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어디서, 무엇을, 언제, 어떻게”를 먼저 묻기, 유권자 3인의
[사라지는 건 인구가 아니라 정치다] 시리즈 8
도시 외곽에서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한 중장년의 하루를 따라가 보면, 그 사람의 삶이 사실상 시간표 하나에 갇혀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새벽 다섯 시가 조금 넘으면 알람이 울리고, 집 안은 아직 어둡다. 부엌 불을 먼저 켜고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면서, 오늘은 아이들 학교 급식이 있는 날인지, 어제 부모님께 전화는 드렸는지, 머릿속으로 하루를 대충 훑는다. 출근 준비를 서두르면서도 아이 도시락이나 아침을 챙길지, 아니면 오늘은 그냥 학교 급식에 맡길지 순간마다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사이에 휴대전화에서는 카드값 결제일, 공과금 자동이체 안내 문자가 올라온다. 이 사람에게 오늘 하루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날이 아니라, 어떻게든 오차 없이 굴려야 하는 반복 작업이다. 그런데 지방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공약집을 펼쳐 보면, 이런 장면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대중교통 혁신’, ‘워라밸 도시’,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같은 말은 많지만, 정작 이 중장년 한 사람의 아침 여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주는 문장은 거의 없다.
삶의 장면에서 출발하는 공약 쓰기란, 바로 이 지점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이 지역의 유권자들은 어떤 정책을 원합니까?”라는 추상적인 질문 대신, “이 지역에 사는 48세 김 모 씨는 오늘 하루 어디서 시간을 쓰고, 어디에서 가장 많이 지치며, 그 장면을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먼저 묻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틀이 하나 있다. 바로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언제, 어떻게’라는 다섯 가지 질문이다. 공약 문장을 쓰기 전에 이 다섯 가지를 채워 넣지 않으면, 그 공약은 거의 반드시 추상적인 구호가 되거나, 사업 명칭 나열로 흘러가게 된다. 반대로 이 다섯 칸만 구체적으로 채워져 있어도, 문장 자체는 무척 단순해 보이더라도 유권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공약이 된다.
먼저 ‘누가’를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의 ‘누가’는 ‘시민’, ‘주민’, ‘중소상공인’처럼 넓은 집단이 아니다. 도시 외곽에 사는 40대 후반 직장인, 왕복 3시간 이상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가장, 위로는 70대 노부모를 부분적으로 부양하고 아래로는 중·고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사람처럼, 얼굴이 떠오를 정도로 좁혀진 한 사람이다. 이 사람의 건강 상태, 직장 형태, 소득 수준, 주거 형태까지 들어갈수록 공약의 방향은 더 선명해진다. “어떤 계층을 위한 공약입니까?”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떠올리는 그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로 질문을 바꾸는 순간, 공약은 이미 절반쯤 현실로 내려온다.
두 번째는 ‘어디서’다. 집 주소를 행정구역으로만 적는다고 해서 삶의 장소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의 하루는 어떤 노선의 버스를 타고, 어느 역에서 어느 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하며, 점심을 먹을 때는 어떤 상권을 이용하는지, 퇴근 후에는 어떤 동네 골목길과 횡단보도를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지에서 비로소 구체성을 갖는다. 출근길에 반드시 지나치는 환승역, 아이 학교와 학원, 부모님이 다니는 병원과 보건소 같은 장소가 같이 등장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대중교통 공약이 추상적인 노선도 그림이 아니라, ‘이 환승역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얼마나 줄일 것인지’, ‘집에서 회사까지 몇 번 환승을 줄일 것인지’ 같은 구체적 변화로 바뀐다.
세 번째는 ‘무엇을’이다. 이 사람은 하루 동안 무엇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가. 새벽에 첫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는 일, 빡빡한 출근 시간 때문에 병원 예약을 자꾸 미루는 일, 점심시간에도 관공서를 가지 못해 각종 행정절차를 미루는 일, 퇴근 후에도 아이들 숙제와 학원 뒷바라지를 챙기느라 자기 몸을 돌보지 못하는 일이 있다. 여기서 공약은 ‘교통’, ‘보건’, ‘돌봄’, ‘노동시간’이라는 행정 분야별 분류가 아니라, ‘이 사람이 매일 반복하는 행동이 덜 위험하고 덜 지치게 바뀌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예를 들어 통근 시간 30분 단축이 가능하다면, 그 30분을 건강검진, 부모님 병원 동행, 아이와 대화에 쓸 수 있게 만드는 장치까지 같이 설계하는 것이 공약이다.
