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지막 썸머’와 폐교

비어 있는 건물에 다시 사람을 불러들이고, 관계를 되살리고...

by 우박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마지막 썸머」는 폐교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축으로 인물들의 관계를 다시 엮고, 첫사랑의 진실을 하나씩 드러내는 청춘 로맨스다. 폐교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주인공들의 추억이 켜켜이 쌓인 장소이면서, 지금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현장이자, 앞으로 어떤 도시가 될지 시험해 보는 공간이다. 과거·현재·미래가 한 건물 안에 겹쳐 있는 셈이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누적 폐교는 3,955곳, 1년 새 33곳이 더 늘었다. 2025년 한 해에만 문을 닫는 초·중·고가 49곳이고, 이 가운데 38곳이 초등학교다. 그중 약 88%가 비수도권에 몰려 있다. 농산어촌 학교가 먼저, 더 빨리 사라지는 구조라는 뜻이다. 이 중 어떤 방식으로도 쓰이지 않는 ‘미활용 폐교’는 367곳, 전체의 9.3% 정도다. 전남·경남·경북·강원·충북 등에 특히 집중되어 있다.


전국 교육청의 폐교 활용 문제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는 줄였지만, 빈자리를 채우는 데는 실패했다.” 학생 수가 줄어 문을 닫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일지 모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자리에 새로운 생활, 문화, 교육 기능을 어떻게 채워 넣을지에 대한 상상과 결단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드라마 속 파탄고는 이 현실에서 한 걸음 비켜 서 있는, 조금은 낯설 만큼 이상적인 모델로 보인다. 폐교가 천문대로 바뀌고, 그 과정에서 사람과 관계, 지역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는 장면은, 현실이 선뜻 그려내지 못한 그림을 대신 펼쳐 보인다.


교육청들은 “폐교 활용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 기본값은 “당분간 활용 계획 없음”에 가깝다. 보고서와 타당성 검토는 반복되지만, 교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지고 ‘출입금지’ 표지판이 걸린 채 시간이 지나간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는 동안 건물은 서서히 낡고, 운동장은 잡초로 덮인다. 한 번 더 미루고, 한 번 더 검토하는 사이, 선택지는 줄어들고 나중에 손대야 할 비용과 어려움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이렇게 되면 폐교는 더 이상 배움의 공간도, 마을의 중심도 아니다. 그저 “한때 여기에 학교가 있었지”라는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 밤이 되면 불안이 먼저 떠오르는 장소가 된다. 그런데 같은 폐교가 ‘마지막 썸머’ 속 파탄고에서는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 처음엔 그곳도 청소년들이 몰래 들어와 시간을 보내는, 현실의 폐교와 다르지 않은 공간이다. 그러나 천문대 리모델링 논의가 시작되면서, 그 방치는 곧 변화의 명분으로 바뀐다. 세 주인공이 얽힌 과거의 상처와 관계를 마주하는 무대가 되면서, 파탄고는 “문제가 쌓여 있는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볼 수 있는 자산”으로 전환된다. 같은 비어 있는 건물을 두고, 행정은 부담으로, 드라마는 가능성으로 본다는 점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민간이나 지역 단체가 “이 폐교를 한 번 살려 보겠다”고 나서도 현실의 문턱은 높다. 토지 용도를 바꾸는 절차, 임대 기간과 사용 목적에 붙는 까다로운 조건, ‘교육재산’이라는 법적 성격이 여러 겹으로 겹쳐 있다. 긴 호흡으로 투자하고 자율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프로젝트일수록 이 규제들이 무겁게 다가온다. 어렵게 규제의 문을 하나씩 통과하더라도, 많은 폐교는 이미 인구가 빠져나간 농산어촌에 있다. 안정적인 수요를 기대하기 어렵고, 뚜렷한 수익 전망도 잡히지 않는다. “좋은 뜻”만으로 버티기에는 현실이 너무 팍팍하다.


이 지점에서 다시 파탄고로 눈을 돌리면, 드라마가 보여주는 장면은 현실의 정반대다. 파탄고 천문대 프로젝트에는 시장의 정치적 의지, 건축 전문가의 설계, 행정 조직의 실행력이 한 화면 안에 나란히 등장한다. 주민에게 “파천의 하늘과 별, 바다”를 이야기하며, 이 폐교가 지역의 얼굴이자 미래 자산이 될 거라고 설득해 나간다. 규제와 수익성 사이에 끼어 발을 빼고 싶어지는 현실과 달리, 드라마는 폐교를 중심에 세워 모두가 움직이는 장면을 그려낸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한편으론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지금 제도의 한계를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꺼내 볼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일까. 거창한 전략이 아니라, 파탄고가 던지는 단순한 힌트를 따라가 보자. 첫째는 이야기다. 건물에 숫자와 면적만 붙이는 대신, 그 학교가 품고 있는 시간과 사람의 흔적을 차분히 끌어올리는 일이다. “이곳에서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어떤 관계가 만들어졌는지,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정리해 보는 것부터가 출발점일 수 있다. 그 위에서 “이제 이곳에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면, 용도 리스트를 고르는 수준과는 다른 상상이 가능해진다.


둘째는 주체다. 파탄고 프로젝트가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한 건, 그것이 백도하와 송하경에게 “한 번쯤은 인생을 걸어볼 만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의 폐교도 마찬가지다. 몇 년마다 담당자가 바뀌는 순환보직의 한 구간이 아니라, 책임과 권한, 시간을 함께 부여받은 주체가 등장할 때 비로소 방치에서 활용으로 넘어갈 수 있다. “누가 이 폐교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질 것인가”라는 질문 없이는, 어떤 구호도 현장에서 힘을 얻기 어렵다.


셋째는 방향이다. 파탄고가 천문대로 재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파천이라는 도시가 가진 이미지, 하늘과 별, 바다가 가진 상징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폐교도 각 지역이 가진 정체성과 단단히 연결될 때 설득력을 얻는다. 어느 곳은 돌봄과 복지의 거점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곳은 청년 창업과 로컬 비즈니스의 실험실이, 어떤 곳은 예술과 체험 관광의 기지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학교를 통해 우리 지역이 무엇을 해 보고 싶은지”에 대한 문장을 그 지역 스스로 말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결국 폐교 활용의 문제는 예산표나 통계 표의 칸을 채우는 수준에서 끝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파탄고가 보여 주듯, 비어 있는 건물에 다시 사람을 불러들이고, 관계를 되살리고, 시간을 흐르게 만드는 일이다. 드라마 속 허구가 현실의 답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만큼은 또렷하게 남긴다. 우리 동네에 조용히 서 있는 그 폐교, 정말 거기서 이야기가 끝난 걸까, 아니면 아직 첫 장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멈춰 서 있는 걸까.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앞으로의 폐교 정책을 가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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