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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 수창 Nov 14. 2024

거대한 뿌리_김수영

책을 읽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싯구절이 있습니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전문이 생각나지 않아서 검색을 해봅니다. 김수영 시인의 '거대한 뿌리'입니다(마지막에 시 해석이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앉는다. 나는 어느새 南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以北 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八·一五 후에 김병욱이란 詩人은 두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四年 동안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强者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女史와 연애하고 있다.그녀는

一八九三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英國王立地學協會會員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世界로

화하는 劇的인 서울을 보았다.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無斷通行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外國人의 종놈, 官吏들 뿐이었다. 그리고

深夜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闊步하고 나선다고 이런 奇異한 慣習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天下를 호령하던 閔妃는 한번도 장안外出을 하지 못했다고......


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傳統이라도 좋다 나는 光化門

네거리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埋立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女史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歷史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追憶이

있는 한 人間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女史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는 進步主義者와

社會主義者는 네에미 씹이다. 統一도 中立도 개좆이다

隱密도 深奧도 學究도 體面도 因習도 治安局

으로 가라. 東洋拓殖會社, 日本領事館, 大韓民國官吏

이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種苗商,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無識쟁이,

이 無數한 反動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 第三人道橋의 물 속에 박은 鐵筋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怪奇映畵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想像을 못하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김수영은 일제 강점기인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국근대문학 시인입니다. 머리는 좋았지만 병약했던 그는 중학입시에 실패하고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영어와 일어에 능통했던 그는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려 했지만, 학업을 포기하고 연극에 몰두합니다.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던 1943년 일본의 강제징집이 치열해지자, 학병 징집을 피해서 만주 지린성으로 이주했다가 해방 후에 귀국합니다. 처음에는 연극으로 생활을 영위했으나, 경제적인 문제로 1946년부터 문학으로 전향합니다. 1946년 예술부락에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한 후, 김경린, 박인환 등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표합니다. 


6.25때 북한군에 의용군으로 징집되었다가 탈출했으나 거제 포로수용소에 3년간 갇혀있기도 하는 등의 고초를 겪습니다.1958년 제 1회 한국시인협회상을 받습니다. 김수영이 시대와 예술가, 혹은 지식인의 참여라는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고 나름의 활동을 하게 된 것은 4.19 혁명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1960년대로 접어들어서도 김수영은 여전히 양계와 번역료로 생활하면서 버젓한 직장을 가지지 않았으며, 시·시론·시평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후진성과 허위 의식을 비판하고 진정한 참여를 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성격의 글들을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김수영의 자조적인 성향과 특유의 강렬한 시적 표현은 결과론적으로 독특한 시 세계를 형성하였고, 수능 국어 문제출제 단골이 되는 계기가 됩니다.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김수영 시인은 1968년 6월 15일 술자리 후 귀가하던 중에 어두운 길에서 버스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시인 신동엽은 '지맥 속의 분수'라는 조사에서 '어두운 시대의 증인을 잃었다'라고 했습니다.


김수영 시의 특징은,

비판적이고 철학적인 시를 통해 당 시대의 상황을 표현했으며, 지금까지 없던 세계가 펼쳐지는 충격을 주는 시를 추구했습니다. 김수영 스스로는 자신의 시어가 평범하다고 했지만, 그의 시들을 보면 매우 진보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칠고 힘찬 어조의 시 세계 속에 담아 낸 '소시민적 자아에 대한 가차 없는 자기 폭로', '후진적 정치 문화에 대한 질타', '빈정거림이나 맹렬한 비판' 등은 전통적인 시와는 그 결을 달리합니다. 김수영의 시에는 한자와 영어, 일어가 동시에 등장하고, 문어와 거체가 구별 없이 사용되며, 관념어와 구체어가 섞여 있습니다. 이것은 일체의 정립된 언어와 고정된 언어가 하나의 지배적인 언어로 귀속되려는 언어에 대한 경계입니다.


초기 시는 모더니즘 경향을 보였으나, 점차 그 한계를 벗어났고, 4.19 혁명을 기점으로 강렬한 현실 의식을 추구하는 쪽으로 전환합니다. 자기 고백의 직설적인 어조로 '소시민의 자기 각성, 지식인의 정직한 고뇌, 자유가 억압된 현실에 대한 항의'를 다루며 온몸의 시학을 주창했습니다. 김수영 시인의 몇 몇 대표적인 작품들로 이 밤을 정리합니다. 


폭포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폭포」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푸른 하늘을」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의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 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뭇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난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눈」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詩(시)와는 反逆(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山頂(산정)에 서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우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간과 마루 한간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妻(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詩(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裸體(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詩人(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죽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反逆(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구름의 파수병」



거대한 뿌리 해설_블로그 시의 눈


김수영에게 있어서 육체가 인간의 한계상황이며 벽이라면 현실 역시 한계상황이며 벽이다. 인간은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이며 세계를 벗어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현실 역시 인간조건인 셈이며 인간의 개인적 완성이란 완전한 세계의 구현과 맞물려 있다.