네 번째는 ‘언제’다. 같은 거리, 같은 노선이라도 아침 출근 시간과 밤 늦은 귀갓길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새벽 다섯 시 어둠 속에서 첫 버스를 기다리는 장면과, 밤 열한 시를 넘겨 마지막 열차에서 졸다 깨는 장면은 정책적으로 다른 문제를 드러낸다. 아침에는 지각과 해고의 불안, 밤에는 안전과 건강의 위기가 겹친다. 여기에 계절이 더해지면, 겨울 폭설과 여름 폭우는 또 다른 장면을 만든다. 공약을 쓰는 사람은 같은 교통공약이라도 ‘아침 6시 이전 첫차 시간대’, ‘밤 11시 이후 막차 시간대’, ‘악천후 시 운행 안정성’처럼 시간대별 장면을 떠올려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배차 간격 단축’ 같은 말이 숫자 조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방어선으로 읽힌다.
마지막은 ‘어떻게’다. 지금 이 사람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고, 공약이 실행되면 그 흐름이 어떻게 바뀌는가. 지금은 왕복 3시간 통근에 매여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면, 공약 실행 후에는 왕복 2시간으로 줄어든 시간 속에서 무엇을 새로 할 수 있는지까지 그려야 한다. 단순히 “직장과 집 사이의 통행 시간이 단축됩니다”가 아니라, “그 시간에 정기검진을 받고,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아이 진로 상담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정도까지 상상해야 한다. 공약은 결국 시간과 공간을 재배치하는 약속이다. ‘어떻게’의 칸까지 채워 넣었을 때, 공약은 숫자 조정보다 인생 재구성에 가까운 제안이 된다.
이렇게 한 사람의 하루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작업은, 자연스럽게 유권자 3인의 하루로 확장된다. 하나는 지금 이야기한 도시 외곽 장거리 출퇴근 중장년, 또 하나는 같은 집에 사는 중·고등학생 자녀, 그리고 셋째는 근교에 사는 70대 부모다. 이 세 사람의 하루를 나란히 놓고 보면, 교통·교육·돌봄·주거·복지가 서로 떨어진 분야가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여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침에는 아이 등교와 부모님의 약 복용, 자신의 출근이 한 시간 안에 동시에 일어나고, 낮에는 자녀 학교생활과 부모님의 병원 진료, 본인의 노동이 겹쳐 있다. 저녁에는 자녀 학원 이동과 부모님 안부 전화, 자신의 피로 누적이 한꺼번에 쌓인다. 공약은 바로 이 세 사람의 타임라인이 어디에서 서로 엉키고, 어디에서 서로 끊어지는지를 기준으로 다시 배열돼야 한다.
유권자 3인의 하루를 따라가는 공약 구성법은 그래서 하나의 실천적인 편집 기법이 된다. 공약집 목차를 교통·복지·교육·산업으로 나누기 전에, 먼저 ‘이 지역의 중장년 한 사람, 그 자녀, 그 부모의 하루’를 시간 순으로 적어본다. 그리고 그 타임라인 위에 현재의 행정 서비스와 예산 투입 지점을 표시하고, 공백과 병목을 찾는다. 그 위에 공약을 올려놓으면, 같은 예산을 쓰더라도 ‘누군가의 하루’가 실제로 달라지는 지점에 집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장거리 출퇴근 중장년에게는 출근길 환승 시간을 줄여주는 광역버스 공약과, 점심시간에 온라인으로 민원을 처리할 수 있는 디지털 행정 공약, 야간 진료를 확대해 건강검진을 미루지 않게 하는 보건 공약이 하나의 세트가 될 수 있다. 자녀에게는 안전한 귀가길과 직업교육, 부모에게는 이동 가능한 의료와 돌봄서비스가 붙으면서, 하나의 가족 단위 여정을 기준으로 공약이 묶인다.
이런 방식으로 공약을 쓰면, ‘좋은 말 모음집’은 자연스럽게 걸러진다. “중장년을 위한 배려 정책을 강화하겠습니다”라는 문장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대신 ‘왕복 3시간 통근을 2시간으로 줄이기 위해 어떤 노선을 어떻게 손볼 것인지’, ‘점심시간과 밤 시간대에 어떤 공공서비스를 열어둘 것인지’, ‘부모와 자녀를 위해 이 중장년에게 어떤 지원을 먼저 할 것인지’가 드러난다. 삶의 장면에서 출발하는 공약 쓰기는 결국, 유권자의 하루를 설계도처럼 펼쳐놓고 그 위에 재정과 행정을 다시 그려 넣는 일이다.
후보와 캠프가 이 작업을 얼마나 진지하게 해내느냐에 따라, 같은 공약집이라도 어떤 것은 선거가 끝나는 순간 잊히고, 어떤 것은 4년 내내 여러 사람이 함께 다시 펼쳐 보는 계약서가 된다. 공약을 다시 쓰자는 말은 어려운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언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이다. 이 질문을 거치지 않은 공약은 오래가지 못한다. 반대로, 이 질문에서 시작한 공약은 선거가 끝난 뒤에도 그 사람의 하루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