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치인들이 알아야 할 재정의 기본 구조
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 무엇을 먼저 볼 것인가
결산서에서 읽어내는 정치의 우선순위
의회 복도에서 이런 말이 자주 들린다. “예산서는 너무 두꺼워. 재정은 공무원들이 알아서 하지.” 그런데 회의장 안에서는 또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지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 둘 사이에 뭔가 빠져 있다. 인구는 줄어들고, 지방소멸이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그 한가운데 있는 재정 구조를 모른 채 정치를 한다는 건 사실상 눈을 감고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 그리고 결산서라는 네 가지만 제대로 잡아도, 예산서가 전혀 다른 책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한 기초의회 결산심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위원이 물었다. “우리 군 기금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 재정담당 과장이 답했다. “현재 11개입니다.” 다시 질문이 나왔다. “그중에서 작년에 다 쓴 기금은 몇 개고, 절반도 못 쓴 기금은 몇 개인가요?” 과장이 서류를 뒤적이다가 “정확한 숫자는 정리해서 드리겠습니다”라고 답을 미뤘다. 지방소멸대응기금, 재난관리기금, 지역개발기금이 예산서 안에서 ‘칸’으로만 존재하던 순간이다. 이 장면이 말해 주는 건 단순하다. 통장의 구조와 흐름을 모르면, 정치의 우선순위도 모른다.
먼저 가장 기본이 되는 세 가지 통장부터 짚어보자.
● 일반회계: 이 지역의 기본 살림통
● 특별회계: 특정 목적에 묶인 별도 통장
● 기금: 정해진 목적을 위해 해마다 적극적으로 집행해야 할 실행용 주머니
이 정도만 머릿속에 잡고 있어도, 예산서와 결산서를 보는 눈이 훨씬 편해진다.
일반회계는 시·군·구의 거의 모든 일상 행정과 정책이 오가는 큰 길이다. 공무원 인건비, 청소·도로·행정운영비, 복지·교육·문화·환경·치안·도시계획 등 우리가 떠올리는 예산이 여기서 지출된다. 지방세와 교부세, 다양한 보조금이 한 바구니에 섞여 들어와,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나눠 쓰는 구조다. 그래서 일반회계 기능별 지출 구조를 보면, 이 지역이 말로는 뭐라고 하든 실제로는 무엇을 우선해 왔는지 한눈에 드러난다. 인구감소지역이라면서도 지난 5년간 도로·건설 비중은 거의 그대로인데, 복지·보건·교통·주거 비중은 제자리걸음이라면, 이 지자체 재정은 아직 “성장기 프레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특별회계는 특정 사업이나 분야를 위해 따로 떼어놓은 통장이다. 상수도·하수도·교통·주차장·공영개발·의료원·농공단지 등 이름도 가지각색이다. 요금 수입이나 특정 보조금처럼 “이 돈은 어디에 써야 한다”가 정해져 있는 재원을 처리할 때, 또는 특정 사업의 수입·지출을 일반 살림과 구분해 관리하고 싶을 때 쓰는 방식이다. 장점은 투명성이다. 예를 들어 상수도 특별회계를 보면 요금 수입이 얼마이고, 유지·보수·인건비에 얼마를 쓰는지, 매년 얼마나 적자를 내고 있는지 한눈에 보인다. 그 적자를 일반회계가 얼마나 메워 주고 있는지도 결산서에 찍힌다. 단점은 융통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올해는 상수도에 덜 쓰고 다른 데 쓰자”처럼 단순히 옮길 수가 없다. 법·조례·회계 규칙이 꽉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회계는 “눈 감고 있으면 편한데, 한 번 들여다보면 책임질 질문이 많아지는 곳”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기금으로 가 보자. 기금이라고 하면 아직도 “여러 해 모아두었다가 언젠가 크게 쓰는 돈”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그런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인구감소·지방소멸 시대에 이런 ‘쌓아두기 기금’은 오히려 문제가 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지방소멸대응기금처럼 인구감소 대응을 위해 따로 만든 기금은, 쌓아두는 것 자체가 정책 실패와 다름없다.
2024년 기준 자료를 보자. 인구감소지역에 배분된 지방소멸대응기금 7104억 원 중 집행액은 2268억 원, 집행률 31.9%에 그쳤다. 관심지역 배분액 364억 원 중 집행액은 150억 원, 집행률 41.2%다. 일부 시·군은 수십억 원씩 배분받고도 집행액 0원, 한 자릿수 집행률을 기록했다는 보고도 나와 있다. “돈이 없어서 못 한다”기보다는, “돈이 있는데도 제대로 설계·집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라살림연구소와 여러 연구는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정책 기금은 ‘비상금’이 아니라 ‘당해 연도 실행 예산’이어야 한다. 특히 인구감소 대응용 기금은, “나중에 쓰려고 모아두는 돈”이 아니라 “올해 안에 최대한 효과적으로 써보고, 안 맞으면 내년엔 설계를 바꾸는 돈”이어야 한다. 기금이 통장에 남아 있는 건 안전이 아니라 위기 대응 실패의 신호다. 지방정치인은 결산서에서 기금을 볼 때 이렇게 물어야 한다.
● “올해 배분된 금액 중 실제 집행액은 얼마인가?”
● “어디 동네, 어떤 삶의 조건을 바꾸는 사업에 들어갔는가?”
● “집행이 안 된 이유는 기획 부족인지, 인력 문제인지, 절차상의 발목인지?”
기금은 통장에 남아 있을 때가 아니라, 통장에서 빠져나가 주민의 삶을 바꿀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여기까지가 세 통장 구조라면, 이제 결산서로 시선을 옮겨보자. 예산서는 “올해 이렇게 해보겠습니다”라는 계획서라면, 결산서는 “실제로는 이렇게 했습니다”라는 성적표다. 말과 행동의 차이가 가장 또렷이 드러나는 책이 바로 결산서다.
