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조정 예산은 단순한 ‘행정비용’이 아니라 '가치투자'
최근 종영한 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는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아주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한때는 전설의 협상가였던 신사장이, 이제는 동네 치킨집 사장을 하며 이웃과 사회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각종 갈등(주차 문제, 층간소음, 임대료 갈등, 언론의 오보 등)에 직접 뛰어든다. 그가 매번 남다른 유머와 날카로운 협상 기술로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모습은 많은 시청자에게 ‘현실의 분쟁 해결 히어로가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
하지만 이게 화면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갈등은 매년 5조 원이 넘는 ‘갈등비용’을 낳는다. 법정에 가거나 행정에서 조정하는 데 드는 비용뿐 아니라, 소모적인 싸움으로 합의가 좌초되고, 마음의 상처와 기다림, 생산성 손실까지 전부 포함된 금액이다.
그래서 전국 곳곳의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기관은 조정관, 갈등관리자 제도를 만들어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대통령실에 공공갈등조정비서관직이 신설된 것도 우리 사회가 복잡한 갈등을 제대로 다루고 예방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반증이다.
인천 부평구의 경우 재건축 송전선로 이설 문제로 곤란을 겪던 주민 갈등을 ‘갈등조정관제’, ‘갈등관리 조례’ 등 혁신적인 시스템과 예산으로 해결했다. 청주 역시 송수관 파열사고 피해자와 시공사가 소송 대신 중재제도를 선택해, 분쟁을 1년 만에 빠르게 해결했다. 이처럼 전문 중재, 갈등조정 시스템에 제대로 예산을 투입하면, 갈등 해소와 신뢰 회복, 행정비용 절감이라는 1석 3조 효과가 나타난다.
반면 서울시는 2022년 갈등관리 예산을 3억 1000만 원에서 절반 가까이 축소했다.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민관협치나 시민단체 관련 예산이 지속적으로 깎이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예산 회복은 없다. 그 결과, 갈등관리 사업의 연속성과 실효성은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다. 분쟁이 장기화·심화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갈등비용이 오히려 커진다”, “시민사회 거버넌스 붕괴와 분쟁조정 기회 감소가 걱정스럽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실제로 2023~2024년 서울시의 분쟁조정 건수는 꾸준히 늘었지만, 해결률은 평균 50% 안팎으로 정체되고 있다. 상가임대차나 주택임대차, 환경분야 등에서도, 예산 축소 이후는 분쟁 자체는 늘고 신속한 현장 해결은 더 어려워졌다. 노동권익센터만 봐도, 예산 삭감으로 상담과 중재사업이 중단되고 임금체불까지 발생해 나아지기는커녕 분쟁이 장기화되는 상황도 많았다. 마을공동체 사업의 경우, 지원금 100% 삭감으로 네트워크 자체가 끊기며, 아파트 관리비·소음·주차 등 일상 갈등이 민원·소송·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서 신사장은 치킨집을 떠나 법원 갈등조정센터 TF팀원이 되어 새로운 출근길에 오른다. 이 장면은 ‘이제는 제도와 시스템, 그리고 실전형 조정자가 제대로 결합해야만 사회적 합의와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실제로 지역에서 쓰레기매립장, 발전소, 도로건설 같은 갈등 유발 시설을 추진할 때, 갈등예방·조정 조례의 존재 여부와 현장 전문가, 충분한 예산, 실질적 컨설팅 시스템이 필수라는 평가가 많다. 그런 준비만 된다면 행정도 신속해지고, 주민 참여와 상생을 통한 합의도 훨씬 쉬워진다. 서울시는 아직 파편화된 체계, 일시적 대응, 부족한 예산으로 반복될 갈등을 적극적으로 막지 못하고 있다.
결국 중재와 갈등조정 예산은 단순한 ‘행정비용’이 아니라 시민의 삶 전체에 투자하는 사회적 가치이자 미래를 위한 성장동력이다. 서울시는 이제 인정해야 한다. 갈등조정은 딱딱한 행정이 아니라, 실질적 시민 삶을 바꿀 핵심 정책이다. 순간 대응이나 임시방편이 아닌, 구조적 예방과 실질적 조정, 사회적 투자로 바꿀 때만이, 대도시의 다양한 갈등을 확실하게 끊어낼 수 있다.
갈등도 관리가 필요하다. 예산과 시스템, 협치 리더십이 조화를 이뤄야만, 시민들은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도시에서 행복한 일상을 맞이할 수 있다. 이제 서울시도 시민 모두가 ‘신사장’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