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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Nov 07. 2021

다시 좋은 사진을 생각하다

갑작스러운 다리 수술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입 까다로운 누나를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해서 나왔습니다. 이 일도 한 5일 정도하다 보니 제가 남편인지 동생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따뜻한 밥 먹인다고 5일간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준비한 동생의 정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 짧은 누나는 생각만큼 많이 먹지는 않습니다. 이러는 게 오지랖이다 싶지만 병원 식사가 입에 아예 안 들어 간다고 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투덜거리면서 빈 그릇들을 챙겨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병원 건물을 돌아서니 하늘로 솟은 나무들이 정겹습니다.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사진을 찍으러 가고 싶어집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이런저런 일로 오랫동안 사진 다운(?)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생각하다 그냥 떠오른 영종도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단풍이 제철이라 가까운 인천대공원이라도 가면 가을이 가득 내려앉아 있을 텐데 혼자임을 즐기고 싶습니다. 보나 마나 가을이 가득한 곳에는 많은 사진가들이 넘쳐날 거라 스스로 합리화합니다. 

안개가 가득 다리 위를 넘나드는 나른한 인천대교를 건너 영종도로 향합니다. 오늘은 간간이 보이는 구름과 따스한 햇살이 기분 좋은 날입니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 북단으로 달려가서 '삼목선착장'에 도착합니다. 주말이라 많은 차들이 배를 타려고 줄지어 서있습니다. 긴 줄 끝에 차를 멈추고 매표소로 가서 승선표를 구입합니다. 열 체크를 하고 분홍색 종이팔찌(?)를 손목에 걸어줍니다. 바람도 적당히 선선하고 구름도 간간이 떠다니고 완연한 가을 소경입니다. 건너편 목적지인 '신도'가 보입니다.



꾸역꾸역 늘어 서있던 차들을 배에 구겨 넣은 후, 긴 고동을 울리며 배는 움직입니다. 10분의 짧은 항해지만, 배에 탄 사람들은 멀리 여행을 떠나는 듯 들뜬 모습입니다. 주차된 차들에서 나온 가족들과 연인들이 선상을 가득 메웁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으로 인생(?)을 날로 사는 갈매기들이 배를 따라옵니다. 해는 사진 촬영하기에 적당히 좋은 빛인 10시 반입니다. 

빛에 관한 글, 빛을 알려고 한다면 먼저 빛을 느껴 보세요_1

https://blog.naver.com/cch60/222301346834

빛에 관한 글, 빛을 알려고 한다면 먼저 빛을 느껴 보세요_2

https://blog.naver.com/cch60/222301011758



선상 한 쪽에 보기에도 무거운 카메라 가방과, 어깨에 카메라를 둘러멘 사람들이 보입니다. '신도나 시도에 뭐 찍을 게 있나?'라고 생각해 보지만, 제 처지도 같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옵니다. 이 짧은 가을의 화사함을 담기보다는 다른 것을 카메라에 담아보려는 사진가들인가 봅니다. 저 사람들은 황량한 신도에서 무엇을 촬영하려는 걸까? 갑자기 질문하고 싶어집니다. 

사진은 왜 찍는 걸까요? 직업적인 것이 아니라면, 예술적인 만족일까요? 아니면 개인적인 취미로서 하는 일들일까요? 개인적인 취미라면 우리는 어떤 이유로 사진을 이렇게도 열심히 찍는 걸까요? 어느 누구도 나보고 사진을 찍으라고 등을 떠밀지 않고, 오늘 이 사진을 꼭 찍어야 하는 이유도 없는데 말이죠. 사진을 찍어야 할 만큼 멋진 풍경과 상황이 내 주변에 넘쳐나서 일까요? 아님 내 안에 넘치는 예술혼이 밖으로 밀고 나오는 걸까요?



과연 그분들이 느끼는 좋은 사진은 무엇일까요? 그럼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사진은 무엇일까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사진의 메커니즘적인 요소를 제외한다면 좋은 사진이란 과연 어떤 것으로 결정되는 걸까요? 마음 단단히 먹고 배우면 '아무리 길어도 한 달'이면 가능한 카메라 사용법에 대해서 우리는 왜 그렇게 열을 올리는 걸까요?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가?

https://blog.naver.com/cch60/222321943998

쉽게 살아가는 갈매기들이 주변을 어지럽게 맴돌면서 먹을 것들을 요구합니다. 열심히 새우깡을 던져 주는 집사들이 보입니다. 날아드는 갈매기들에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참 여유롭고 한가한 풍경입니다. 



신도 선착장에 내려서 잠시 차를 멈추고 갯벌을 내려다봅니다. 바닷물이 찰랑거리고 있었으면 좋았겠는데 조금 아쉽긴 합니다. 선착장 도로 주변으로 건어물을 파는 좌판들이 보입니다. 다시 섬을 빠져나가려는 차들의 줄도 보입니다. 바다 쪽으로 다가가니 작은 고깃배들이 얇은 밧줄에 묶여 있습니다. 최대한 아래쪽으로 손을 내리고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꺼내놨던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고 아무런 생각 없이 도로를 따라 달립니다. 중간중간 나를 정리하듯 잠시 멈춰 서서 공간을 느껴봅니다. 어디론가 빠르게들 움직이는 차들과, 인천공항을 떠나 계속 날아오르는 커다란 비행기들이 어딘가 낯선 느낌입니다. 오래전 드라마 '풀하우스' 촬영지라는 '수기 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차를 세우고 해변 도로를 따라 걸어 봅니다. 바닷물이 빠진 갯벌에는 조개를 캐고 있는 사람들과, 장난을 치면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여유롭게 걷기에는 크나큰 돌들이 발걸음을 방해합니다. 조금 고인 바닷물에 가을 하늘이 내려앉습니다. 



해변도로를 걷다 전망대에 올라봅니다. 주변 다른 섬들이 보입니다. 안내 표지판에 구구절절이 설명이 있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전망대를 내려오다 보니 바닷가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중년의 커플도 보입니다. 얼핏 보기에 여자분이 참 열심히 이야기 중입니다. 의상은 역시, 들이나 산이나 바다나 상관없는 울긋불긋한 국민 등산복입니다.



처음 목적은 사진을 찍으려고 왔는데 지금은 사색이 목적인 듯합니다. 요즘 복잡했던 생각들과, 어머니의 소천으로 미뤄뒀던 많은 일들에 대한 처리 생각에, 여유로운 풍경과 달리 마음은 바빠집니다. 미뤄뒀던 많은 일들로 이번 주 내내 밤잠을 못 자고 바빴던지라 피곤함이 몰려옵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CU'에서 커피를 사들고 차에 오릅니다. 계속 무시하고 있었던 영상감독 전화를 받습니다. 월요일에 관공서에 들어가야 할 서류 문제로 빨리 오라는 독촉입니다. 현실은 현실이지... 하면서 영종도를 벗어납니다. 좋은 사진에 대한 고민도 잠시 미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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