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건 인구가 아니라 정치다(1)

지방소멸 이야기엔 왜 ‘돈’이 안 보일까

by 우박

인구가 줄어든다는 말은 넘쳐난다. 출생률이 낮다는 통계도, 청년이 떠난다는 기사도 매일같이 쏟아진다. 그러나 정작 “그 마을에 쓰이는 돈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방소멸을 걱정하면서도 예산서와 결산서를 펼쳐보는 정치인은 드물고, 소멸대응 계획 속에서도 재정의 그림은 대개 뒷장 어딘가로 밀려난다.


이 글은 지방소멸 논의에서 가장 크게 빠져 있는 그 한 조각, ‘돈의 흐름’을 정면에서 끄집어내 보려는 시도다.


강원도의 한 군청 대회의실. “지방소멸 대응 계획” 주민 설명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인구감소, 소멸위험지수, 청년 유출…. PPT 화면에는 익숙한 그래프들이 줄줄이 등장한다.발표가 끝날 무렵, 뒤쪽에 앉아 있던 70대 어르신 한 분이 조심스럽게 손을 든다.


“말씀은 잘 들었는데요… 그러면 우리 동네에 앞으로 돈이 얼마나 들어오고, 어디에 쓰이는 건지는… 왜 설명을 안 해줍니까?”순간, 짧은 정적이 흐른다. 사회자는 “그 부분은 나중에 예산 편성 단계에서 다시 설명드리겠다”고 얼버무리고 다음 순서로 넘어간다.


설명회 제목은 분명 “소멸 대응 계획”이었지만, 그 계획 어디에도 ‘돈의 그림’은 없었다.비슷한 장면은 도시에서도 반복된다. 수도권의 어느 구청은 “원도심 활성화 계획”을 발표한다. 청년 예술가 유치, 골목상권 재생, 공공임대주택 확대…. 보기에는 그럴듯한 단어들이 나열된다.그러자 기자가 묻는다.


“이 사업 전체 예산이 얼마고, 그중 구 재정으로 감당하는 몫은 어느 정도입니까?”잠깐의 멈칫 끝에 돌아온 답은 이렇다. “그건 아직 중앙·시와 협의 중이라… 구체적인 규모는 추후에…”결국 주민들은 또 한 번 “그럴싸한 말의 계획”만 들은 채 돌아간다.


얼마나, 누구의 돈으로, 얼마 동안, 정확히 어디에 쓰겠다는 계획인지 알 수 없다. 지방소멸을 막겠다는 수많은 계획 속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돈’은 늘 “나중에 설명하겠다”는 말 뒤로 미뤄지고 있다.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지방소멸 논의에서 ‘돈’이 빠지는 이유는 적어도 세 가지쯤 있다.


첫째, 담론을 만드는 사람과 예산을 보는 사람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기 때문이다. 인구학자, 도시계획가, 사회학자는 소멸위험지수, 인구 피라미드, 이동 경로를 연구한다. 반면 예산과 결산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재정과 공시자료, 지방채와 각종 기금에 매달려 있다. 두 집단은 학회와 보고서에서는 만나지만, 실제 정치 현장에서는 거의 만나지 않는다. 인구·소멸에 대한 보고서는 많은데, 그것이 “이 항목의 예산을 이렇게 바꾸자”는 재정 구조 논의로 이어지지 못한다.


둘째, 정치가 여전히 ‘말의 정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공약을 떠올려 보자. “인구를 늘리겠습니다.” “청년이 돌아오는 도시를 만들겠습니다.” “마을을 살리겠습니다.” 문장은 크고, 수사는 화려하다. 하지만 그 뒤에 이렇게 이어지는 문장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연간 얼마의 예산을, 어떤 재원 구조로, 어느 부서가 책임지고, 어떤 지표를 목표로 쓰겠다.”이 네 줄이 빠져 있으면, 그 공약은 정치라기보다 수사에 가깝다. 주민들은 “좋은 말”을 들었을 뿐이고, 선거가 끝난 뒤 그 말을 무엇으로 점검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셋째, 행정은 사업 단위로 움직이는 동안, 정치는 재정 구조를 다루는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행정은 “사업 지침–공모–집행–정산”이라는 루틴에 익숙하다. 그래서 소멸 대응도 “○○사업 공모 선정”으로 이해한다. 사업이 하나 더 늘어나면, 대응이 하나 더 늘어난 것처럼 여긴다.반면 많은 지방의원과 후보에게 예산서와 결산서는 아직도 두껍고 어려운 서류, 재정 담당부서에서 ‘알아서’ 하는 것, 심의 때 몇 줄 질문 던지는 참고자료 정도로 취급된다.


