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빛이 가득한 날도 좋지만, 이런 흐린 날은 흐린대로 좋습니다. 직사광선이 만드는 강렬한 명암 대비 대신, 구름이 거대한 소프트박스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죠.
오랫만에 리움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건축물 자체가 만드는 기하학적 형태들입니다. 마리오 보타의 건축 언어가 완전히 다른 언어로 시선에 들어옵니다. 직선과 곡선,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시각적 리듬이 렌즈를 통해서 새로운 의미로 번역되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하얀 벽면이 만드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여러 사람들이 들이대는 카메라가 보입니다. 그 순간 포착한 것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현대적인 삶의 기호학적 메시지입니다.
기하학적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의 방향성입니다. 이 사진에서 수직의 패턴과 대비되는 곡선에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시각적 균형을 달성합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과 동시에 아래에 나타난 무지개 빛이 화면에 역동성을 부여합니다.
리움 촬영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건축 사진에서 인간적 요소의 중요성'입니다. 순수한 건축 형태로도 감정적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지만,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해지면 서사가 생깁니다. 사진 속 인물들이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들이대는 행위는 현대인의 소통 방식에 대한 메타포가 되었고, 이것이 미술관이라는 문화적 공간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합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다른 접근입니다. 어둠 속에서 V자 형태의 빛을 포착한 순간입니다. 기하학적 형태가 단순하게 형식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감정적 울림을 만들 수도 있는 지점입니다.
이 사진에서 주목할 점은 빛의 질감입니다. 단순한 명암 대비가 아니라 빛 자체가 조각적 형태를 갖게 되었습니다. 약한 빛에서 어떻게 계조와 질감을 살려야할지 고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