김수영에게 있어서 현실은 죽음의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로 이해된다. 벽으로서의 세계는 인간에게 죽음과 공포, 불안을 야기키며 동시에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지향을 일깨운다.


자아의 혁명이 육체적 인간조건을 무시하거나 초월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영원히 자신을 고쳐 나감으로써, 또는 죽음 위에 죽음을 거듭함으로써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김수영에게 있어서 정치적 혁명은 현실을 초월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한계상황으로서의 현실이라는 벽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극복해 나감으로써 가능한 것으로 이해된다.<거대한 뿌리>는 완전한 사회의 구현이 정직한 현실인식, 즉 한계상황으로서의 벽에 대한 정직한 인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김수영의 혁명관을 잘 보여주는 시이다.


<거대한 뿌리>는 사람들의 앉는 방식의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이북식, 남쪽식, 일본식 등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앉음새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지방색이나 정치색, 그리고 생활 경험을 반영한다. 이 시의 화자는 이런 앉음새의 다양성 속에서 자신만의 앉는 자세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앉는 방법을 바꾸는 혼란을 겪게 된다.


이어서 시인은 구한말 조선을 방문했던 영국 왕립지학협회회원 비숍여사가 기록한 한국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비숍여사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은 민주주의 영국에서는 볼 수 없는 기이한, 봉건적 관습을 가진 나라이다. 그녀는 이렇게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인은 이 기록을 보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긍정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 우리의 역사나 전통은 영국의 그것과는 다른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국인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이고 기이한 관습이지만 그것은 실제로 우리의 관습이며 전통이다. 우리가 그 역사와 전통이 부끄럽고 수치스럽다고 부정하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은 그러한 역사와 전통의 존재를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데서 나온다. 여기서 김수영은 “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傳統이라도 좋다.....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歷史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追憶이 있는 한 人間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라는 역사와 전통에 대한 긍정이 폭포처럼 이어진다.


물론 김수영이 더러운 역사와 전통을 그 자체로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와 사회의 발전은 지금까지 우리 역사와 전통에 대한 정직한 인식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그것의 존재를 부정하고 환상적으로 초월하려는 태도나 현실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긍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을 정직하게 인식하지 않고 외국의 진보적인 이념을 우리 사회에 그대로 이식하려는 태도는 자기기만에 불과하며 앉음새의 불안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앉는 자세를 고치게 하듯이 문화적 혼란과 불안은 방황을 계속하게 할뿐이다. 뿌리가 없는 곳에서는 이른 바 진실도 없고 혼란만 가중 될 뿐인 것이다. 놋주발보다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을 때 그 위에서 문화가 싹트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사랑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전통과 역사에 대한 부정의 결과인 진보주의와 사회주의는 철저하게 부정된다. 진보주의와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세계는 근사하고 훌륭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그것들을 나오게 만든 나름의 역사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60년대 한국적 현실에서 지향되어야 할 것은 우리 현실에 대한 정직한 인식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바꿔 나갈 정치이념을 창출해내는 것이지 우리의 전통과 정서, 역사적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외국의 정치제도를 이식함으로써 가능한 것은 아니다. 외국 현실에 근거한 급진주의나 극단적인 진보주의는 우리의 현실을 더욱 혼란되게 할 뿐이다. 역시 마찬가지로 역사와 현실에 대한 정직한 인식과 애정이 없는 환상적인 통일 논의나 중립안은 헛된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더구나 심오, 은밀, 학구, 체면 등 현실도피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생각들은 말할 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친일, 친미적인 흐름과 봉건적인 대한민국 관리도 부정된다. 


김수영은 이러한 반전통적인 것들에 대해 철저한 비판적 자세를 취하고 요강, 망건, 장죽 등 무수한 반동에 대한 긍정과 호의를 보여준다. 이러한 전통에 대한 긍정은 맹목적인 전통 추수나 국수주의적인 태도와는 다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구속하는 벽으로서의 우리의 역사적 전통과 현실에 대한 정직한 인식과 그것을 토대로 한 혁명만이 이 땅에 뿌리박을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신념에 근거한 것이다.


김수영에게 있어서 완전한 자아에 이르는 자아혁명이 상대적이고 영원히 고쳐 나가는 행위를 통해 가능하다고 했던 것처럼 완전한 사회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혁명 역시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4·19 직후 씌어진 일기에서 “혁명은 상대적 완전을 그러나 시는 절대적 완전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고 있는 데 이는 시가 내용 형식이 하나로 일치되는 완전한 혁명을 수행하는 데 비해 정치적 혁명은 완전한 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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