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건 인구가 아니라 정치다(2)

우리 시·군 예산서에서 소멸 징후 읽는 법

by 우박

경북의 몇몇 군은 지난 몇 년간 꽤 큰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배분받았다. 숫자만 보면 “드디어 정부가 인구 문제에 돈을 쓰기 시작했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회의실에서 PPT만 보면 더 그렇다. 슬라이드에는 “인구감소 대응 종합계획”, “청년·고령친화 도시 비전” 같은 멋진 제목이 줄줄이 붙어 있다.


그러나 막상 지역으로 내려가 예산서를 펼쳐 보면 풍경이 다르다. 기금은 따냈는데, 정작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사업이 몇 달, 1년씩 서 있는 경우가 있고, 연말이 가까워지자 “이제 빨리 뭔가를 집행해야 한다”는 압박에 한 번에 쓰기 쉬운 시설·경관·행사 사업에 급히 쏟아붓는 사례도 적지 않다. 보고서상 집행률은 채워졌지만, 정작 마을의 인구·일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풍경 속에서 현장에서는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온다. “이거, 좀 눈먼 돈 아니냐.” 어디에 쓰든 일단 따내면 좋은 돈, 그러나 제대로 쓰기 어렵고, 잘못 쓰면 비난만 남는 돈이라는 의미다.


이런 말은 단순한 푸념에서 나온 게 아니다. 구조적인 한계가 분명히 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광역단위 조합과 한국지방재정공제회가 함께 운용하고, 인구감소지역·관심지역을 대상으로 ‘투자계획 평가’를 거쳐 차등 배분하는 방식이다. 겉으로만 보면 “성과 중심, 경쟁 촉진, 전략적 투자”라는 좋은 단어들이 붙어 있다. 하지만 실제 실무에서 보면 “기금을 받는 주체가 배분에도 깊이 관여하는 구조”에 가깝다. 광역단위에서 조합을 구성해 배분 의사결정을 하고, 중앙의 평가 기준은 나름 정교해 보이지만, 지역별 정치·행정 역학이 그대로 반영되기 쉽다. 재정·기획 역량이 탄탄한 지자체일수록 계획서를 더 잘 쓰고, 평가 문항에 맞게 표현하는 데 익숙하니 당연히 유리해진다.


반대로 인구·재정이 가장 열악한 군일수록, 담당 인력도 부족하고, 장기 전략을 그려본 경험도 적다. 기금이 가장 절실한 곳이, 정작 기금 설계와 사업 기획에서는 뒤처지기 쉽다는 뜻이다. 한 군에서는 실무 공무원이 이렇게 털어놓았다. “기금이 필요한 건 우리 같은 데인데, 투자계획 쓰는 것도 벅차요. 옆 시·군 보고 베껴 쓰기도 하는데, 그러면 우리 현실과는 또 안 맞고….” 소멸위험이 더 큰 곳이 오히려 기금 경쟁에서는 불리한 역설이 생기는 이유다. 이러니 “눈먼 돈”이라는 냉소가 나와도, 그저 현장의 불평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제도와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산서를 볼 때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따로 떼어 놓고 읽어볼 필요가 있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우리 시·군 세출 예산서에서 기금이 재원으로 섞여 있는 사업들을 먼저 표시해 보는 것이다. 사업명에 ‘지방소멸대응기금’이라는 말이 직접 붙어 있지 않아도 괜찮다. 재원 구성 표를 보면 “일반회계, 국·도비 보조금, 지방소멸대응기금”이 몇 퍼센트씩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표시해 둔 뒤, 사업 하나하나에 대해 아주 단순한 질문을 던져 보면 된다. “이 기금이 들어간 사업은, 인구가 줄어드는 동네의 어떤 삶의 조건을 바꾸고 있는가?”


