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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없는 사진 수업의 의미

by 채 수창


'요즘 고급 사진작가과정 수업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진수업인데 7회 강의가 되도록 카메라 한 번 가져와 본 적이 없고, 촬영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없는데 이게 맞는건가?하고 말이죠'

'아, 그러셨어요? 남다른 사진을 위한 이론적인 바탕에 대한 부분이라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네요. 그리고 촬영 방법에 관한 이야기는 이론적인 것을 내 사진에 적용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매번 말씀드리는데요?'

'내 사진 실력에 어느 정도 영향이 되는 건지도 궁금하구요.'

'당연히 영향이 됩니다. 이미 배우신 것들과 앞으로 하실 것들이, 사진의 상징성에 관한 사진기호학과 미학, 사진 창작론이니까요. 앞으로 내 사진의 방향성과 주제를 찾아가는 여정이죠'


'카메라가 없는 사진 수업', 7주 동안 한 번도 카메라를 만지지 않았다는 당혹감,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진(?)을 배우러 왔는데 정작 사진기는 만져 보지도 않았으니 말이죠. 마치 수영을 배우러 갔는데 지상훈련만 열심히 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런데 수영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요. 수영 선수들은 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물 속에서보다 더 많습니다. 근력 훈련, 유연성 훈련, 호흡법 연습, 그리고 심상 훈련까지 말이죠. 수영복을 입지 않고 보내는 이 모든 시간이 결국 물속에서의 그 찰나를 위한 것입니다.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찰나지만, 그 순간을 준비하는 시간은 항상, 아니 평생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조리개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셔터 속도를 계산하고, 다른 기술적인 요소들을 잘 조작하는 것이 사진 실력이라는 것 말이죠.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사진을 처음 배울 때 이런 기술적 능력을 내 자신이 얼마나 빨리 습득했는지 말입니다. 몇 달만 집중하면 누구나 카메라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카메라를 완벽하게 다룰 줄 알고, 어디에 가서도 원하는 사진을 '남들만큼' 촬영하는 게 가능해졌는데, 정작 '무엇을 찍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옵니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한데 매년 비슷한 사진, 노출도 구도도 훌륭한데 뭔가 아쉬운 사진, 잘 찍었다는 말을 듣지만 말할 것이 없는 사진 등 이런 사진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사진기호학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하게 이론을 암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지가 어떻게 의미를 생성하고, 전달하고, 때로는 왜곡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롤랑 바르트가 말한 외시와 공시(함축)의 차이를 이해하면, 내 사진은 기록을 넘어서 '발화'가 됩니다. 사진이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진미학은 예쁜 사진을 찍는 방법이 아닙니다. '왜 어떤 사진은 우리를 움직이고, 어떤 사진은 그냥 지나쳐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존 버거가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말했듯이, 보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 행위가 아니라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입니다. 사진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보는 방식을 재구성하는 훈련입니다.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을 이해하면 디지털 시대에도 왜 어떤 사진은 여전히 특별한 존재감을 가지는지 알게 됩니다.

수잔 손탁의 논의를 따라가면, 사진 찍는 행위 자체에 내재된 윤리적 문제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빌렘 플루서의 사진 철학을 읽으면, 카메라라는 장치가 우리 생각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깨닫게 되죠.

이런 것들이 실제 촬영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냐구요? 당연히 도움이 됩니다. 재현을 넘어선 해석에도, 내 사진적인 정체성에도, 나를 표현하는 방식에도, 작가노트와 포트폴리오 구성에도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사진 창작론은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부분입니다.

'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나만의 시각적 언어는 무엇인가?'


간혹 우리는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 찍고, 유행하는 스타일을 모방하고, SNS에서 좋아요를 받을 것 같은 사진을 재생산합니다. 기술적으로는 뛰어날 수 있지만 그 작업에는 일관된 목소리가 없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언어로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진창작론을 공부한다는 것은 나만의 언어를 찾는 과정입니다. 나다운 프레임은 무엇인지, 내가 끌리는 빛의 질감은 어떤 것인지, 내가 계속 추구하는 주제는 무엇인지를 탐구합니다.


