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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박 Jul 21. 2024

[엣세이] 겸손은 힘들어

나답게 살고, 너답게 살길...

1991년 조영남이 '겸손은 힘들어'라는 노래를 불렀다.

표절 의혹도 있었지만 2012년 리쌍이 리메이크해서 인기를 끌었다.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은 160만 유튜브 방송이다.

과거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줄곧 라디오 청취율 전체 1위를 기록을 해

'겸손하기 힘든 청취율'이라며 방송 오프닝 음악으로 자주 틀었다.

그래서‘겸손은 힘들다’라고 네이밍 했다고 한다.   


겸손의 본래 뜻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심으로 겸손한가?

개인 보다 집단을 중시하며 겸손이 아닌 눈치껏 행동하지 않았을까?      

레거시미디어 심지어 유튜브 방송에서도

겸손하지 않은 출연자들은 악플 사례를 받기 일쑤이다.

‘나는 솔로’라는 연애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데,

유튜브 리뷰어들이 출연자들에 대해 온갖 악평을 할 때

그들 대부분 공통된 평가의 잣대는 ‘겸손’이다.

출연자들이 학교, 직업, 사는 동네, 취미 등을 조금이라도 내세우면

가차 없이 씹어댄다. 자기를 뽐내며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한 프로그램에서 조차

우리는 겸손의 미덕을 준수하길 강요한다.

상대의 겸손하지 않음을 나무라며 본인들은 겸손하지 않다.      


지나친 겸손은 오만이라고 본다.

오만하고 과신하는 사람들에 대해 매번 뭐라 하는 선배가 있다.

그 선배는 말끝마다 “나는 항상 뭘 잘한다고, 안다고 내세우지 않잖아.”

하지만 그 말 언저리에는 ‘나는 내세우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았어’라는

오만스러움이 깔려 있다.  

아예 말을 하지 말거나 차라리 ‘나는 이 부분은 자신 있어’라고 하는 게 날듯 하다.      

어느 정도 남을 존중하고 나를 낮추는 것은 인간관계에 도움이 된다.

좋은 태도겠지만 겸손이라는 틀에 갇힐 필요는 없다.


겸손보다는 자존감이 우선이다.

자존감은 자아존중감의 줄임말이다.

자아존중감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와 자신을 신뢰하는 마음에 따라

남을 존중할 수도 나를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 국정감사에 불려 나온 고위공직자들이

의원에게 ‘존경하는 의원님’이라고 한다.

‘존경하는 의원님’의 유래는 그들을 선출해 준 국민들을 향한 것이다.

그래서 대국민 담화나 성명에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한다.  

국회에서는 단지 좀 더 겸손하게 보이기 위해 형식적으로 쓰일 뿐이다.

국민들은 그 호칭을 들으며 의원이나 공직자들을 겸손하게 보기보다 거북해한다.

겸손하게 보이기보다 그들의 사명과 소임이 먼저다.     


우리는 조직에서 공치사를 경계한다.

그 뜻은 스스로의 공을 칭찬하고 자랑하는 말을 의미한다.

공치사를 하는 사람은 겸손하지 못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왜 자신의 공을 겉으로 칭찬하면 안 될까? 속으로 몰래 스스로 만족하면 되는가?

적절한 공치사가 필요하다.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모른다.

자신이 남들보다 노력하여 성과를 냈는데도 입 밖으로 내면 그 가치를 절하한다.

겸손하게 감추거나 다른 사람의 공으로 돌려야 미덕으로 보는 분위기이니깐     


나와 나의 잘남을 드러내야 한다.

여자는 여자답게, 남자는 남자답게,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청소년은 청소년답게, 청년은 청년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선배는 선배답게... (답답하다)

우리는 뭐뭐답게 사는 게 바람직한 것처럼 여긴다.

나는 나로서 잘난 게 있다. 그 잘남을 뽐내거나 입 밖으로 뱉었을때

뭐뭐답지 않으면 타인은 나댄다며 ‘겸손’이라는 잣대로 ‘눈치’를 준다.  

내가 좀 잘났다는데, 좀 공을 세웠다는데 그걸 왜 표현을 못하나     


물론 잘나지도 잘하지도 않았는데

습관성 자랑질을 하면서 상대를 깔아뭉개면 큰 문제다.

우리는 다 잘나지도 잘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각자 개개인이 한두 가지씩은 잘나기도, 잘하는 것은 있다.

그것을 내세울 때는 겸손하지 말자는 것이다. 또 공치사하자는 것이다.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방송 대문에

“편파적 방송, 그러나 그 편파에 이는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고 걸려있다.

자신의 삶에 편파적 일 때도 있어야 하고

타인의 삶에 관용적 일 때도 있어야 한다.


나답게 살되 너답게 살길...  

서로 겸손은 힘드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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