시킬 수 있다. 말 그대로 자기의 시간은 그대로지만, 주위의 시간은 매우 느려진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나게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데이비드는 분노로 인해 노래 제목처럼 ME MACHINE이 된다. 정말 역설적이지만, 데이비드는 기계를 이식하면서 점점 인간이 되어간다. 그에게서 신체가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오히려 더 인간다워진다. 이것은 사이버펑크 장르의 고유한 문법이기도 하다. 사이버펑크 장르의 인간들은 기계가 되어갈수록 점점 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것은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남으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점점 더 인간다워지는 것이다.
라캉은 시니피앙(음성 이미지)의 연쇄가 정밀해지면, 그것으로부터 실재가 출현한다고 말했다. 더 정확히는 시니피앙의 연쇄는 성공하지 못하며,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실패로부터 실재가 출현한다고 이야기한다. 시니피앙의 연쇄란 상징계를 뜻한다. 이 상징계란 권력의 언어이다. 권력은 주체에게 욕망을 정해준다. 사회가 욕망하는 것만을 욕망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권력의 정밀한 연쇄는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정밀한 연쇄는 항상 실재의 출현, 증상의 도래를 불러온다.
이 작품에서 크롬의 이식은, 사회에서 권장하는 바이며, 아라사카로 대표되는 기업의 세계에 참여하여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회가 바라는 욕망을 욕망하면 할수록, 즉 기계장치를 더 많이 이식할수록 데이비드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인간다운 행위를 하게 된다.
그 행위란 바로 사랑이며, 그것은 사기꾼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 루시 덕분이다. 데이비드가 크롬의 이식(사회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면, 루시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기계 속에, 시니피앙의 정밀한 연쇄 속에 숨겨진 진정한 나를 찾는 여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