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건 인구가 아니라 정치다(4)

줄어드는 재정, 늘어나는 욕구 속에서의 선택

by 우박

“모두 조금씩”이 아니라 “몇 가지 깊게”로 바꾸기

비용이 아니라 ‘유지해야 할 삶의 조건’으로 재정 보기


인구는 줄어드는데, 예산은 여전히 “조금씩, 골고루”를 향해 간다. 읍·면 단위로 나눠준 소규모 사업들, 한 해에 끝나는 행사와 경관 정비, 각종 보조금이 예산서 곳곳을 메운다. 단체장과 의원은 “다 중요한 사업입니다”라고 말하지만, 막상 결산서를 펴 보면 정작 주민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돌봄·교통·주거·일자리 쪽은 항상 ‘조금씩’만 배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인구감소 시대 재정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줄어드는 재정, 늘어나는 욕구 속에서 “모두 조금씩”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몇 가지를 깊게” 선택할 것인가.


나라살림연구소가 인구감소 지역의 재정지출 구조를 분석한 여러 보고서를 보면, 인구가 줄어드는 농어촌 기초지자체 상당수에서 일반회계 지출 총액은 계속 늘어나는데, 그 안을 뜯어보면 공무원 인건비와 사회복지비, 이미 지어놓은 시설 유지·관리비 비중이 커지고, 투자적 지출은 줄고 있는 패턴이 반복된다. 문제는 이 ‘투자적 지출 감소’가 토목·시설뿐 아니라 돌봄·교통·주거·기초생활인프라까지 한꺼번에 줄이는 방향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지방소멸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소멸을 늦추는 데 필요한 삶의 조건에는 충분히 돈을 못 쓰고 있는 셈이다.


“모두 조금씩”의 정치가 남기는 것들


한 군청 예산편성 회의에서 실제로 있었던 장면을 떠올려 보자. 예산담당 팀장이 각 부서 요구안을 엑셀로 띄워 놓고 설명을 한다. “읍·면 체육시설 보수 5억, 마을회관 리모델링 3억, 경관정비 2억, 작은 도서관 조성 4억….” 숫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항목은 매년 비슷하다. 그때 단체장이 묻는다. “이 중에 뺄 수 있는 건 뭐죠?” 그러면 돌아오는 답은 대개 같다. “아무것도 못 뺍니다. 어느 동네 하나만 빼면 바로 민원이 들어옵니다.”


이른바 “골고루 정치”다. 어느 마을에도 크게 섭섭하지 않게, 조금씩이라도 나눠주는 방식. 유권자 입장에서는 당장 손해 보는 느낌이 덜하다. 하지만 이 방식은 인구감소 시대에는 몇 가지 뚜렷한 부작용을 남긴다.


첫째, 어느 한 곳도 충분히 지켜주지 못한다.

돌봄센터 예산을 읍·면별로 쪼개 쓰다 보면, 어디에도 제대로 된 인력과 프로그램을 붙이지 못하고 “간판만 있는 공간”이 된다. 교통 예산을 노선마다 조금씩 나눠 쓰면, 모든 마을 노선이 애매하게 유지되다가 결국 “불편해서 안 타는 버스”가 된다. 빈집 정비 예산을 여러 곳에 나눠 쓰면, 한 동네의 주거환경을 확 바꿀 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


둘째, 정치가 실질적인 선택을 피하게 된다.

“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순간, 사실은 아무 것도 진짜로 책임지지 않는 상태가 된다. 나라살림연구소 칼럼에서도 지적하듯, 중앙·지방 모두에서 “예산 만능주의”가 강할수록 구조개혁 대신 “조금씩 뿌리기”가 반복된다. 인구는 줄어도, 재정이 구조적으로 줄어드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정치는 계속 “이번만 넘기자”는 식으로 길게 미루게 된다.


셋째, 중앙 의존도가 강화된다.

지방소멸대응기금처럼 외부에서 들어오는 돈이 생기면, 이 돈 역시 “골고루 뿌리기”에 동원되기 쉽다. 각 읍·면이 공모 형태로 조금씩 따내고, 작은 시설·행사·체험 프로그램으로 쪼개 쓰다 보면, 기금이 사라진 뒤에도 유지될 만한 구조는 남지 않는다. 중앙이 보기에 “사업 건수”는 많지만, 주민이 보기에는 “삶이 달라진 건 별로 없다”는 느낌만 남는다.


