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ulgar herd stroll through the rooms and pronounce the pictures 'nice' or 'splendid.' Those who could speak have said nothing, those who could hear have heard nothing. This condition of art is called "art for art's sake." This neglect of inner meanings, which is the life of colours, this vain squandering of artistic power is called "art for art's sake.
저속한 무리가 방을 거닐며 그림을 '멋지다' 또는 '훌륭하다'라고 발음(말)합니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 소리도 듣지 않습니다. 이러한 예술의 상태를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부릅니다. 색채의 생명인 내적 의미를 무시하고 예술적 힘을 헛되이 낭비하는 것을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합니다 – 칸딘스키
문 : 트렌드, 트렌드 하는데 제 사진이 꼭 그걸 따라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답 : 분명 그 시대에 주류인 것들은 있지만, 어느 시대든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예술적 경향은 존재합니다. 요즘 세계적인 트렌드가 스트릿포토나 추상사진 등이라고 해서 반드시 따라갈 필요는 없는 거죠. 그렇지만 다양한 사진과 트렌드에서 내가 배울 것이 있다면 배워서 내 사진에 접목시키면 됩니다.
문 : 저는 풍경사진이 좋고, 아름답고 예쁜 것들에 끌려서 사진을 하는 건데, 굳이 스트릿포토나 기하학적인 사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해서 올드한 사진이라 할 수 있나요?
답 : 당연히 아닌 것은 아시죠?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미적 충만함을 느끼는 부분이 다른데, 트렌드가 이거니까 ‘이 사진을 하지 않으면 안 돼 ‘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리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기하학과 사진디자인을 하는 것은 사진구도와 프레임의 결정, 더욱 매력적인 사진을 만들기 위한 것이지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몇 분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다 보니, 문득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오래된 명제가 떠오릅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은 19세기 프랑스에서 나온 용어로, 예술이 주제나 사회적, 정치적, 윤리적 중요성과 관계없이 고유한 가치를 갖는다는 생각을 말합니다. 즉, 예술은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가치와의 관계에 따라 평가되어서는 안 되며, 순전히 형식적이고 미적인 품질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소설가 테오필 고티에의 주장으로 작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개념입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 운동은 현대 예술계에서 여전히 중요한 논쟁거리로 남아있습니다. 이는 당시 예술이 종교, 국가 권력, 또는 도덕적 교훈을 전달하는 도구로 여겨지던 관행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술을 위한 예술'의 개념은 보다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해석됩니다. 현대적 맥락에서 이는 단순히 미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창의적 자유와 독창성을 옹호하는 철학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예술가들이 사회적 압력이나 시장의 요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비전을 추구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이야기할 때 마치 부적처럼 나오는 작가와 그림이 있습니다. 주로 영국에서 활동한 미국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제임스 맥닐 휘슬러(1834-1903)입니다.
<Nocturne in Black and Gold: The Falling Rocket, 1874, 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휘슬러의 ‘Nocturne(야상곡)’시리즈 마지막 그림인 ‘The Falling Rocket’이 예술을 위한 예술을 상징하는 부적처럼 일컬어집니다. 그림은 런던 크레몬 가든의 불꽃놀이를 묘사한 것입니다. 전경에 템즈강을 거니는 사람들이 희미하게 보이고 있지만, 캔버스 대부분은 로켓에서 떨어지는 금빛 불꽃과 폭죽에서 나오는 연기로 밝아진 검은 밤하늘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동시대의 예술 경향에서 벗어나, 몽환적인 색상과 추상적인 인물을 통해 표현의 정확성을 희생하고 분위기나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가의 자유를 강조하는 새로운 경향의 회화적 접근 방식을 보인 작품입니다(인상주의와 상징주의, 일본 미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술은 모든 허튼소리에서 독립되어야 합니다. 즉, 홀로 서 있어야 하며, 헌신, 연민, 사랑, 애국심 등과 같이 완전히 이질적인 감정과 혼동하지 않고, 눈이나 귀의 예술적 감각에 어필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술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래서 저는 제 작품을 "편곡"과 "화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고집합니다 – 휘슬러’
유명한 비평가인 존 러스킨이 이 그림을 ‘쓸모없고 제대로 제작되지 않았다’고 공격하자, 휘슬러는 그를 고소합니다. 오랜 분쟁 끝에 휘슬러가 승소했지만, 엄청난 법적 비용에 휘슬러는 파산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법정에서 했던 휘슬러의 변호는 ‘모더니즘의 발전에 중요한 사회, 정치 또는 도덕의 모든 관습에서 분리된 완전한 해방된 예술의 원칙’을 확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습니다. 휘슬러가 그림을 ‘빛, 형태, 색상의 배열’로 묘사했는데, 이 말이 20세기 중반 추상 표현주의의 움직임을 예측한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 사진 예술에서 이러한 '예술을 위한 예술' 접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는 기존의 틀을 벗어난 실험적 작업을 가능케 하며,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개발하는 데 기여합니다. 예를 들어, 안드레아스 거스키, 신디 셔먼, 볼프강 틸만스와 같은 현대 사진작가들은 대중의 기대나 상업적 성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추구합니다.
거스키의 대형 파노라마 사진은 현대 도시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셔먼의 자화상 시리즈는 정체성과 젠더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도전합니다. 틸만스의 일상적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은 평범함 속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합니다. 이들의 작품은 때로 난해하거나 도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진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예술의 사회적 책임과 소통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예술은 단순히 자기만족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고, 관람자와의 깊이 있는 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는 글의 시작에서 인용한 칸딘스키가 지적한 '내적 의미'의 중요성과도 연결됩니다. 예술 작품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을 넘어, 인간의 경험과 감정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해야 합니다.
현대 예술계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의 개념은 또한 예술의 상품화와 시장 논리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상업적 성공이나 대중의 인기보다는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추구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는 때로 재정적 어려움이나 대중의 이해 부족을 초래할 수 있지만, 동시에 예술의 진정성과 혁신을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예술을 위한 예술' 개념은 새로운 차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은 예술가들에게 전례 없는 창작의 자유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예술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제기합니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구름’ 시리즈 : 일상적인 대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해서 순수한 형태와 톤의 아름다움을 강조
만 레이의 ‘레이요그램’ : 카메라 없이 감광지 위에 물체를 올려놓고 빛에 노출시켜서 만든 추상적 이미지를 통해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줌
애런 시스킨드의 추상표현주의적 사진 : 일상적인 사물의 세부를 클로즈업해서 추상적 형태로 변형 시킴
히로시 스키모토의 ‘극장’ 시리즈 : 영화 상영 전체 시간 동안 셔터를 열어둔 장노출 기법으로 영화관 내부를 촬영. 시간의 흐름을 한 장의 이미지로 압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