자,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카메라 조작법과 이런 이론적 기반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사실 이것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둘은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입니다. 기술 없이 이론만 있으면 공허한 관념론자가 됩니다. 머릿속에는 훌륭한 생각이 있지만 그것을 구현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이론 없이 기술만 있으면 숙련된 기술자(?)는 될 수 있지만, 예술적인 부분은 포기해야 합니다. 완벽하게 찍을 수 있지만 무엇을 찍어야 할지 모릅니다.


진정한 사진가는 기술적인 부분과 이론적인 부분을 통합합니다. 생각이 눈을 이끌고, 눈이 손을 움직이고, 손이 카메라를 조작하고, 카메라가 세상을 포착하는 하나의 연속된 흐름 속에 있습니다. 지금 받고 있는 수업의 순서를 살펴보세요. 먼저 사고의 틀을 갖추고, 세상을 읽는 방법을 배우고, 내면의 주제를 발견한 후에 기술적인 부분을 접목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제가 강의 구성을 대부분 이론 60%+실습40%로 구성하죠).


많은 사진 교육이 아직도 반대로 진행됩니다. 먼저 카메라 조작법을 가르치고, 구도에 대한 공식을 암기시킨 다음에 '이제 의미를 담아보세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미 기술적인 것과 특수 촬영 기법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종종 더 깊은 탐구로 나가는 걸 꺼립니다. '이 정도는 나도 찍을 수 있어'라든지, '여기서는 이렇게 찍으면 돼'라고 기술적이라는 안전지대에 머물러버리죠.


질문하신 당신의 과정은 거꾸로 갑니다. 먼저 본질을 탐구하고 그다음 그것을 구현할 도구를 배웁니다. 이것이 훨씬 단단한 기반을 만들고, 내가 가야할 길과 나아갈 주제를 찾아줍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당신은 이미 변화하고 있습니다. 카메라를 한 번도 만지지 않았지만 눈은 이미 달라져 있을 겁니다. 거리를 걷다가 문득 어떤 피사체에서 멈추는 순간 그 이유가 예전과 달라졌을 거에요. 전에는 '예쁘네' 였다면, 이제는 '이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만드는 긴장감' 또는 '이 공간의 배치가 암시하는 소외감'처럼 좀 더 구체적이고 깊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볼 때도 달라졌을 겁니다. 막연히 '좋다''별로다'를 떠나, 이제는 왜 그 사진이 작동하는지, 작동하지 않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진가의 눈이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빠른 것을 좋아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3일 만에 장노출 마스터하기, 일주일 만에 인물사진 전문가 되기, 한 시간 안에 스마트폰 사진 완성하기, 이렇게 하면 ㅇㅇ을 바로 찍을 수 있다 등 속성 과정들이 인기입니다. 즉각적인 결과, 측정 가능한 성과, 눈에 보이는 발전, 하지만 사진은 그렇게 배워지지 않습니다.


예술은 발효입니다. 천천히, 보이지 않게, 깊은 곳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 배운 개념이 내일 당장 내 사진을 바꾸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됩니다. 그때 배운 것들이 얼마나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지를 말이죠.


사진기호학, 사진미학, 사진창작론 같은 것들은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즉효성 영양제가 아닙니다. 느리게 흡수되어 내 뼈와 살을 만드는 단백질입니다.

영어 배울 때 생각해보세요. 문법을 먼저 배웁니까, 단어를 먼저 배웁니까? 그리고 하나만 배우나요?

기술적인 것들은 단어이고, 사진기호학, 사진미학, 사진창작론은 사진의 문법입니다. 우리는 지금 문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문법이 문장을 만들고 시를 쓰게 합니다. 그 시는 단순하게 기술적으로만 완벽한 것이 아닙니다. 내 세계관이 담긴, 내 질문이 스며든, 나만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세계를 드러내는 이미지가 될 것입니다.


수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는 도구일 뿐이고, 진짜 사진은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에서 시작됩니다. 당신은 지금 그 머리와 가슴을 키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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