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 사건의 지평선

미래를 향해 열린 존재

by ou pire

https://youtu.be/BBdC1rl5sKY


사건의 지평선은 아무래도 물리학의 용어로부터 가져온 것이고, 그러므로 언어를 아무리 동원해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을 가리킨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는 물리학적 언어인 수학을 동원해서 아무리 설명하려고해도 설명할 수 없다. 거기서는 정보가 나오지 않기 때문인데, 다만 빛만이 관찰될 뿐이다. 이처럼 과학은 관찰한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저는 찾지 않습니다, 저는 발견합니다.”라고 말할 뿐이다.(자크 라캉, 세미나11, 20쪽)


이러한 발견으로 인해서 “생각이 많은 건 말이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된다. 이 노래에서 발견한 것은 진심이기 때문이다. 그 진심이란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뭐야?”라는, 욕망의 질문이다. 윤하의 발화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별이라고 하는, 흔히 사랑하는 연인들이 관찰하고 맹세하는 그 별이라는 기표를 뒤틀어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노래에서 별은 결코 사랑이 맹세된다거나 두 사람의 영원함을 상징하는 그런 약속의 징표 또한 아니다. 그건 다만 사라져가는 자리, 흔적만을 남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별은 상실된 자리를 표상하는 흔적이다. 이 흔적은 언어로 잘 표현되지 않고, 아스라이, 아주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것이며, 두 사람의 마음에만 남아있는 무언가로 표현된다. 별은 사라져가면서 자기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무언가이다. 또한 이 흔적을 중심으로 “새로운 길 모퉁이”로 나아가는, 미래를 향해 열리는 존재가 등장하는, 그런 구성으로 가사가 이루어져 있다.




이제 이론은 집어치우고, 왜 이 노래가 소위 말하는 역주행을 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별을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그 너머의 예측불가능성으로 표현하는 이 노래는 도대체 뭘 말하고 있길래 다시 1위가 된 것일까? 사람들은 여기서 어떤 의미를 찾았을까?


나는 이 노래가 아무런 의미도 표현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 즉 이별 이후의 시간은 아직 알 수 없는 사건이다. 이 노래의 가사나 윤하가 담아내는 발화의 느낌을 보면, 추억을 별로 은유하고, 그 별이 아스라이, 희미하게 사라져가지만 그래도 그런 그리움으로 인해서 나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게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타인에 대한 고마움으로 인해서 “산뜻한 안녕”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우리시대에 아주 보기 드물게,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을 되찾고, 온전히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노래한다. 그 자유롭게 살아가기는 타인에 대한 “고마움”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이 중요하다.


희미해지는 별의 흔적이 되어버리는 그대이지만, 나에게 소중했고 그러므로 두려움도 주었던 그 별의 흔적에 대해 너무나도 고마워하는 그런 주체는, 마침내 미래를 향해 열리는 주체가 된다.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지만, 영원하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고마움으로 인해 서로가 자기의 본래성을 되찾고, 미래를 향해 열리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나아간다. 거기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인생이란 것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더 즐겁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노래는 2022년, 기대할 것도 희망할 것도 별로 없는 이 시대에, 그래도 미래에 즐거운 일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복음적인 노래가 된다. 결국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무의미, 공백을 전달함으로써 기쁜 소식을 말하는 것에 성공한, 세상을 지배하는 대타자의 목소리 - 언어권력에 저항하는 노래가 된다.


이제 우리는,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발견해야만 한다. 그 발견 이후에, 그것을 억지스럽다하더라도 반드시 고집하도록 하자. 그게 바로 순수욕망이니까. 그때 기쁜 소식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 미래는 타인에게로 열려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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