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 작가 Dec 13. 2021

빛나는 것들만 보존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일에 지쳐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 갑자기 강원도 오지를 촬영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모든 일들을 뒤로 하고 무작정 새벽길을 달렸습니다. 라디에서는 흥겨운 팝송이 신나게 흐르고 고속도로는 한산 했습니다. 오랫만에 보는 강원도의 풍광이 내내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들더니 정선의 아리랑시장에 도착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정한 것이 없는 상태여서 아침이나 먹으면서 생각해 보자 합니다. 강원도 하면 '옹심이'가 생각나지만 오늘은 '올갱이(다슬기) 해장국'입니다.


카카오맵을 켜고 지도를 확인하니, 가장 가까운 곳이 병방치 스카이워크라고 한반도지형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을 거쳐 '화암동굴, 삼탄아트마인'을 가면 되겠다싶어 이동을 합니다. 병방치 스카이워크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오래 전 기억속의 그 장소였습니다. 사진을 처음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반도지형이 있는 강을 촬영하러 왔던 기억입니다. 그때는 정선이 아닌 영월쪽에서 올라왔는데, 산 입구에 차를 세우고 한 시간 이상을 등산해서 올라 왔었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산에서 한반도지형의 강을 찍겠다고 허리에 밧줄을 묶고 거꾸로 매달려서 사진을 찍었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 아마츄어였던 그때처럼 촬영하라면 할 수 있을까요?



병방치 스카이워크에서 거금 2천원을 주고 입장하니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10미터 남짓한 투명다리를 만들어 놓고서, 그것도 관리가 되지않아 밑은 보이지도 않고, 사람 키보다 높게 칸막이를 만들어서 한반도지형이 제대로 내려다 보이지도 않습니다. 빛도 좋지 않고 상황도 열악하다 보니 사진이 어쩔 수 없다고 혼자 합리화를 합니다. 더 볼 것이 없어서 스카이워크를 나와 옆으로 난 조그마한 산책로를 따라 걷습니다. 한 150미터 정도 가니 이곳에서 무료로(이게 중요함) 내려다보는 풍경이 더 멋집니다. 한반도지형도 더 잘 보이구요. 주변을 둘러보니 가슴도 시원해집니다.



병방치 스카이워크를 뒤로 하고 다음 가려했던 ‘화암동굴과 삼탄아트마인’으로 향합니다. 길을 따라 달려가다보니 ‘아라리촌’이라는 푯말이 보입니다. 발 닿는 대로 가고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라 핸들을 꺾습니다. 장터 쯤 되나 했더니 조선시대의 정선을 재현한 듯한 마을입니다. 흡사 민속촌 같기도 하고 요즘 흔히들 만드는 한옥마을 같기도 하고 해서 별다른 감흥은 없습니다.



이런저런 느낌없이 그저 아침 햇살을 즐깁니다. 늦가을 이른 아침의 갈색 햇살이 스산함을 더합니다. 옛 마을을 재현한 아라리촌에는 제대로인 빛입니다. 한 바퀴 주욱 돌아봅니다. 강물이 메말라 버린 평창강도 보입니다. 평창강을 보고 있으려니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놀러 왔다가 평창강에서 급류에 휩쓸려 죽다 살아난 기억도 떠오릅니다. 물에 취해서 이틀을 꼼짝 못했었는데 말이죠.



마을을 돌아 나오는데 입구에 양반 체험이라는 글이 보입니다. 뭔가 하고 보니 조선시대 양반 체험을 하고 양반 증서를 준다는 안내입니다. 저는 현재에도 존재하는 유교적인 비틀어진 양반들의 행태는 좋아하진 않지만 들어가 봅니다. 한자로 이름을 써드리니 ‘양반의 덕목’이 가득 쓰여진 ‘양반증서’를 정성스레 써주십니다. 감사히 받아 들고 카페에 들러 말차로 온기를 더합니다.


화암동굴은 일제강점기 때 금을 채굴해서 착취했던 금광입니다. 1922년부터 1945년 광복 까지였으니 참 오랜 시간동안 조선인들을 혹사시켰었던 현장이었죠(언제나 그렇지만 그런 일에는 꼭 같은 민족이 앞장을 섭니다). 급하게 떠나는 모노레일에 올라 화암동굴 입구에 다다릅니다. 동굴 입구에는 화암동굴의 역사부터 그 당시의 모습까지 구현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알아야 하는 이 금광의 진짜 목적과 착취의 역사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깊게 파내려 가서 작업을 했나 우울했던 기분이 천연 종유석들 즐비한 천연 동굴에 다다르자 좋아집니다. 역시 자연은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암동굴 끝부분에는 가족 여행객들을 위함인지, 뜬금없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들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관광에만 치중하고 역사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모습입니다. 땀을 식히며 천천히 내려와 ‘삼탄아트마인’으로 향합니다.



삼탄아트마인은 1964년부터 38년간 연탄을 채굴하던 ‘삼척탄좌’ 시설을 문화예술단지로 만든 곳입니다. 세계 150개국에서 수집한 10만 점이 넘는 각종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구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술품의 원주인인 바깥분이 타계한 이후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듯 합니다. 들어보니 정선군에 꾸준히 요청을 하지만 지원 또한 없구요.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 태백과 삼척에 비슷한 컨텐츠, 탄광 관련 관광시설이 있으니 메리트가 없다고 여길겁니다.


< 삼탄아트마인 전경과 아프리카 원시 유물을 전시한 아프리카 전시관 >

꼭 빛나는 것들만이 보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겁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나, 대한민국이 급속하게 성장하는 이면에서 소외되었던 많은 것들 또한 소중한 부분입니다. 삼척탄좌의 시설들이 그대로 존재하고, 그 시절을 살아오신 분들의 기록이 존재하며, 넓은 장소 안팎으로 가득한 각국의 예술품들이 있는 가치가 있는 곳인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든 시절을 견디며 가족을 먹여 살리고 대한민국을 지금으로 만들어 왔던 분들의 흔적이 가치 없다고 도외시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 당시 광부들의 급여장부와 근무일지,이력서 등(좌) /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는 공동목욕탕(우) >
< 지하 갱도로 내려가는 승강기와 광부들을 태우던 궤도차 >

아쉬운 공간 삼탄아트마인을 뒤로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도로라는 ‘만항재’를 잠시 들리니 강원도의 짧은 해가 넘어갑니다. 천천히 산을 내려와 숙소인 하이원 리조트로 향합니다. 오늘은 요즘 잘 마시지 않는 소주가 꽤나 들어갈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지난 가을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