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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Jun 19. 2022

사소한 것들의 기쁨, 느림의 미학

완연한 예상 실패입니다. 이동 노선(?)에 대한 예상을 하고 마지막 지점에 차를 가져다 놓은 것이 실수였습니다. ‘이 정도 거리라면’ 하고 짐짓 생각했던 것도 오류구요. 처음에는 아주 간단하게 시작된 촬영 계획이었습니다. 제가 카페에 올린 골목길 사진에 호응하시면서 인천 골목길을 오시고 싶다는 몇 분이 그 시작이었죠.

하늘이 변덕을 부려 내심 조마조마 했습니다. 먼 길을 오신 분들인데 비로인해 일정이 무산되면 안 되니까요. 이런 제 마음을 아는지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뿌리던 비가 멈춥니다.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하늘이지만 이 정도면 다행입니다. 먼저 오른 도원역 주차장에서 한참 공사 중인  우각로를 내려다봅니다. 이제 정말 인천 숭의동 109번지는 사라집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만남이라 그런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반갑습니다. 오랜 지인들처럼 자연스럽게 하하 호호합니다. 간단하게 인천 골목길 특성에 대해 말씀 드립니다. 일종의 ‘포토 스팟’이 아닌 사소한 것들이 널려있는 장소임을 말합니다. 말을 하는 중에도 ‘과연 오늘 이곳에서 원하는 것들을 얻어가는 시간들이 되실지’ 고민입니다. 간단하게 서로 소개를 하고 천천히 이동을 합니다.


도원역 주차장에서 내려와 배다리 방향으로 50미터를 걸어 내려왔을 때 깨달았습니다. 오랜 시간 사진으로 닦여진 내공들이 만만한 게 아니라는 것을요. 제가 미쳐 뭐라고 말씀 드릴 틈도 없이 바삐들 움직이십니다. 골목길에 널려 있는 사진 요소들을 찾아서 뿔뿔이 사라집니다. 

다시 모여서 잠깐 이야기하고 조금 이동하고 다시 사라집니다. 제가 그토록 오랜 시간을 다녔음에도 놓치고 있었던 여러 요소들을 잘 찾아내십니다. 이러면 제가 뭔 조언을 드려야할지 초조합니다. 100미터를 이동하는 데 30분 이상이 지나갑니다. 시간은 상관없습니다. 만족할 만 한 사진 요소들을 찾고, 원하는 결과물들을 얻는 다면요. 

제 이야기는 우리들 머리 위를 떠다니고, 모두는 구석구석 다니시느라 바쁩니다. 잠시 걱정이 됩니다. 이런 속도로는 원래 생각했던 마지막 지점까지는 오늘 가지 못하겠구나. 이동 경로를 단축시켜 시간을 맞춰 보려고 합니다. 이런 제 속내를 아셨는지 촬영하는 손들은 더 바빠집니다. 도무지 앞으로 나갈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얄팍한 제 지식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도원역에서 배다리까지 500미터를 내려오는 데 두 시간이 지납니다.

예상했던 경로는 이미 포기합니다. 사거리 신호등을 건너기 위해 잠시 멈춘 터에서 4번의 신호를 지나 보냅니다. 그럼에도 모든 분들은 아직 찍고 싶은 것들이 넘쳐납니다. 5번 째 신호에서 반강제로 길을 건너 소위 ‘개항로(저는 이 명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뒷골목으로 들어섭니다. 하늘은 흐려서 어두운 것이 아니라 시간이 6시가 가까워져 어두워집니다. 1킬로를 이동하는 데 거의 네 시간 가까이 걸린거죠.

개항로 뒷골목 여관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이동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구옥들이 카페, 레스토랑 등으로 바뀐 공간입니다. 여전히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을 담으시느라 여념들이 없으십니다. 동행들의 열정에 저도 다시 한 번 많은 것을 느낍니다. 골목골목 거주하시는 분들에게 피해가 될 까봐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봅니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에 선뜻 사람이 있어서 좋다고 반겨줍니다. 

골목에서 만난 사람들과, 골목에서 만난 꽃과 나무와 그리고 집들에게 말을 겁니다. 골목은 타지인인 저를 내치지 않고 온전히 품고 나아갑니다. 네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진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릅니다. 지칠 만도 하신데 다들 이상 없다는 표정들입니다. 여관 골목길을 지나 이길녀 원장의 ‘인천 길병원’ 본점을 지나 용동큰우물로 들어섭니다. 

이 분들은 제가 촬영해서 올렸던 사진 속 장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촬영할 때는 이른 일요일 아침이라 아무도 없었는데 지금은 대기줄이 보입니다. 촬영하고 싶은 마음에 앞을 서성이니 젊은 커플이 의자에서 일어납니다. 몇 번의 감사와 함께 정성스레 사진에 담습니다. 

다섯 시간이 지나 여섯 시간에 가까워지니 이제 약간 지쳐가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모진 저는 그것을 알면서도 중간에 끊을 수가 없어 제가 생각한 포인트까지 강행군을 합니다. 슬슬 앓는 소리가 나옵니다. 저도 마음이 급해집니다. 저녁 식사로 생각하던 식당까지는 1킬로 정도 남았는데 걱정입니다. 결국 가까운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것으로 결정합니다. 

6시간의 긴 촬영을 끝내고 자리에 앉으니 다들 땀이 비오듯합니다. 장비를 정리하고 따듯한 냉면 육수와 함께 수육 한 점을 입에 넣습니다. 길었던 짧은 거리가 저 멀리 달아납니다. 아쉬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 갔습니다. 저번 코칭(?) 받으셨던 빈센트님이 오늘 계셨으면 어땠을까 웃음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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