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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수창 Jul 07. 2024

사유하는 사진, 히로시 스기모토

'극장' 시리즈로 잘 알려진 사진작가 히로시 스기모토(1948. 2. 23- )는 일본의 사진작가이며 건축가입니다. 도쿄의 릿교대학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그 후에 미국 LA 'Art Center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순수예술을 전공했습니다. 

스기모토는 당시에 미국에서 유행하던 미니멀리즘과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에 흥미를 가졌으며, 앙드레 브레통과 마르셀 뒤샹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기모토는 자신의 작업을 '노출된 시간'의 표현, 또는 시간 속의 일련의 사건을 위한 시간 캡슐 역할을 하는 사진이라고 말했습니다. 


히로시 스기모토의 작품은 사진매체의 본질적 특성인 시간성과 공간성에 대한 심오한 탐구를 보여줍니다. 그의 독특한 접근 방식은 단일 순간의 포착이라는 전통적 사진 개념을 초월하여, 장시간 노출을 통해 압축된 시간성을 시각화합니다. 

1976년에 발표된 《디오라마》와 《극장》시리즈는 빛, 시간, 공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드러내며, 사진매체의 존재론적 특성을 재고하게 합니다.

스기모토가 고집스럽게 사용하는 대형 포맷 카메라와 실버 젤라틴 프린트 기법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을 넘어, 그의 작품에 내재된 시간성 개념을 강화하는 미학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그의 사진에서 시간은 정태적 존재가 아닌 유동적이고 확장적인 개념으로 재해석되며, 이는 관람자로 하여금 이미지와의 능동적 상호작용을 유도합니다.


《밀랍 미술관》(1994) 시리즈는 시간의 비선형성을 탐구하며,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이는 롤랑 바르트가 언급한 사진의 '그것이-존재했음(ça-a-été)'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바다풍경》(1980) 시리즈는 서구 미니멀리즘의 형식적 순수성과 동양 선사상의 철학적 깊이를 융합시킨 걸작입니다. 화면을 이등분하는 수평선은 기하학적 추상성을 띠면서도, 자연에 대한 동양적 심미관을 반영합니다. 이는 존 버거가 주장한 '보는 방식(Ways of Seeing)'의 문화적 차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1997-) 시리즈에서 스기모토는 건축물의 물질성을 초월적 고요함으로 승화시킵니다. 이는 발터 벤야민이 논한 '아우라(Aura)'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기술복제 시대에 예술작품의 고유한 존재감을 재확립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2004년의 《개념적 형상》 시리즈는 순수 추상을 통해 유토피아적 비전을 제시합니다. 이는 모더니즘의 이상을 계승하면서도, 포스트모던 시대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줍니다.

스기모토의 작품 세계는 사진의 기술적, 형식적 한계를 초월하여 시간, 공간,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담론을 전개합니다. 그의 작업은 사진매체의 본질을 재정의하며, 동서양의 미학적 전통을 융합하는 독특한 시각 언어를 창조해냄으로써 현대 사진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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