실제로 표시를 해 보면, 관광객 유치를 위한 랜드마크·포토존·축제, 단기 체험 프로그램, 외형이 화려한 시설 사업이 눈에 띄게 많은 곳이 적지 않다. 군청 주변에 예쁜 포토존을 설치하고, 계절마다 주말 축제를 열고, 드론으로 찍으면 멋있게 보이는 경관 조성 사업들이다. 이런 사업들이 전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지역 이미지를 높이고, 잠시라도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사업이 끝난 뒤, 이 마을에 실제로 남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려 할 때다. 상주 인구, 청년 정착, 돌봄, 교통, 주거 같은 지표를 기준으로 몇 년치를 이어서 보면, 이런 사업이 실제로 동네의 ‘살 만함’을 바꿔 놓았는지 의문인 경우가 많다. “그때 축제는 참 재미있었지”라는 기억은 남았지만, “그래서 이 동네에 남아 살기로 했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지자체는 같은 기금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쓴다. 읍·면 단위 돌봄 거점, 공공임대·빈집 리모델링, 생활권 순환버스, 지역 일자리·창업 지원 같은 데 조금씩 나눠 배치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숫자도, 간판도 화려하지 않다. 드론 영상으로 찍어도 이렇다 할 장면이 나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고 나서 그 지역을 다시 가보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져 있다. 노인들이 병원·시장에 갈 수 있는 발이 생기고, 청년들이 머물 집과 일자리가 생기고, 아이 키우는 가구가 “여기서도 버틸 수 있겠네”라고 말하게 되는 기반이 쌓인다. 기금 한 번으로 인구가 곧바로 늘지는 않지만, “떠나는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차이는 결국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이 기금이 들어간 사업이 사라지면, 이 마을 사람들 삶에서 뭐가 빠질까?” 예산서를 보며 이렇게 물어봤을 때, “축제가 조금 심심해질 것 같다”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사업은 소멸을 늦추기보다는 잠시 분위기만 띄우는 데 기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이 사업이 없어지면 통학이 안 되고, 병원 가기가 어려워지고, 아이 키우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답이 나온다면, 그건 기금다운 쓰임새다. 질문 하나로 사업을 ‘사진용’과 ‘생활용’으로 가르는 셈이다.


여기에 시간의 시야가 더해져야 한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2022년부터 2031년까지, 10년짜리 한시 제도다. 그 말은 곧 “한 번에 크게 짓고 끝내라”는 돈이 아니라 “몇 년 동안 삶의 조건을 바꾸는 데 이어서 쓰라”는 돈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 예산서를 들여다보면, 기금이 붙은 사업 가운데 상당수가 단년도, 일회성으로 쪼개져 있다. 올해는 축제, 내년에는 다른 이벤트, 또 그다음 해에는 신규 시설 하나…. 이렇게 되면 기금은 분명 썼는데, 남는 건 사진과 보도자료뿐이다.


그래서 세출 예산서에서 기금이 들어간 사업 옆에 ‘계속사업’ 표시가 붙어 있는지, 최소 3~5년 이상 이어갈 계획이 잡혀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만으로도 그 지자체의 태도가 어느 정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면 돌봄·교통 통합 프로젝트” 같은 이름으로 5년짜리 사업이 잡혀 있고, 매년 기금·일반회계·보조금이 섞여 들어가는 구조라면, 그 지역은 적어도 소멸을 구조 문제로 보고 있다는 신호다. 반대로 매년 이름은 거창한데 사업 구성이 완전히 갈아엎어지고, 단년도 사업만 잔뜩 쌓여 있다면, 아직 “기금 한 번 잘 써서 뭔가 터뜨려 보자” 수준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 짚어야 할 질문이 있다. “기금이 ‘새로운 실험’에 쓰이고 있는가, 아니면 기존 예산의 빈칸을 메우는 데 쓰이고 있는가?”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취지는 분명하다. 인구감소지역의 열악한 재정 여건을 감안해, 기존 틀로는 하기 어려운 새로운 대응 전략을 도와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을 보면, 원래 일반회계에서 했어야 할 도로 보수, 노후 시설 정비, 상하수도 관로 교체 같은 사업에 기금을 붙여 돌려 막는 사례도 나타난다. “원래 돈이 없어서 못 했던 걸, 기금으로라도 하자”라는 심리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기금은 ‘추가 자원’이 아니라 ‘구멍 난 재정의 패치’가 된다. 단기적으로는 편할지 몰라도, 지방소멸을 “정말로 늦추는 돈”이 되기는 어렵다. 예산서를 넘기면서 “이 사업은 기금이 아니어도 원래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습관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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