이 지점에서, 인구감소 시대 재정의 첫 번째 전환이 필요하다. “모두 조금씩”에서 “몇 가지 깊게”로.


“몇 가지 깊게”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몇 가지 깊게”라고 하면, 정치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걱정은 이거다. “그러면 빠지는 동네는 어떻게 하느냐.” 실제로 이런 결정을 한 단체장들은 초반에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감수했다. 하지만 인구감소 시대에 정말로 모든 동네에 다 해줄 수 있는 여력이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나라살림연구소와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인구감소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지켜야 할 조건”은 다음 네 가지 축으로 정리된다.


● 아프면 갈 수 있는 의료·돌봄

● 학교·시장·관공서까지 갈 수 있는 교통

● 비를 피하고 겨울을 날 수 있는 주거

● 아이와 청년이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고 느끼는 교육·일자리


전남 인구감소군 몇 곳을 대상으로 한 우수사례 분석에서도, 실제로 주민이 체감하는 개선은 대부분 이 네 가지 축에서 나왔다. 읍·면 보건지소와 통합돌봄센터 확충, 생활권 순환버스 도입, 빈집 리모델링 임대주택, 지방대·지역기업 연계 일자리 프로젝트 등이 그것이다. 반대로, 경관사업·축제· 랜드마크 조성 등은 “분위기는 좀 좋아졌지만, 남아 살 이유가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몇 가지 깊게”의 첫 단계는, 이 네 축 가운데 우리 지자체가 특히 집중해야 할 축을 2~3개로 압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 의료 접근성이 이미 일정 수준 확보된 도시형 인구감소지역이라면, 주거와 일자리에 더 무게를 둘 수 있고,

● 병원과 학교가 멀고 고령화가 심한 농촌지역이라면, 돌봄과 교통에 최우선 순위를 둘 수 있다.

그다음 단계는, 압축한 축마다 “최소 유지 수준”을 숫자로 그려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이다.


● 우리 군에서 읍·면 통합돌봄센터 최소 ○곳,

● 생활권 순환버스 최소 ○노선,

● 매년 리모델링해야 할 빈집 최소 ○호,

● 청년·청소년 대상 지역 일자리·교육 프로그램 최소 ○개.


이렇게 기준을 만들고 나면, 예산 편성 단계에서 질문이 조금 바뀐다.


● “각 읍·면에 골고루 하나씩 줄 수 있는가?”가 아니라,

● “이 최소 수준을 먼저 채우고도 다른 사업을 논의할 여지가 있는가?”로.


재정을 ‘비용’이 아니라 ‘조건’으로 보자


두 번째 전환은, 재정을 비용이 아니라 ‘유지해야 할 삶의 조건’으로 보는 시각이다.


나라살림연구소 칼럼과 보고서들은 종종 “정치가 비용만 보고 조건을 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예를 들어, 노인 돌봄 예산을 두고 “해마다 몇십억씩 늘어나니 부담”이라는 말이 쉽게 나온다. 하지만 이 돈을 줄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계산은 잘 하지 않는다. 실제로 보건·복지 지출을 줄이거나 미루면, 몇 년 사이에 응급실 방문·입원·시설 입소가 늘어나고, 이는 건강보험·장기요양·지방의료 재정에도 부담을 키운다는 연구들이 많다. 결국 다른 곳에서 더 큰 비용을 내게 되는 셈이다.


인구감소지역의 재정지출과 청년 인구 순유입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도로·건설 위주의 경제개발비 확대가 청년 인구 증가와 뚜렷한 상관을 보이지 않는 반면, 사회복지·사회개발, 특히 생활 인프라와 관련된 지출이 청년 순유입과 더 강한 관련을 가진다는 결과다. 물론 단순 인과관계로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토목·시설 투자 = 인구유입”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인구감소 시대 재정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삶의 조건은 무엇인가?”

● “그 조건을 유지하는 데 드는 재정은 얼마인가?”

● “이 돈은 아끼는 비용인가, 아니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 최소 비용인가?”


