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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작가 Jun 19. 2022

피안의 어머니

‘여보세요’

‘어머니, 저에요’

‘누꼬?’

‘누구긴 누구에요, 막내아들이지’

역시 또 무뚝뚝하게 말이 나갑니다.

전화 걸기 전 다짐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수창이가?’

‘네, 식사 하셨어요?’

‘먹었따’

‘뭐하고 계세요?’

‘뭐하긴, 지금 TV 보고 있다, 왜 전화했네?’

‘전화를 왜 하긴요, 그냥 했죠’

‘아이고, 전화해줘서 고맙다’


자주 찾아뵙는 것도 아니고
전화를 자주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뭐가 그리 고맙다는 건지
항상 ‘전화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맙다는 말이 괜히 쑥스러워
재빠르게 말을 돌립니다. 

‘어디 아픈 데는 없으세요?’

‘왜 아픈 데가 없어, 어지러워서
일어나지도 몬한다’

‘어머니 연세가 있으셔서 그래요’


참 못난 아들입니다. 기껏 한다는 말이
‘연세가 있으셔서’라니.

좀 더 다정스럽게, ‘식사하시고 좀 누워 계시다 일어나세요’라든지 다른 말도 있는 데,
왜 꼭 이렇게 후회될 말을 할까요? 


‘수창아, 전화해줘서 고맙다’

‘고맙긴 뭐가 자꾸 고마워요, 어머니도 참...’

‘수창아, 항상 운전 조심하고 사람 조심하고’

‘알았어요’

막내아들이 더 이상 걱정할 나이를
지났는데도 어머니는 걱정이십니다. 

사람 좋아하고 잘 믿는 저를, 아린 손가락
같은 막내아들이 차 사고라도 날까,

걱정에 걱정 뿐 이십니다. 


‘식사하시고 약 좀 챙겨 드세요,
전화 또 드릴게요’

긴 시간도 아닙니다. 2-3분의 짧은 시간
통화도 서둘러 끊으려 합니다. 

‘그래, 전화해줘서 고맙다. 항상 운전
조심하고...’

어머니가 또 말씀하십니다. ‘전화해줘서
고맙다’고.어머니의 이어지는 걱정이 귀찮아 재빠르게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수화기 너머에 남으셨습니다. 

항상 말씀 드리고 싶었던 ‘어머니, 사랑해요’는 오늘도 하지 못했습니다.
전화를 끊을 때마다 후회로 남습니다. 


이 새벽 문득 글을 쓰다가 어머니 생각에
울컥합니다. 어머니의 걱정하시는 잔소리가
듣고 싶습니다.고맙다고 말씀하시는 목소리가 그립습니다.다시 한 번 어머니를
꼭 안아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오늘따라 더 보고싶습니다.


대전현충원 715묘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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