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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언어로 말하기_사진 기호학

by 채 수창


‘요즘 고민이 있어요. 제가 찍은 사진을 보고 사람들이 무엇을 찍었는지 이해를 못하거나,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을 때가 있거든요. 제 의도와는 완전히 동떨어지게 말이죠.‘


’그 고민,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 그게 사진의 본질이기도 하죠.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의도한 메시지를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사진 기호학이 바로 그 열쇠가 될 수 있어요.‘


’사진 기호학이요? 그게 실제 촬영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 건가요?‘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과 한 개를 찍었다고 가정해 보세요. 사진 속 사과는 두 가지 차원의 의미를 동시에 갖게 됩니다.


첫 번째는 외시, 즉 '이것은 사과다'라는 직접적이고 객관적인 의미입니다. 누가 봐도 사과죠. 이것이 1차적 의미입니다.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많은 사진가들이 이 당연한 것을 간과합니다.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려면 가장 먼저 이 외시적 의미가 혼란 없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초점이 흐릿하거나 프레이밍이 애매하면 관객은 '이게 뭐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두 번째가 공시인데, 이게 진짜 중요한 지점입니다. 같은 사과 사진이 어떤 사람에게는 '유혹'을, 다른 사람에게는 '건강'을, 또 다른 사람에게는 '죄'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원죄와 선악과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되는데, 이것이 바로 문화적 코드입니다. 서양 기독교 문화권에서 사과는 원죄와 연결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건강이나 선물 같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략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보편적 공시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관람자들이 공유하는 문화적 코드를 이용하는 것이죠.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으로 쓰는 것처럼. 흰색 드레스는 순수함을, 빨간색은 열정이나 위험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런 보편적 코드를 활용하면 대다수의 관람자가 당신의 의도를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공시의 전복입니다. 기존 의미를 비틀어버리는 것이죠. 더럽고 병든 비둘기를 보여주면 어떻게 될까요? 관람자들은 비둘기가 상징하는 '평화'라는 관습적 의미와 눈앞의 비참한 현실 사이에서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 긴장감이 바로 당신의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기대를 배신하는 것, 그게 비판적 사진의 힘입니다.


사진을 읽는다는 건 마치 언어의 문법처럼 여러 개의 코드를 동시에 해독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이 코드들을 의식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인물을 촬영할 때 로우 앵글을 선택하면 피사체가 웅장하고 강력해 보입니다. 우리의 시각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권위'나 '힘'을 전달합니다. 반대로 하이 앵글은 피사체를 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게 만듭니다. 원근법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면 낯선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지각적 코드라고 합니다.


그다음은 인상학적 코드입니다. 인물의 표정과 제스처를 통해 감정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다면 결정적 순간에 포착된 표정 하나가 천 마디 말보다 강력할 수 있습니다. 연출 사진에서는 디렉팅이 중요해집니다. 모델에게 단순히 '슬픈 표정 지어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슬픔의 구체적인 단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상실의 슬픔인가, 후회의 슬픔인가, 체념의 슬픔인가? 눈빛만으로도, 입꼬리의 미세한 각도만으로도 전혀 다른 감정이 전달됩니다.


도상적 코드는 특정 대상이나 개념을 상징하는 시각적 기호들입니다. 법정 사진에서 저울은 '정의'와 '공정성'을 상징합니다. 깨진 거울은 불행이나 파국을, 열쇠는 해답이나 자유를, 시계는 시간의 흐름이나 죽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징물들을 사진 안에 전략적으로 배치하면 추상적인 메시지를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단, 너무 진부한 상징은 피해야 합니다. 해골로 죽음을 표현하는 건 누구나 하는 방법이니까 말이죠.


