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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연 Dec 10. 2018

여기 계속계속 있어

엄마, 엄마, 엄마, 어디 갔어?

응. 여기 있어. 잠깐 화장실 다녀왔어.

엄마, 여기 누워. 옆에 누워서 코 자.

응. 알았어. 근데 엄마 잠깐 밥 좀 먹고 오면 안 될까?

안 돼. 준이 옆에 있어. 여기 계속 계속 있어.



오랜만에 불은 라면을 먹었다. 불은 라면이 좋다고 일부러 국물이 사라질 정도로 팅팅 불려서 먹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나처럼 어쩔 수 없이 불은 면에 익숙해진 사람은 더러 있을 거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불은 라면 먹기 5년차 경력. 불어터진 면에 익숙해지다 못해 불은 면발의 목 넘김이 부드럽게 느껴질 정도다.


왜 컵라면에 물을 붓기만 하면 아기가 깨서 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육아 시절을 통틀어 몇 안 되는 미스터리 중에 하나다. 라면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아기 덕분에 컵라면에 물을 붓고 뚜껑을 지긋이 눌러둔 채 아기에게 불려가 있는 동안, 홀로 남아 있는 라면의 안부가 걱정되어 우는 아기는 뒷전으로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는 괜히 남편에게도 눈을 한번 흘긴다. 남편이 아기를 깨운 것도 아니고 컵라면에 물을 부어준 것도 아닌데. 아기를 다시 재우고 돌아온 사이 퉁퉁 불어 있는 라면을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떠 올리는 순간 깊은 고민과 마주한다. 이걸 내 입으로 넣어야 하는지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는지… 그리고 쓰레기통과 내 입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힘 빠지게 했다.


그래도 한동안은 불은 라면을 먹을 일이 없었다. 아기는 밤에 자다가 깨는 일이 점점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침에 흔들어 깨워야 일어날 정도로 잠꾸러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를 재운 뒤 컵라면 한 사발을 여유 있게 먹는 날이 많아졌고, 라면에 물을 부으면서 조마조마 하던 일도 옛일이 되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불은 라면을 먹었다. 물을 붓고 뚜껑을 닫는 순간 아이가 잠에서 깨서 엄마를 찾으며 울기 시작했다. 달려가보니 아이는 땀에 잔뜩 절어서 울고 있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답답했던 건지, 아니면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건지 눈도 채 못 뜬 아이는 엄마를 찾으며 울기만 했다. 나는 능숙한 손길로 아이의 옷을 벗기고, 물로 가볍게 닦아주고, 새 옷을 갈아입힌 다음 창문을 조금 열어 환기를 시키며 아이를 안아서 토닥여줬다. 이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동안 아이의 울음은 잦아들었고 내 품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쌔근쌔근 잠이 든 아이의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는데 신기하게도 그 사이 퉁퉁 불고 있을 라면이 걱정되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더는 내 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길쭉해진 아이의 몸을 바라보느라 바빠서 그랬을 것이다. 아이가 이만큼이나 큰 걸까, 아니면 내가 작아진 건가. 이제는 안아주기가 버거워진 아이를 억지로 끌어안았다.


나는 이제야 자다 깬 아이의 울음에 대처하는 법에 능숙해졌는데, 아이는 자다 깨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자라버렸다. 나는 이제야 겨우 아이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데, 아이는 나를 기다려주지 못할 정도로 저만큼이나 앞서 달려 나가고 있다.


앞으로 내가 불은 라면을 먹을 일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그러니까 라면을 먹다가 아이에게 달려갈 일이, 아이가 자다 깨서 울며 엄마를 찾는 일이 앞으로 얼마나 남은 걸까. 이렇게 한 방에서 너와 나 살을 비비며 끌어안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잠들 수 있는 날이 앞으로 얼마나 남은 걸까. 아이가 자꾸만 쉬지 않고 자라니 나는 앞으로 불은 라면을 먹을 날들이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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