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 - Grimes

예술의 창조행위

by ou pire

https://youtu.be/1FH-q0I1fJY


누군가는 물어볼 수 있다.

예술가들은, 음악가들은, 정신분석을 공부하지도, 받아보지도, 거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정신분석으로 이걸 분석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맞다. 음악가들은 대부분 정신분석을 공부하지도 받아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동의한다. 하지만 분석이 가능한 이유는 오히려 그들이 예술가들이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이미 헤겔도 말했듯이 종교, 철학과 함께 절대정신을 구성하는 운동이거니와, 그 운동은 진리를 말하는 다양한 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예술은 물질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 진리를 말하는 운동이다. 진리를 발화하는 존재 그 자체이다.


라깡의 텔레비전을 보면, 맨 처음부터 이야기한다. 나는 항상 진리를 말해왔다고, 그런데 전체로서의 진리가 아니라고... 절반으로서의 진리라고...


절반으로서의 진리란 무엇인가? 그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반쪽은 우리가 진리라고 믿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건 이해가 가능하다. 나머지 반쪽은 뭔가?


그 반쪽은 공백이다. 있음이 있으려면, 없음이 있어야 한다. 없음이 있어야만, 없음이 있음을 지탱해주어야만 우리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리의 희미한 형상들이 가능하다. 우리 삶의 의미는 죽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모든 것이 종말에 이르는 지점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큰 의미가 없다. 이처럼, 없음이 있어야만 있음으로부터 의미의 연쇄가 가능하다.

더 나아가서 정신분석은 보편적인 인간의 무의식을 다루기 때문에, 예술가가 정신분석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하더라도 분석이 가능하다. 예술가도 인간이기 때문. 그들도 무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성충동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창조행위는 무의식의, 성충동의, 주이상스의 행위이다. 위대한 예술가일수록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에 접근한다. 자기 내면에 대한 철저한 발견을 통해서, 그것을 예술의 언어로 표현하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Grimes는 동시대의 독보적인 아티스트인데, 이 사람의 음악을 듣고 떠오르는 건, 내면을 탐사한 인간으로서 일종의 광기다. 그리고 그 광기로부터 나오고 있는 엄청나게 강력한 창조행위이다. 그래서 이 genesis를 작업했을 것이다.


마음(Heart)을 들여다보던 화자는, 그 마음, 내면의 충동을 영원히 포획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I never Know) 그리고 자신의 이질성을 깨닫는다.(then I Know) 그렇게 고유한 증상을 발견한 화자는 특별한 사람이 된다.(It’s always Different) 그럼으로써 화자는 The one이 된다. 이건 공백의 존재를 일컫는 것이기도 하지만, 후기 라깡이 이야기했던 “일자”이기도 하다. 고유하고 특별하면서 오직 나에게만 있는, 증상으로서, 주이상스로서의 일자, 자크 알랭 밀레가 강조했던 "하나뿐인 일자"이다. genesis의 화자는, 이 고유한 주이상스의 일자적 존재는 사랑하는 존재로서의 일자다.(I am the one in Love)

그라임스는 예술의 창조행위를 통해서 증상과의 동일시에 이르른 것이다.


이제 일자를 발견했으니, 아마도 그라임스는 자기의 세계로 몰입하였을 것이고, 이후의 음악은 자세히 들어보지는 못했으나, 대단히 난해해졌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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