미학적·양식적 코드도 중요합니다. 거친 입자, 높은 콘트라스트의 흑백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이나 필름 누아르의 양식적 코드를 따릅니다. 이것은 '진실성', '어두운 분위기', '과거'와 같은 의미를 환기시킵니다.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감과 소프트 포커스는 몽환적이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듭니다. 당신의 작업이 어떤 맥락 속에서 읽히기를 원하는지 양식으로 암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략은 명확합니다. 코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죠. 어둡고 진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면 로우키 조명, 무거운 색감, 진지한 표정 등을 일관되게 사용해야 합니다. 의미의 혼란을 줄이고 메시지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코드의 충돌을 의도적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즐거운 표정의 아이를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공간에 배치하면 어떻게 될까요? 인상학적 코드와 도상적 코드가 충돌하면서 아이러니와 긴장감이 형성되어 비극성이 극대화됩니다. 이런 불협화음이 때로는 더 강력한 메시지를 만들어냅니다.


사진 한 장은 수많은 선택과 조합의 결과물입니다. 기호학에서는 이것을 계열체와 통합체로 설명합니다.


계열체는 당신이 특정 순간에 선택할 수 있었던 모든 가능한 요소들의 집합입니다. 렌즈를 선택할 때 광각, 표준, 망원 렌즈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조명을 선택할 때 자연광, 인공광, 부드러운 빛, 강한 빛 중 하나를 고르는 것, 그리고 무엇을 찍을지, 무엇을 찍지 않을지, 어떤 앵글, 어떤 렌즈, 어떤 조명을 사용할지에 대한 모든 선택은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고 특정 의미를 강조하는 행위입니다.


만약 도시의 고독을 표현하는 데, 붐비는 거리는 망원 렌즈를 선택해서 배경을 압축시키고 군중 속 한 사람을 부각시킬 수도 있고, 광각 렌즈로 넓은 공간 속에 작게 고립된 인물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두 선택 모두 '고독'을 표현 하지만 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전자는 군중 속의 고독을, 후자는 공간의 고독을 말하는 것입니다.


통합체는 그렇게 선택된 요소들이 사진이라는 하나의 평면 안에서 어떻게 조합되고 배열되는가의 문제입니다. 프레임 안에서 피사체의 위치, 크기,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가 통합체를 구성합니다. 한 인물을 프레임 중앙에 크게 배치하는 것과 구석에 작게 배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생성합니다. 중앙 배치는 중요성과 안정감을, 구석 배치는 소외나 불안정을 암시합니다.


사진은 종종 캡션, 제목, 본문과 같은 텍스트와 함께 제시됩니다.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가 이미지의 의미를 통제하는 두 가지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는 앵커리지, 즉 정박입니다. 텍스트가 이미지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제한하고, 사진가가 의도한 특정 의미에 닻을 내리도록 하는 기능입니다. 이미지는 여러 공시적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텍스트는 관람자가 헤매지 않도록 의미의 방향을 명확하게 고정시켜 줍니다.


불안한 표정의 아이 사진을 생각해 보세요. 그 사진에 어떤 캡션을 붙이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실종 아동’이라고 쓰면 사회적 비극이 되고, ‘첫 등교’라고 쓰면 성장의 순간이 되고, ‘난민 캠프에서’라고 쓰면 전쟁의 참상이 됩니다. 같은 사진인데 텍스트가 의미를 고정시키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전략은 메시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고 오해의 소지를 줄이고 싶을 때 유용합니다. 특히 다큐멘터리나 포토저널리즘에서 명료한 캡션은 필수입니다. 예술사진에서도 제목을 통해 의도를 명확히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릴레이, 계주인데, 계주는 다른 방식입니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서로의 부족한 정보를 보완하며 함께 새로운 이야기나 의미를 만들어가는 관계입니다. 텍스트와 이미지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으며, 마치 계주 선수처럼 의미를 이어 나갑니다.


만화 한 컷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있고, 말풍선에 ‘다시는 안 올 거야’라고 쓰여 있습니다. 다음 컷에는 빈 방이 있고, ‘그는 약속을 지켰다’라는 캡션이 있습니다. 이미지 하나만으로는, 텍스트 하나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가, 둘이 함께하면 완성됩니다.


