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폐지 후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
행정복지센터에서 우편이 도착했다. 내가 신청한 장애인연금 소득⋅재산 조사 결과 적합 판정되었다는 내용이다. 나는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닌데 나와 관련 없는 제도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소득인정액에 적합 판정을 받은 것이다.
문제는 ‘장애 정도 심사’였다. 1989년 5살 때 받았던 나의 장애등급은 낡고 객관적이지 않은 것으로 무시당했다. 당시에는 지체 2급, 지금은 현 정부가 정한 ‘장애정도가 심한 지체 장애인’이다. 그것이 독이 될 것만 같았다. ‘선천성 골형성부전증(Osteogenesis Imperfecta)’를 갖고 태어난 나는 개편된 장애 정도 심사 기준과 맞지 않았다.
상지, 하지, 척추, 신경손상 이 4가지 중 나는 하나를 골라 병원에서 진단받아야 했다. 나의 장애는 이 4가지 중에 하나만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음에도 중복 진단이 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이 마치 쿠키 틀에 맞지 않아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나의 몸은 국가가 정한 장애 틀 속에 맞출 수 없음에도 억지로 거기에 맞춰야 했다.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면 장애연금을 포기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평생 겪어온 차별의 깊이를 다시 평가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걱정 반 기대 반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병원에서 준 서류를 들고 행정복지센터에 제출했다.
현재 지체 2급인 내가 심사 후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이 된다면 연금도, 장애등급도 다 무너질 것 같아 두려웠다. 그동안 내가 누렸던, 국가로부터 받아왔던 것들이 권리가 아니라 혜택이었다고, 행정가, 전문가들이 나의 몸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궁금해 행정복지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제가 만약 장애정도 심사에서 현재 보다 낮게 나온다면 장애연금도 탈락되고 장애정도도 바뀌는 건가요?”
-“그건 저도 모르죠. 국민연금공단에 연락해보세요.”
“아니. 장애인 연금을 접수하는 분께서 그것도 모르세요?”
전화가 끊어지고 한숨만 나온다. 왜 나의 몸을 당신들에게 평가받아야 하는가.
장애등급 폐지 후에도 장애 심사는 변한 것 없다. 내 척추가 몇 도 이상 움직이는지 그것 만으로 나의 삶을 결정하는 과정들을 겪어보니 나의 몸은 장애인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가, 없는 가 때문에 애꿎은 내 몸만 수모를 겪는 것 같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전히 나의 몸을 권리가 아닌 혜택으로 견적을 내고 평가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손에 쥔 우편물을 꾸겨버렸다.