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 사진의 의미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사진 기호학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그럼 사진 기호학을 공부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면 공부하는 단계가 있을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기호학이라는 단어를 듣고 바로 소쉬르나 롤랑 바르트의 책을 펼칩니다. 하지만 그건 마치 피아노 건반을 처음 만진 사람에게 쇼팽의 악보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기호학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 전에 갖춰야 할 기초가 있거든요. 제가 자주 말씀드렸지만, 기술적인 숙련도는 완성되어 있으니까 그 다음에는 사진 디자인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기호학을 실제로 활용하기 위한 기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처음 배울 때 기술적인 부분에 집중합니다. 노출, 초점, 화이트 밸런스 등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없습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대상을 찍어도 어떤 사진은 평범하고 어떤 사진은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유, 그건 바로 사진 디자인 능력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디자인은 사진가가 자신의 의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프레임 안의 모든 요소를 의식적으로 배열하고 구성하는 행위입니다. 마치 작가가 단어를 배열해 문장을 만들고, 문장을 엮어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것처럼 말이죠. 사진가에게 카메라는 펜이고, 세상의 시각 요소들은 단어이며, 사진 디자인은 그 단어들을 엮는 문법인 셈입니다.
"그럼 구도 같은 걸 말하는 건가요?"라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구도도 포함되지만 그보다 훨씬 넓은 개념입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조형적 관찰과 추상적 관찰이라는 두 가지 관찰 방식을 통해 길러집니다. 이 둘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사진은 힘을 갖게 됩니다. 이 두 관찰이 익숙해져 사진 디자인이 완성된 후에야, 기호학이 의미 있는 도구가 됩니다.
조형적 관찰은 우리가 눈앞의 대상을 '무엇'인지로 인지하기 이전에, 순수한 시각적 요소의 집합으로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지금 이 시각 창밖을 보면 가로등이 켜진 저녁 거리가 보입니다. 우리는 보통 '가로등이 켜진 거리, 사람들이 걸어가고, 차들이 지나가는' 풍경으로 인식합니다.
하지만 조형적 관찰에서는 다르게 봐야 합니다. '가로등'이나 '사람'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오직 점, 선, 면, 빛, 그림자만 보는 것이죠. 어두운 배경을 가로지르는 빛줄기들, 동그란 광원들, 유리에 반사된 빛의 얼룩들, 이것이 바로 조형적 관찰입니다.
조형적 관찰은 눈앞의 풍경을 요소화하는 훈련입니다. 점, 선, 면, 형태, 질감, 패턴, 색, 빛과 그림자 같은 기본 조형 요소로 분해해서 보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렵습니다. 우리의 뇌는 평생 동안 '사물'을 인식하도록 훈련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사진은 3차원 세계를 2차원 평면으로 옮기는 작업입니다(물론 그 2차원을 어떻게해야 3차원으로 보이게할까라는 문제도 발생하지만). 그 과정에서 깊이, 촉감, 소리, 냄새가 모두 사라지고 남는 건 오직 시각적 요소들뿐입니다. 그 순간 사진가는 바로 그 시각적 요소들로 모든 것, 즉 대상의 본질이나 감정, 이야기 등을 말해야 합니다.
조형적 관찰이 사진의 '어떻게'를 다룬다면, 추상적 관찰은 '무엇을'과 '왜'를 결정합니다. 추상적 관찰은 대상의 외형을 넘어 그 안에 담긴 내재적 의미, 감정, 분위기, 상징을 읽어내는 능력으로 대상의 본질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녹슬고 페인트가 벗겨진,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오래된 철문 하나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철문을 보면 무엇이 먼저 느껴지나요? 낡은 문, 오래된 문 그게 외형(외시적 의미)입니다. 그러면 이 녹과 벗겨진 페인트, 깊게 파인 흠집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지나간 시간의 흔적입니다. 비바람을 다 맞으면서도 여전히 서 있으면서 오랜 시간 무언가를 견뎌낸 느낌, 바로 그것입니다. '오래된 문'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넘어, '시간의 흔적', '견고함과 부식의 공존', '세월의 상처'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읽어내는 것이 추상적 관찰입니다.
사진으로 나타내기 힘든 '시간의 흐름과 덧없음'의 추상적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해보세요.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진다는 감각, 찰나와 영원 사이의 긴장감, 이제 이 추상적 감정을 조형적 언어로 번역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두 가지 시간성을 하나의 프레임에 담는 것입니다. 거친 질감과 불규칙한 패턴을 가진 낡고 벗겨진 벽 앞에 싱싱한 꽃이나 어린 나뭇가지를 배치합니다. 노화와 생명의 대비, 병치입니다. 느린 셔터 스피드로 흐르는 물이나 구름을 촬영해서 움직임을 흐릿하게 만들고, 움직이는 것과 정지된 것의 병치를 위해 앞에 멈춘 대상을 둡니다. 색감은 오래된 사진 느낌이나 시간이 지나간 흔적을 시각화하기 위해서 세피아 톤이나 바랜 색감을 사용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추상적 관찰로 '무엇을 말할지'를 발견하고, 조형적 관찰로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줄지'를 결정하는 것 말이죠.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사진은 불완전합니다. 추상적 관찰만 있고 조형적 능력이 없으면, 마치 할 말은 많은데 언어를 모르는 것처럼 머릿속에는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지만 그걸 시각적으로 구현하지 못합니다. 조형적 능력만 있고 추상적 사고가 없으면,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만 영혼이 없는 사진이 나옵니다. 아름답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진은 그냥 예쁜 그림일 뿐입니다.
조형적 요소를 자유롭게 다루고, 추상적 의미를 발견하고, 둘을 통합해서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 이제 사진 기호학이 의미 있어집니다. 사진 기호학은 이 모든 과정을 더욱 의식적이고 정교하게 만들어주는 이론적 틀입니다. 외시와 공시, 코드, 계열체와 통합체, 앵커리지와 릴레이 같은 개념들은, 당신이 이미 직관적으로 하고 있는 것들을 체계화하고 확장시켜줍니다.
'시간의 덧없음'을 표현하기 위해 낡은 벽과 싱싱한 꽃의 병치를 기호학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낡은 벽의 외시는 '오래된 벽'이지만, 공시는 '시간의 흐름', '죽음', '쇠퇴'입니다. 반대로 꽃의 공시는 '생명', '시작', '아름다움'입니다. 우리는 두 개의 상반된 코드를 하나의 프레임에 배치함으로써 긴장감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진 기호학은 우리의 직관을 언어화하고, 더 전략적으로 사진을 설계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기초 없이 사진 기호학만 공부한다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사진으로 구현하지 못합니다. 마치 음악 이론만 공부하고 악기는 한 번도 만져보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창밖에 비가 그치고 찬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성큼 다가온 가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찍으면 자유로운 표현이 방해받는 거 아닐까? 직관이 사라지는 거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형적 관찰과 추상적 관찰을 충분히 훈련하면, 어느 순간 찍으려는 순간에 그 모든 것이 자동으로 통합되어 작동합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프레임이 보이고, 의미가 보이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보입니다. 당장 시작하면 됩니다. 세상은 우리를 기다리는 거대한 시각 교과서입니다. 사진을 찍든 찍지 않든, 하나는 조형적 관찰로 하나는 추상적 의미로 읽는 연습을 매일 한다면 우리 사진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