포토 에세이나 사진집에서 이 방식을 적극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자체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복잡한 내러티브나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싶을 때, 텍스트와 이미지가 상호작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텍스트가 이미지를 단순히 설명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차원을 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결국 이 모든 코드와 전략을 완벽하게 통제해야 좋은 사진이 나오는 건가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고 싶다면 코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슬픔을 표현하고 싶은데 밝고 경쾌한 색감을 쓰면 혼란스럽죠. 하지만 사진은 수학 공식이 아닙니다. 때로는 의도적인 모순, 계산된 불협화음이 더 강력한 메시지를 만듭니다.


전쟁 사진가 제임스 나흐트웨이의 작업을 보면, 끔찍한 현실을 놀랍도록 아름다운 구도와 빛으로 담아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비판하지만, 바로 그 아름다움과 비극의 충돌이 우리를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빛이 이렇게 끔찍한 현실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마틴 파의 작업은 평범한 일상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출합니다. 일상의 코드와 영화의 코드가 만나면서, 우리의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드라마틱한지, 혹은 반대로 영화적 판타지가 얼마나 공허한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미학적 코드의 충돌입니다.

중요한 건 의도성입니다. 코드를 일관되게 사용하든 충돌시키든, 그게 의도적이고 통제된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연히 뭔가 어긋난 것과, 의도적으로 어긋나게 만든 것은 결과물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럼 실제로 촬영에 들어갈 때 어떻게 하면 되냐고요?

먼저 당신의 메시지를 명확히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사진'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고 싶은 사진'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현대인의 고독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싶다’ 같은 식으로 말이죠.


그다음 그 메시지에 맞는 코드들을 선택합니다.


촬영 전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외시 : 무엇을 찍을 것인가? 그것이 명확하게 인식되는가?

공시 : 이 피사체가 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내가 원하는 의미와 일치하는가?

지각적 코드 : 어떤 앵글, 어떤 렌즈, 어떤 조명을 쓸 것인가?

도상적 코드 : 상징적 요소를 배치할 것인가? 진부하지 않은가?

통합체 : 프레임 안에서 요소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그리고 촬영 후에는 비평적 거리를 두고 자신의 작업을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내가 의도한 메시지가 정말 전달되는가?

다른 사람은 이 사진을 어떻게 읽을까?

불필요한 요소가 메시지를 방해하지는 않는가?


마지막으로 텍스트의 활용을 고민해야 합니다. 제목과 캡션은 사진을 완성하는 마지막 도구입니다. 의미를 고정시킬 것인가, 열어둘 것인가? 둘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명확한 메시지 전달이 중요하다면 앵커리지를, 관객의 능동적 해석을 원한다면 최소한의 텍스트를,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릴레이를 활용하세요.


결국 사진가는 단순히 현실을 기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의미의 생산자입니다. 카메라 앞의 현실을 선택하고, 배치하고, 포착하고, 제시하는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기호학은 그 과정을 좀 더 의식적이고 정교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촬영 순간에 완벽하게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직관도 중요하고, 우연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기호학적 원리들을 알고 있으면, 직관이 더 날카로워지고, 우연을 알아보는 눈이 더 예리해집니다.


사진가로서 우리는 두 가지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세상을 예민하게 관찰하는 시인이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미를 정교하게 구축하는 건축가여야 합니다. 기호학은 후자의 역할을 위한 설계도입니다.


그럼 다음과 같은 질문이 당연히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모든 걸 알면 사진이 더 어려워지는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하지만 계속 연습하다 보면 이런 것들이 제2의 본능이 됩니다. 마치 언어를 배울 때처럼. 처음엔 문법을 의식하지만, 능숙해지면 자연스럽게 말하게 되는 것처럼. 기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면 알수록 당신의 목소리는 더 명료해지고, 더 힘있게 관람자에게 닿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지식은 당신을 자유롭게 만듭니다. 규칙을 알아야 규칙을 깰 수 있고, 코드를 이해해야 코드를 전복시킬 수 있습니다. 진정한 창의성은 무지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깊은 이해 위에서 꽃이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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