결산서에서 첫 번째로 봐야 할 건 세입이다. “얼마를 걷기로 했고, 실제로는 얼마를 걷었는가.” 지방세·세외수입·교부세·보조금·기금 전입금 등 항목별로 예산 대비 결산액을 보면, 이 지자체가 얼마나 현실감 있게 숫자를 잡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 지자체 결산검사의견서를 보면, 예산현액보다 530억 원 넘게 초과 수납된 사례가 나온다. 세입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잡은 것은 아닌지, 또는 세입 추계를 보수적으로 하면서도 세출은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는 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반대로, 매년 지방세를 낙관적으로 잡았다가 결산에서 큰 폭으로 못 채우는 곳이라면 “경제와 인구의 현실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두 번째는 세출 집행 구조다. 예산서에서 “청년이 중요하다, 돌봄이 중요하다, 지방소멸이 심각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결산서를 펴서 보면 답이 금방 나온다. 청년·돌봄 예산 집행률은 60~70%에 머무는데, 도로·건설·시설 예산은 100% 꽉 채워 집행되어 있다면, 그 해의 실제 우선순위는 이미 정해졌다. 말이 아니라 숫자가 말해준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예로 들어보자. 최근 나라살림연구소 보고서를 보면, 2022년 처음 배분된 지방소멸대응기금 7477억 원 가운데 인구감소지역 기초단체 몫은 5606억 원이었고, 2023년 6월 30일 기준 집행액은 1057억 원, 집행률 18.85%에 그쳤다. 같은 배분액을 2023년 말까지 길게 잡아 봐도, 인구감소지역 기초단체 집행률은 37.6% 수준에 머물렀다. 이어서 2024년 배분분을 보면, 인구감소지역 몫 7104억 원 중 집행액은 2268억 원, 집행률은 31.9%, 관심지역 364억 원 중 집행액은 150억 원, 집행률은 41.2%였다. 광역단위는 90% 안팎의 집행률을 보이지만,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실제 사업 수행이 아니라 하위 기초단체로의 단순 이전에 그쳤다는 점도 보고서는 함께 지적한다.
결산서와 집행 통계는 이렇게 묻고 있다. “정말로 소멸을 막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왜 인구감소지역 몫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통장에 잠들어 있나?”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이 전용·이월·불용이다. 감사와 연구에 따르면, 많은 지자체에서 예산현액의 7~10% 수준 불용액이 매년 반복되고, 어떤 곳은 20% 가까운 불용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부지 매입 지연으로 인한 공사 미착공, 설계 지연, 보조금 정산 문제 등 사유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처음에 예산을 세울 때, 정말로 그 해 안에 할 수 있는 일인지, 우선순위가 맞는 일인지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시의 결산검사의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동 청사 건립 예산 불용, 예산현액 대비 불용액 7.44%. 부지 매입 지연으로 공사 미착공.” 또 다른 광역단체의 의견서에는 “예산현액의 29.8%인 934억 원 불용. 예비비 과다 편성 및 보조금 집행잔액이 주요 원인”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결국 지방정치인이 결산서를 읽을 때 붙들어야 할 질문은 어렵지 않다.
● 지난 3년 동안 우리 시·군 일반회계에서 복지·돌봄·교통·주거·일자리 비중은 늘었는가, 줄었는가.
● 상·하수도·교통 같은 특별회계 적자를 일반회계가 얼마나 메워 주고 있는가. 앞으로도 이 구조를 버틸 수 있는가.
● 지방소멸대응기금은 배분받은 해마다 실제로 얼마를, 어떤 유형의 사업(토목·행사 vs 생활서비스)에 썼는가. 통장에 잠들어 있는 돈은 없는가.
● 전용·이월·불용이 반복되는 사업은 무엇이고, 항상 조용히 100% 가까이 집행되는 사업은 무엇인가.
한 인구감소 군에서 실제로 있었던 풍경을 떠올려보자. 예산서에서는 “청년이 돌아오는 군, 아이 키우기 좋은 군”을 외치고 있었지만, 결산서를 보니 청년·출산·돌봄 관련 예산 집행률은 65%, 70%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같은 해 도로·시설·경관 예산은 거의 예외 없이 100% 집행이었다. 지방소멸대응기금 집행률은 20%를 넘지 못했고, 나머지는 다음 해로 이월되었다. 이 군의 한 의원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입으로는 청년을 말하고, 손으로는 도로를 짓고 있네요.” 재정 구조와 결산서를 함께 본 순간에야 비로소 나온 깨달음이었다.
지방정치인에게 예산서는 “해야 할 일을 상상하는 책”이고, 결산서는 “실제로 한 일을 기록한 책”이다. 두 책을 나란히 놓고 읽을 때, 그 사이 간격이 곧 이 지역 정치의 진짜 얼굴이 된다. 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이라는 구조를 한 번 이해하고 나면, 결산서의 숫자 하나하나가 “왜 우리는 이렇게 써왔는가, 앞으로 어디를 고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 지방정치인은 더 이상 “총액 몇 퍼센트 삭감·증액”만 가지고 싸울 수 없다. 어떤 통장의 돈을, 어떤 우선순위로, 어떤 방식으로 쓰고 있는지를 읽어내야 한다. 그 출발점이 바로 이 글의 주제다. 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이라는 세 가지 통장과, 결산서라는 성적표. 이 네 가지를 손에 익히는 순간, 예산서는 더 이상 두꺼운 종이뭉치가 아니다. 단체장과 의원이 함께 바꿔야 할 정치의 설계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