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캠프가 피해야 할 공약 5가지 함정

① 숫자만 많은 공약, ② 사업 나열형 공약, ③ 타깃 없는 ‘모두를 위

by 우박

[사라지는 건 인구가 아니라 정치다] 시리즈 7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후보와 캠프에게 공약은 ‘한 번 뿌리고 마는 전단지’가 아니라, 선거가 끝난 뒤에도 네 해 동안 계속해서 되짚어봐야 하는 설계도에 가깝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 공약집을 펼쳐 보면, 설계도라기보다는 ‘좋은 말 모음집’이나 ‘사업 목록 표’에 가까운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공약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고심해서 정리한 결과물일지 모른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 의회 회의실, 지역 주민센터 간담회, 읍·면·동 책임자 회의에서 그 공약집이 다시 꺼내져 실제 정책과 예산의 기준으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공약이 너무 많고, 너무 추상적이고, 너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만족시키려다 보니, 책임질 수 있는 약속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문장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공약의 이런 문제는 실제 현장에서 자주 목격된다. 한 군 단위 지방자치단체의 사례를 보자. 한 후보가 ‘군민을 위한 120대 공약’이라는 제목으로 두툼한 공약집을 냈다. 표지에는 농업·복지·교육·문화·교통·청년·노인 등 온갖 분야가 다 적혀 있고, 군민 설명회 자리에서 캠프 관계자는 “이 정도면 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역사상 최고의 공약집”이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1년이 지난 뒤 의회에서 ‘지난해 공약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회의에서 의원들이 꺼내 든 것은 그 120개 전체가 아니라, 그 가운데 언론에서 한번 이슈가 된 두세 개 공약뿐이었다. 나머지 공약은 담당 부서별로 기존에 하던 사업과 섞여 버렸고, 실제로 ‘공약 이행률’을 계산하는 과정에서도 ‘이 사업을 공약에 포함된 것으로 볼지 말지’를 두고 실무진과 캠프 출신 보좌진 사이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숫자만 많은 공약이 결국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는, 그래서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공약이 되어버린 전형적인 장면이다.


① 숫자만 많은 공약


숫자 경쟁은 지방선거 때마다 반복된다. ‘공약 50선’이라고 내놓은 캠프 옆에서 ‘공약 80선’을 내놓고, 또 다른 쪽에서는 ‘민생 공약 120개’를 내세운다. 마치 더 많은 공약을 내놓을수록 준비된 후보인 것처럼 보인다는 믿음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유권자들이 공약집을 읽는 방식은 다르다. 읍·면 사무소에 비치된 공약집을 펼쳐보는 주민들은 대개 ‘우리 동네에 해당되는 게 뭐냐’를 먼저 찾는다. 청년은 일자리와 주거를, 어르신은 의료·돌봄과 이동권을, 자영업자는 상권과 세제 지원을 찾는다. 공약이 50개냐 100개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삶과 직접 연결되는 공약이 몇 개나 있는가’가 중요하다.


한 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A 후보는 ‘도시대개조 100대 프로젝트’를 내세웠고, B 후보는 ‘핵심 15대 공약’만을 전면에 내세웠다. 선거 때 언론은 A 후보의 공약집을 두고 “정책의 스펙터럼이 넓다”고 평가했고, B 후보에게는 “공약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일부 있었다. 그런데 선거 후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민단체가 두 후보의 공약 이행 상황을 비교 분석했을 때, A 후보의 공약 가운데 상당수는 기존에 계획되어 있던 도시계획과 각 부서의 연례 사업을 이름만 바꿔 공약에 집어넣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B 후보의 15개 공약은 대부분 ‘어느 동네의 어떤 문제를 언제까지 어떻게 고칠 것인지’가 예산과 함께 비교적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고, 이행 여부를 평가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숫자만 많은 공약이 왜 위험한지, 이 사례는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약을 많이 쓴다는 것은 준비가 잘 됐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결국 숫자만 많은 공약은 후보와 캠프에게는 안도감을 주지만, 행정과 의회, 주민들에게는 부담과 혼란을 준다. 임기 4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매년 편성할 수 있는 예산 규모, 공무원 조직의 인력과 역량, 중앙정부와의 조정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핵심 공약 10~20개’를 중심으로 설계도를 짜는 것이 현실적이다. 숫자를 늘리기 전에, ‘선거가 끝난 뒤에도 우리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약속이 몇 개인가’를 먼저 묻는 것이 공약 설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② 사업 나열형 공약


두 번째로 흔한 함정은 ‘사업 나열형 공약’이다. 실제 공약집을 보면 ‘○○축제 활성화’, ‘△△센터 건립’, ‘□□지원 사업 확대’ 같은 문구가 페이지마다 빼곡히 적혀 있다. 이는 공무원 입장에서는 익숙한 언어다. 행정은 늘 사업을 단위로 예산을 짜고, 평가도 사업별로 한다. 그래서 각 부서에서 올라온 아이디어나 기존 사업계획을 모아 ‘공약 후보 목록’으로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약이 사업 명칭들의 목록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빠지는 것은 ‘문제의 정의’와 ‘방향의 설정’이다.


