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성에 대한 욕망
나카모리 아키나는 1989년 죽으려고 했다. 위의 영상은 자살시도 이틀 전에 진행한 라이브이다. 죽으려고 마음먹고, 그렇게 결단을 내리기 전에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무슨 생각으로 저 라이브 무대에 나가서 발화를 한 것일까?
라이어(LIAR)의 라이브(LIVE)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이 사람을 소개하는 문구를 보자.
“제7회 메갈로폴리스 가요제 POP(대중가요) 대상수상가수”
다시 말해서, 나카모리 아키나는 본인이 힘들면, 굳이 라이브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위치였다. 너무나도 힘들다고 호소하면, 노래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에도 어째서 이 라이브를 진행했을까? 그녀를 움직이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혹자는 그녀의 강한 책임감 때문이라고, 아니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아서, 그도 아니면 남에게 폐를 끼칠 수 없으니까.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본인보다는 남을 위해서 살아갔던 사람이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남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단순히 타인지향적인 삶이다, 라는 그런 단언으로는 부족하다. 타인의 꿈을 자기의 꿈처럼 여기며 살아가다가, 진짜 자기의 순수욕망에까지 올려놓는, 그런 사람이 남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순수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에 자기의 몸이 바스라져도, 그래도 고통만을 받지 않는다. 이미 그것은 라캉이 말했던 주이상스의 영역, 고통 속의 환희에 찬 그런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 LIAR의 LIVE에는 분명 고통스러운 그녀의 표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는 미소를 띠고 있다. 이 무대를 계기로 나카모리 아키나가 일본 가요계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본다. 이 고유함은 그녀의 결단으로부터가 아니라 불가능성을 욕망하는 언어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지점의 무언가로부터 출현한 고유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