여기서 말하는 ‘조건’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이 동네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누군지 떠올려 보라”고 하면, 대개 이런 모습이 떠오른다.


● 차 없으면 병원·장 보러 가기 힘든 어르신,

● ● 아이 셋을 키우며 버티는 젊은 부부,

● 학교 졸업 후 대도시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고3·대학생,

● 농사와 다른 일을 함께 해야 하는 40~50대.


재정의 우선순위는 이 사람들이 “여기서 살아도 괜찮다”고 느끼게 하는 조건에 먼저 맞춰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단순히 “지출”이 아니라, 이 지역이 계속 존재하기 위해 내야 하는 최소한의 “유지비”다.


연구와 현장이 가리키는 방향


나라살림연구소와 여러 연구, 그리고 언론 보도는 인구감소 시대 재정에 대해 비슷한 메시지를 던진다.


● 인구감소지역 상당수는 기초생활인프라(교통, 의료, 교육, 생활편의)가 국가최저기준에도 못 미친다.

● 그 와중에도 토목·시설 위주 예산과 각종 소규모 사업은 관성적으로 유지된다.

● 지방소멸대응기금 같은 새로운 재원도, “삶의 조건”에 집중되기보다는 일회성 사업으로 흩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반대로, 인구감소 대응 우수사례로 주목받는 몇몇 지자체들은 공통점이 있다.


● 읍·면 단위 통합돌봄센터를 만들고,

● 마을·읍·시를 잇는 생활권 순환버스·공공교통망을 정비하고,

● 빈집·노후주택을 리모델링해 청년·고령자 주거를 동시에 해결하고,

● 지방대·지역기업과 손잡고 청년 일자리·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한다.


이런 지자체의 예산서에는 “체육공원 조성” 같은 토목 사업 대신, “○○면 통합돌봄센터 설치·운영”, “△△생활권 순환버스 운영”, “인구감소지역 빈집 활용 정주주택 사업”, “청년·청소년 로컬경험·취업 프로그램” 같은 항목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말하자면, 예산서의 항목 이름 자체가 “시설 이름”에서 “삶의 조건 이름”으로 바뀌는 것이다.


지방정치인이 할 수 있는 일


그렇다면 지방정치인과 단체장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1. 생존 조건 우선순위를 공식적으로 정한다.


● 군정 비전, 중기재정계획, 인구감소 대응 계획에 “우리 지역이 지킬 삶의 조건 3~4개”를 명시한다.

● 이 조건을 예산 편성 지침과 결산 심사 기준에도 반영한다.


2. 예산서에서 조건별 “최소 유지 예산”을 먼저 채운다.


● 각 부서에 “생존 조건 관련 예산”과 “기타 예산”을 나눠 편성하도록 요구한다.

● 편성 단계에서, 먼저 생존 조건 예산을 충분히 확보한 뒤에야 나머지 사업을 논의한다.


3. 결산서에서 조건별 집행률과 효과를 점검한다.


● “돌봄·교통·주거·일자리 예산 집행률은 몇 %인가?”, “이 사업이 실제로 몇 명의 삶을 바꾸었는가?”를 묻는다.

● 전용·이월·불용이 반복되는 사업은 구조조정을 전제로 재검토한다.



3. 기금과 특별회계를 ‘실행용 통장’으로 다룬다.


●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쌓아두는 돈”이 아니라, 당해 연도에 과감히 집행해야 할 실행 예산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 기금 집행 내역과 효과를 주민에게 공개하고, 다음 해 계획에 반영한다.


그래서, 이런 질문으로 끝내고 싶다.


“당신이 이 지역에서 10년 뒤에도 꼭 지키고 싶은 삶의 조건 세 가지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예산서와 결산서는, 그 조건을 지키는 데 돈을 쓰고 있는가.”


인구감소 시대 재정 우선순위를 다시 짠다는 건, 결국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고, 그 답에 맞게 숫자와 항목을 바꾸는 일이다. 말로만 “지방소멸 위기”를 외치는 정치를 넘어, 예산서와 결산서 위에 살아야 할 이유를 다시 써 넣는 것. 그것이 여기서 제안하는 재정 정치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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