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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Nov 14. 2021

느린 것들이 더 아름답다

낡고 오래된 것들은, 그 잔존가치를 높이 사서 보존을 하거나, 아니면 부서버리는게 일입니다. 레트로 열풍이니, 복고로 회귀니 하지만, 그런 것들은 미디어 세상이나 광고에서나 아름답지 실상은 낡고 오래된 것들에 지나지 않을 뿐이죠.



인천의 오래된 구도심이었던 우각로와 전도관 지역이 오랜 고통 끝에 재개발이 되나봅니다. 가는 곳곳 철거 통지와 무단침입에 대한 살벌한(?) 경고문이 붙어 있습니다. 저야 특별히 아쉬울 것이 없다지만, 그래도 간혹 생각을 정리하며 사진을 찍기에 좋은 장소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아쉽습니다. 새로운 아파트 단지를 꿈꾸며 철거를 앞두고 있는 이 곳을 한 번 둘러 보았습니다.


< 2014년 우각로(좌측)와 2021년 우각로(우측) >

청년 작가들이 구도심 골목을 살려보겠다고 밀물처럼 들어왔던 공간의 흔적입니다. 시에서도 의욕적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했지만, 과연 구도심에 남아있는 나이드신 분들을 대상으로 벽화나 문화운동, 영화상영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럽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7,80년대의 노동운동을 이은 또 다른 '계몽운동'이라 생각되었거든요(이건 철저히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더운 여름 날, 조그만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낡은 보일러를 고치던 어르신도, 생선을 손질하며 수줍게 미소짓던 아주머니들도, 뜨거운 빛에 고추를 말리시던 어르신도 이제는 모두 떠나고 빈 공간만이 남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낯선 사람을 향해 경계의 소리를 내던 강아지도, 확성기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던 야채트럭도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변한게 없는데 시간은 그 속내를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떠나게 하고 빈 집만을 남깁니다. 사람의 손이 탔던 공간들은 이제 그 빛을 잃어 스러져갑니다.


< 2014년 전도관에서 내려다 본 전경(좌측)과 2021년(우측) >


낡았다는 것, 오래됐다는 것이 꼭 사라져야할 것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네는 그 낡음을 견디지 못하고 낡음을 허물고 새로운 무언가를 꼭 세우려고 합니다. 그 모습대로 보존하려는 의지는 아예 없습니다. 인천의 어느 지역처럼 굳이 옛것을 똑같이 새로운 형태로 복원해서 전시(?)하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기억의 일부분이, 시간의 흐름이 소멸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거창한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을 말하지 않더라도, 보존가치가 잔존하는 것들은 살리는 것이 재생이라 생각합니다. 운전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높아진 건물들 사이로 올려 볼 수 있는 하늘의 폭이 좁아짐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간혹 한 번씩은 하늘을 올려다 보며 심호흡을 할 여유가 필요한데 말이죠.



구도심의 골목은 참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색빛 도시의 처연함이 주는 것과는 다른 색의 향연입니다. 그 오래전 도시빈민들을 품었었던 그 순간에도 그랬고, 이제는 역할을 다해 생(?)을 마감하는 이 시점에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오늘의 하늘은 더없이 푸르러 가슴에 서늘함을 더합니다. 천천히 걷다보니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공간들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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