이렇게 되면 지방소멸 논의는 자연스럽게 “인구 이야기 + 감성 이야기 + 중앙정부 공모사업 이야기”로 채워진다. 정작 “우리 시·군·구의 돈을 앞으로 어떻게 재편해야 하는가”라는 핵심 질문은 비어 있게 된다. ‘돈의 그림’ 없이 짜인 소멸대응 계획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지방소멸 대응 계획을 여러 지자체에서 비교해 보면 공통점이 드러난다. 인구·산업·생활여건에 대한 진단은 비교적 상세하다. “비전과 전략”도 멋있게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재정 계획은 대개 뒤쪽에 짧게 붙어 있거나, 아예 빠져 있다.그때 생기는 문제는 최소한 세 가지다.


첫째, 우선순위가 흐려진다. 인구감소 대응을 위해 10가지 과제를 적어 놨는데, 정작 예산을 들여다보면 도로·건물·축제에 더 많은 돈이 배정되어 있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럴 때 그 계획은 사실상 “종이 위에서만 존재하는 소멸대응”이라고 봐야 한다.


둘째,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돈이 붙지 않은 계획은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추진하겠다”는 말은 있어도, “못 했을 때 무엇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은 없다. 계획이 이행되지 않아도, “상황이 어려워서”라는 말로 빠져나갈 여지가 너무 많다.


셋째, 주민이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 주민 입장에서 “말의 계획”과 “돈의 계획”을 구분해 보고 싶어도, 후자가 공개되거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지 않으면 평가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선거 때도, 의정보고 때도 “얼마나 예산을 소멸대응에 썼는지”보다는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반복된다. 정치가 성실성의 서사에 머무르고, 재정 구조의 변화는 뒷전으로 밀린다.


결국 재정이 빠진 소멸대응 계획은, 정치가 책임을 회피하는 가장 손쉬운 방식이 되곤 한다. “우리는 계획을 세웠다”는 말은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만큼의 돈을 이 방향으로 실제로 돌려놨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예산서와 결산서를 가지고 지방소멸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도로·건물·대형 시설 예산 비중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늘고 있지 않은지, 정주·돌봄·공동체·주민참여 관련 예산은 전체의 몇 퍼센트에 그치고 있는지, 소멸위기 읍·면·동에 실제로 떨어지는 돈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 이런 질문을 차례로 던지는 순간, “우리 지자체는 말로는 소멸을 걱정하지만, 실제 돈 쓰는 방식은 소멸을 늦출 생각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로소 정치의 질문이 시작된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했다. 그 말은 곧, 정치의 본질은 말이 아니라 ‘배분의 결정’에 있다는 뜻이다. 지방정치의 맥락에서 그 ‘배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형태가 바로 예산이다.


한 지역의 정치가 살아 있는지는 그 지역의 예산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탄식하면서도 여전히 수백억 원짜리 토건 사업에 돈이 쏠리고 있다면, 그 지역의 정치는 사실상 소멸 위기를 극복할 의지가 없는 셈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돈을 쓰고 있는가?” “이 구조를 바꾸려면, 누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가?” “다음 선거에서 어떤 공약이 이 구조를 실제로 바꿀 수 있는가?”


지방소멸을 정치의 문제로 다시 정의한다는 것은, 결국 이렇게 묻는 일이다. “우리 지역의 돈의 흐름을 어디서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인구를 이야기하기 전에, 제일 먼저 예산서를 펼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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