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마음먹고 떠난 촬영이었습니다. 오랜만의 외출을 시샘이라도 하듯 날씨는 계속 흐리기만 합니다. 여기저기 들리려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바다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빨간 등대로 잘 알려진 양양의 바닷가로 향합니다. 흐리던 날이, 기사문 해변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쨍합니다. 해변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과 파도가 밀려드는 바다 가까이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천천히 걸어서 빨간 등대가 보이는 방파제로 향합니다.
사진디자인에서 점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점은 우리의 시선과 관심을 끄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며, 점이 모여서 선이 되고 면이 됩니다. 사진에서 등대(숫자 1)와 갈매기(숫자 2)는 점입니다. 구도에서 가운데 피사체를 배치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 사진을 촬영할 때는 주변에 소재가 될 만 한 다른 요소들이 없어서, 주제인 등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 가운데 배치했습니다. 마침 등대의 빨간색과 파란 하늘이 색상대비를 이루고 있어서 더 좋았고, 프레임 중앙에 위치한 점은 정적인 느낌을 더욱 강조합니다. 이 정적인 느낌에 균형을 깨트리는 것이 바로 옆에서 날아가는 갈매기입니다. 문제는 전경 처리입니다. 등대만을 촬영하자니 너무 단조롭게 느껴집니다. 잠시 고민하다 방파제를 오버숄더 기법으로 촬영하기로 합니다(안개가 아니냐고 하시는데 안개가 아닙니다). 방파제를 전경으로 걸어주고 등대를 살짝 올려놓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큰 점인 등대에서 작은 점인 갈매로 이동했다가, 안개 같은 전경으로 시선이 이동한 다음, 다시 등대로 이동합니다. 관람자들의 시선은 프레임 안에서 계속 움직입니다. 사진의 목적은 관람자들의 시선을 오랫동안 내 사진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조리개 : f14 / 셔터스피드 : 1/320 / ISO : 100 / 측광방식 : 스팟측광 / 장소 : 양양 기사문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