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인구소멸시대
‘나는 솔로’라는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사는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솔로 남녀들이 모여 사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극사실주의 데이팅 프로그램’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출연자들의 자기소개 때 중요한 대목은 직업과 아파트의 자가유무이다. 상대를 선택할 때 남녀를 막론하고 전문직이거나 대기업에 다니고 서울에 아파트가 있으면 일단 강한 호감으로 작용한다.
‘나는 솔로’를 통해 결혼이 성사한 커플들은 의사, 변호사 등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들이다. 즉 ‘나는 솔로’는 ‘안정적인 결혼을 할 수 있는 상위층 솔로 남녀들이 조건을 치열하게 따져 살아남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나는 솔로’와 발맞춰 지방자치단체들은 다양한 결혼 장려 프로젝트를 쏟아내고 있다.
전국의 지자체들이 결혼이민자, 결혼장려금, 결혼예식장 지원, 결혼문화조성 등 ‘결혼’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파악된 예산은 총 349억원에 이른다.
전남은 시·군과 함께 전라남도에 거주 중인 49세 이하의 청년 부부를 대상으로 5천 부부를 선정해 지원하는 ‘결혼 축하금’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연령, 혼인, 거주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할 때 주어지는 결혼지원금은 부부당 200만원이다.
여기다 전남 화순군은 청년·신혼부부에게 월세 1만원으로 20평형대 아파트를 임대하는 '만원 임대주택' 사업을 지난해 시작했다. 50세대를 선발하는 1차 모집에서 506명이 몰려들어 10.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충북 영동군은 '1억원 성장 프로젝트'를 올해부터 시행한다. 결혼 후 관내에 정착하는 45세 이하 청년 부부에게 지급하는 1천만원의 정착지원금을 비롯해 국·도비로 지원되는 각종 장려금에 군비 사업을 합해서 영동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부에게 최대 1억2천400만원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결혼친화도시’로 선포한 대구 달서구는 결혼장려지원사업, 결혼친화서포터즈단운영, 세대공감 결혼토크쇼, 청년부부 결혼축하금 사업 등 자치구 중 드물게 다양한 결혼 장려사업 등에 예산 5억8천만원을 쓰고 있다.
이렇게 연애 예능과 지자체 지원 정책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지난 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신혼부부 통계' 통계는 ‘나는 솔로’의 인기와 지자체들의 노력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신혼부부 수는 103만 2천쌍으로 2021년 보다 6.3%(6만9천쌍) 감소했다. 신혼부부 수는 관련 통계가 처음 작성된 2015년 이래 매년 5만∼8만쌍 줄어들었다.
이와 더불어 아이를 가진 부부도 줄고 있다. 초혼 신혼부부 중 자녀가 없는 비중은 46.4%로 전보다 0.6%포인트 높아져 이 또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신혼부부 통계는 지자체가 다양한 결혼 장려 및 저출산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여태껏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 역시 ‘일‧가정양립’, ‘가족 친화’ 정책을 오랫동안 추진하고 있으나 양육자가 체감하는 정책의 효능감이 대체로 높지 않은 편이다.
육아정책연구소 연구 발표(2021, 20~40대 남녀 1,000명 대상)에 따르면 육아를 힘들게 하는 부정적인 요소로 ‘육아 가족에 배려가 부족한 직장문화’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중 ‘직장 내 육아문화’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낮고(37.9점), 본인 또는 배우자의 직장이 어느 정도 육아친화적인지를 평가한 결과 평균 54.6점으로 낮은 수준이며, ‘직장 내 육아 편의시설’(17.2점)도 꽤 부정적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긍정적인 육아문화 조성을 위해 필요한 직장내 노력으로 ‘경영진의 인식개선’(39.6%)과 ‘육아 관련 지원제도의 확대’ (37.8%)가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분석 결과 육아 지원 제도는 있지만 사용은 쉽지 않고, 기업의 규모나 특성에 따라 제도 활용 격차가 크며, 직장 육아지원 제도의 도입과 사용은 경영진에 의해 좌우되니 결과적으로 기업의 능동적인 역할이 크다고 할수 있다.
지난해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자녀 양육 부담으로 발생하는 근무상 어려움을 근로자 개인이 전적으로 감당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는데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사업주의 의무를 명시적으로 처음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다.
기업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먼저 육아 휴직 기회, 유연 근로를 확대하여 육아 지원 직장문화 조성에 힘써야 한다.
기업은 단기적인 손실을 따지기 보다는 육아 지원 확대와 긍정적인 육아 문화 조성으로 인해 근로자의 근무역량 강화, 우수한 인력의 유치, 이직율 감소 등을 가져와 긍극적으로 기업에 이익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육아 친화적 경영 이념과 실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근로자의 육아휴직 시 대체인력 고용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의 ‘나는 솔로’ 시대는 ‘인구 소멸’ 시대이자 비수도권의 ‘지방 소멸’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자체의 단기 전략인 결혼 장려금 지급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보다는 지역 기업들이 협력하여 청년, 주거, 일자리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획을 수립 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 지자체가 육아 친화적 기업 우수사례를 발굴하여 홍보하고, 직장 내 육아 및 보육 시설 구축에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인구소멸 대응의 한 주체로 지역상공회의소, 기업, 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정책과 예산을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