예를 들어 어느 농촌 지역에서 ‘귀농·귀촌 지원센터 건립’이 공약으로 제시되었다고 하자. 겉으로 보면 젊은 세대를 유입시키고 마을을 살리기 위한 좋은 공약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미 인근 시·군에 비슷한 센터가 여럿 있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상담 몇 건, 교육 몇 회 수준의 실적만 남긴 채 유명무실해졌다는 사실을 함께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센터 건물이 아니라, ‘이 지역에 실제로 정착할 사람들을 어떻게 찾아내고, 처음 1~2년을 버티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일 수 있다. 그 문제의식이 없이 센터 건립만 공약으로 내세우면, 결과는 비슷하다. 예산을 들여 건물을 짓고, 몇 년간 운영비를 지원하지만, 정작 마을 인구 구조에는 큰 변화가 없고, 몇 년 뒤에는 또 하나의 건물만 남게 된다.


사업 나열형 공약은 특히 지방재정이 빠듯한 지역에서 위험하다. 한 번 시작한 사업은 쉽게 줄이거나 없애기 어렵다. 이해당사자도 생기고, 관련 조직과 인력도 생긴다. 공약으로 시작한 사업이 시간이 갈수록 ‘그냥 계속해서 돌아가는 행정 관성’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약을 사업 목록으로 나열하는 대신, ‘이 지역이 당면한 문제를 3~5개 키워드로 압축해 정의하고, 각 문제를 풀기 위한 경로로서 사업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같은 센터 건립이라도, 몇 년 뒤 어떤 지표를 바꾸기 위한 수단인지, 기존 시설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함께 적혀 있을 때 비로소 공약으로서의 설득력을 얻는다.


③ 타깃 없는 ‘모두를 위한’ 공약


세 번째 함정은 ‘모두를 위한’ 공약이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행복한 도시’, ‘농민과 소상공인, 청년, 노인이 함께 웃는 지역’ 같은 문장은 듣기에는 아름답다. 선거 연설장에서 이런 문장을 말하면 박수도 잘 나온다. 하지만 예산서 앞에 앉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산은 결국 선택의 예술이다. 한정된 재정과 인력을 어디에 먼저 투입할 것인지, 어떤 분야는 잠시 속도를 늦출 것인지, 어떤 사업은 과감히 정리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이때 ‘모두를 위한” 공약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느 중소도시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례다. 인구는 줄고, 세수도 줄어들어 매년 긴축 편성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새로 당선된 단체장은 선거 때 내세웠던 구호를 지키기 위해 ’전 세대를 위한 복지 확대‘를 공약 이행계획에 그대로 넣었다. 그러자 각 부서에서는 “우리가 담당하는 대상도 ‘전 세대’에 포함된다”며 각자 확대 계획을 들고 나왔다. 노인복지과는 경로당 운영비 추가 지원과 경로잔치 확대를, 아동청소년과는 돌봄센터 확충과 장난감 도서관 신설을, 청년정책 전담팀은 청년 활동공간과 지원사업을 새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결과적으로 어느 한 분야도 충분히 늘리지 못한 채, 기존 예산을 잘게 쪼개 여러 항목에 나누어 넣는 방식으로 정리가 되었다. “모두를 위한 복지 확대”라는 공약은 지킨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았다.


타깃이 없는 공약은 정치적 책임도 흐린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치명적인 손실을 겪고 있는 집단이 어디인지, 지금 개입하지 않으면 5년 뒤 돌이키기 어려운 영역이 어디인지에 대한 판단을 공약에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감소가 심각한 군 단위 지역이라면, 예를 들어 ‘10~30대 여성과 아이를 지키는 정책’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또는 특정 읍·면이 아예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면, ‘그 지역 주민을 붙잡기 위한 교통·의료·돌봄 패키지”를 타깃으로 삼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타깃을 분명히 하는 것은 누군가를 배제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당장 가장 절박한 곳부터 손대겠다”는 정치적 선택을 분명히 하겠다는 뜻이다.


현장에서 주민들을 만나 보면, 오히려 이런 솔직한 선택을 존중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임기에는 특히 청년·아이·돌봄에 집중하겠다, 대신 다른 분야는 조금만 이해해 달라”는 메시지가 분명히 전달되면, 나머지 집단도 “다음에는 우리 차례가 오겠지”라는 기대를 갖고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반대로 모두를 위한 공약만 늘어놓고, 실제로는 어느 누구도 충분히 돕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지방정치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선거 때 하는 말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냉소가 지방선거 때마다 재생산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약 설계에서 이 세 가지 함정을 피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숫자를 줄이고, 사업을 나열하는 대신 문제를 먼저 적고,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우선할 것인지’를 분명히 적는 것에서 출발하면 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후보와 캠프는 반드시 한 번쯤은 불편한 질문과 마주쳐야 한다. ‘이 공약은 정말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약속인가’, ‘선거가 끝난 뒤 예산과 조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이 공약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뒤로 밀릴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질문을 피해 가는 순간 공약은 다시 숫자 경쟁, 사업 목록, 모두를 위한 선언으로 되돌아간다.


지방정치가 말의 과잉과 책임의 부족이라는 오래된 병에서 벗어나려면, 공약부터 달라져야 한다. 숫자만 많은 공약, 사업 나열형 공약, 타깃 없는 공약을 줄여 나가는 순간, 후보와 캠프는 선거 때 말하는 것보다 임기 동안 지키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공약이 많아서 좋아 보이는 캠프가 아니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몇 가지 약속을 골라내는 데 시간을 들이는 캠프가 결국 더 튼튼한 지방정치를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공약의 함정을 피하는 작업은 단순한 문장 손질이 아니라, 앞으로 네 해 동안 이 지역의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결단을 미리 드러내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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